혹시 그분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PD수첩>의 PD 중에는 30초짜리 짧은 인터뷰를 따는 양 사람을 불러 놓곤, 서너 시간 동안 온갖 질문을 다해서 완전히 진을 빼 놓는 몰지각한 분들이 있습니다. 한미 FTA 관련 프로그램을 만들 때 저도 당한 ‘만행’인데, 그 때 저녁을 먹으러 가서 제가 ‘왕언니’ 아니냐고 물었던 그 분은 아니시겠죠?
지난 정부 때부터 <PD수첩>은 참 많은 일을 겪었습니다. 이상하게도 비슷한 내용을 <KBS 스페셜>에서 만들면 별 말이 없다가 <PD수첩>이 방송하면 청와대에서 한마디 해서 공방이 이어지곤 했지요. 그 때마다 전 “청와대가 <PD수첩> 키우려고 마음 먹었나”, 실소를 했습니다.
세월이 흐르긴 흘렀습니다. 청와대의 한마디가 이젠 검찰의 기소에 이르렀으니 단지 비웃고 말 일은 아닙니다. 1년 전에 검찰이 조사를 하네 마네, 할 때도 조능희 CP께 전화를 걸어 “전혀 걱정할 필요 없다. 이게 말이나 되느냐”고 했던 내 상식은 완전히 시대착오가 됐습니다.
많은 분들이 말했겠지만 시간은 흐를 것이고 사람들은 아주 깨끗하게 잊을 겁니다. 한 헌법학자에 따르면 사문화된 형법 조항인 ‘강요죄’에 미수까지 붙인, ‘강요미수’라는 희귀한, 어쩌면 전무후무할 죄목으로 집행유예라는 유죄판결을 받았지만 이제 아무도 사건조차 기억하지 못합니다. 내 억울함도 마찬가지로 잊혀지고,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때까지 옵니다. 지난 수십년의 역사를 볼 때 검찰이 MBC처럼 “이제는 말할 수 있다”고 스스로 고백을 할 리 없고, 혹 정권이 바뀐다 해도 검찰을 ‘손 볼’ 방법 역시 전혀 없습니다. 지금처럼 ‘막가파’가 아닌 한 대통령도 못한 일이잖아요. 더구나 그들이 양심의 가책을 받을 일도 별로 없을 겁니다. 바뀐 정권 하에서도 뭔가 새로운 사건을 만들어 승진을 거듭할테니까요.
왜 더 절망적인 얘기를 하느냐고요? 그 지독했던 우울증의 탈출구는 전혀 다른 곳에 있었다는 말을 하고 싶어섭니다. 저에겐 그것이 한미 FTA였습니다. 매일 전국을 돌며 강연을 하고, 정부와 글로 싸워야 하는 상황, 발밑에서 언제 폭탄이 터질지 모르는 전쟁터에서는 우울할 겨를도 없더군요. 그 황당한 수사기록까지 다시 들여다 봐야 하는 재판과정의 고문도 그저 잠깐 손가락을 벤 것처럼 지나갑니다(그리고 아무런 준비도 없이 재판에 나가게 되는데 이건 결코 따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요컨대 김 작가님은 또 다른 작품을 해야 합니다. 아시다시피 시사 작가가 “필이 꽂힐” 일들은 이미 너무나 많고 또 계속 일어날 겁니다. 예컨대 이 정권이 <PD수첩>이건, 용산이건, 촛불시민이건 온갖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그예 하려는 일은 뭘까요? 예. 대운하입니다. 거대 토목공사로 경기를 살리기만 하면 모든 게 용서가 될 거라는 그 망상 말입니다. 빨리 시작할수록 좋습니다. 행여 MBC 경영진이나 PD들이 김 작가님을 보호한답시고 일을 맡기지 않는 바보 같은 짓을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추신. <PD수첩> 광우병편이 증언했던 그 모든 사실은 참여정부 시절의 농림부 기록에 다 나옵니다. 신임장관과 외교부 출신 차관보가 전임 농림부 장관과 통상담당자의 사실판단을 고소한 셈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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