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그저 아프가니스탄을 변방의 위험한 나라로 기억하지만 그곳에도 사람은 살고 있다. 여전히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아프가니스탄에 정부군도 탈레반도, 미군도 아닌 보통사람으로 살고 있는 이들의 일상은 과연 어떨까. <KBS 스페셜>이 특별기획한 ‘인간의 땅’ 5부작의 첫 편 ‘살아남은 자들’(연출 강경란)은 바로 그들의 이야기다.
지난 21일 방송된 ‘살아남은 자들’은 아프가니스탄 칸다하르의 한 경찰서를 배경으로 시작한다. 탈레반 세력이 한창 확장되고 있는 2007년. 칸다하르 최전선 제흐리 경찰서에는 늘 자살폭탄테러와 전투의 긴장감이 감돈다. 경찰서의 사환이자 요리사인 14세 소년 압둘 바리에게 죽음은 그저 일상이다.
‘죽음’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어린 소년은 웃으면서 담담하게 대답한다. “죽음이 죽음이지 뭐겠어요. 죽으면 더 이상 숨 쉴 수 없고, 모든 것이 끝나는 거죠. 그게 신의 뜻이라면 죽을 수밖에 없죠. 내가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잖아요.”
같은 나이의 다른 소년 이슬람 샤는 경찰이다. 대마초를 피우고, 도박을 하는 그는 “내일은 생각지 않는다”고 말한다. “오늘 행복하면 그만이다. 돈이나 성공 같은 건 관심 없다”는 열네살 소년에게 희망은 그저 남의 얘기일지 모른다.
더욱 절망적인 건 그들에게 희망을 앗아간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해결책이 도무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싸우는 사람들은 왜 서로를 죽이는지 알지 못한다. 서로 총부리를 겨누고 있지만 별 다른 차이가 없는 그들은 “탈레반이 된 것도, 경찰이 된 것도 다 우연이다.” 말끝마다 ‘fucking’을 달고 사는 미군들도 ‘평화’를 위해 싸우고 있다고 생각할지 의문이다.
총을 들지 않는 자들은 매일 탈레반의 테러 위협과 미군의 오폭 위험에 노출돼있다. 강경책으로만 대립하는 틈바구니에서 희생되는 건 ‘보통사람’들이다. 다큐멘터리의 마지막 내레이션도 이런 답답함을 담고 있다. “어제 살아남은 자들이 오늘도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아프간에서는 아무도 그것을 약속할 수 없다. 2008년 겨울, 전쟁은 끝나지 않았고 모든 들판과 골짜기에서 미래는 어디서도 보이지 않는다.”
삶과 죽음의 경계가 희미한 이곳을 취재한 이는 분쟁지역 전문 강경란 PD다. 미얀마, 동티모르, 카슈미르, 이라크, 이란, 코소보 등 세계의 화약고를 누빈 그는 지난 2007년 ‘아프란 피랍사건’ 당시 현지에 있던 유일한 국내 언론인이었다. 그 곳에서 강 PD는 2008년 겨울까지 칸다하르 취재를 계속했다.
특별기획 ‘인간의 땅’ 5부작은 3년 동안 제작한 KBS의 야심작이다. KBS는 이번 작품을 통해 <차마고도>, <누들로드> 등 ‘명품’ 다큐의 계보를 잇겠다는 계획이다. ‘인간의 땅’은 1부 ‘살아남은 자들’을 시작으로 방글라데시, 미얀마, 네팔, 아르메니아 등 우리에게 여전히 낯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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