꽉 찬 순정과 텅 빈 시대감각
상태바
꽉 찬 순정과 텅 빈 시대감각
[헨드릭스의 책읽기] (21) 고양이 대학살
  • 헨드릭스/ 블로거
  • 승인 2009.06.23 10: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고양이 대학살〉 (로버트 단턴, 조한욱 옮김, 문학과지성사, 1996)
그는 아마 관상을 믿은 것 같다. 얼굴형을 보면서 ‘거친 관상과 성격’, ‘혐오스러운 관상’, ‘배반하는 관상’이라 평하며 인물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p.232). 그의 수사 보고서는 ‘관상’을 떼어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직무가 지도자의 권위에 손상을 줄 수 있었던 것이라면 어떤 것이라도 제어하여 왕국을 수호하는 일을 포함하고 있다고 이해하였다(p.253). 그들은 언제나 ‘선동문’을 입수하였고 작가들은 때로 그것 때문에 제재나 처벌을 받아야 했다. 그는 ‘나약하게 노출된’ 국가의 권위를 참을 수 없었을 뿐이다(p.255).

그에게는 꽉 찬 순정이 있었다. 그는 ‘나쁜 인상’으로 국가에 대해 불온한 생각을 품는 이들의 사생활부터 공적인 기록 모두를 채집하고 다녔다. 그는 ‘이들이 어떤 원고를 완성하여 가방 속에 이미 넣어두었는지, 현재 쓰고 있던 것은 무엇이었는지’를 알고 있었다. 그는 ‘불경함과 정치’를 분리하지 않았다. 그는 개인적인 험담이든 공적인 발언이든 상관없이 불경한 자들을 국가를 위해서 체포했을 뿐이다.

이 이야기는 300년 전 프랑스의 한 경찰의 이야기다. 프랑스 경찰의 행위가 지금 벌어진다면 우리는 무엇이라 할 수 있을까? 당대 프랑스의 민중은 ‘혁명적’이지 않았다. 매일 착취와 기근에 노출된 민중들은 기껏해야 할머니로 위장한 늑대에게 잡아먹히는 우화를 통해 세상이 만만치 않음을 배웠을 따름이다. 노동자들은 파업을 꿈꾸지도 못하고 기껏해야 자본가의 고양이나 두들겨 패면서 광적인 밤의 고양이 재판을 즐겼을 뿐이다.

지식인들은 부르주아 계급이 힘이 생겨서 귀족과 함께 어울리자는 이야기를 했을 뿐이다. 그들의 머릿속에 ‘민중’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농부들과 함께 한다는 것을 끔찍하게 생각했을 뿐이다. 공안통치가 언제나 가능한 시절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프랑스에서도 채 50년이 지나지 않아 세상의 거대한 움직임과 정치적 맥락 따위는 알 수가 없었던 민중들이 혁명에 가담했다. 왕의 목이 기요틴의 단두대에서 잘렸다. 당대의 경찰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하지만 그 시절은 ‘민주주의’라는 말조차 낯선 시대였다.

▲ 헨드릭스/ 블로거
“총선 직후 대통령에 대한 적개심이 하늘을 찌를 때라서 제작에 몰입”하는 불온한 자들의 이메일은 공개되어야 한다는 신념을 본다. 검찰의 2009년 6월 18일 보고서의 내용 중 일부다. 그들은 가슴 속에 순정을 가득 채운듯하다. ‘불경한’ 자들을 입건하여 조사해야한다는 그들의 진심을 믿고 싶다. 하지만 ‘잃어버린 10년’을 회복하고 싶어 무려 300년을 후퇴한 텅 빈 시대감각이 빚어낸 비극이 보인다. 그리고 그 비극의 끝에 보였던 말로를 역사책을 통해 생각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