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 말아야 할 땅’에 사는 그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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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 말아야 할 땅’에 사는 그들의 이야기
[프로그램 리뷰] KBS 특별기획 <인간의 땅> 1부 ‘살아남은 자들’
  • 김도영 기자
  • 승인 2009.06.23 17: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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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기억하는 아프가니스탄은 ‘가지 말아야 할 땅’이다. 지난 2007년 그곳으로 선교활동을 떠난 한국인 23명은 탈레반 무장 세력에 납치됐고, 두 명은 끝내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2년 후. 아프간 정부와 미군은 계속 탈레반과 대립하고 있고, 아프가니스탄은 우리에게 여전히 위험지역이자 여행금지국가다.

우리는 그저 아프가니스탄을 변방의 위험한 나라로 기억하지만 그곳에도 사람은 살고 있다. 여전히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아프가니스탄에 정부군도 탈레반도, 미군도 아닌 보통사람으로 살고 있는 이들의 일상은 과연 어떨까. <KBS 스페셜>이 특별기획한 ‘인간의 땅’ 5부작의 첫 편 ‘살아남은 자들’(연출 강경란)은 바로 그들의 이야기다.

▲ 지난 21일 방송된 '살아남은 자들'. ⓒKBS화면캡처
지난 21일 방송된 ‘살아남은 자들’은 아프가니스탄 칸다하르의 한 경찰서를 배경으로 시작한다. 탈레반 세력이 한창 확장되고 있는 2007년. 칸다하르 최전선 제흐리 경찰서에는 늘 자살폭탄테러와 전투의 긴장감이 감돈다. 경찰서의 사환이자 요리사인 14세 소년 압둘 바리에게 죽음은 그저 일상이다.

‘죽음’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어린 소년은 웃으면서 담담하게 대답한다. “죽음이 죽음이지 뭐겠어요. 죽으면 더 이상 숨 쉴 수 없고, 모든 것이 끝나는 거죠. 그게 신의 뜻이라면 죽을 수밖에 없죠. 내가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잖아요.”

같은 나이의 다른 소년 이슬람 샤는 경찰이다. 대마초를 피우고, 도박을 하는 그는 “내일은 생각지 않는다”고 말한다. “오늘 행복하면 그만이다. 돈이나 성공 같은 건 관심 없다”는 열네살 소년에게 희망은 그저 남의 얘기일지 모른다.

더욱 절망적인 건 그들에게 희망을 앗아간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해결책이 도무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싸우는 사람들은 왜 서로를 죽이는지 알지 못한다. 서로 총부리를 겨누고 있지만 별 다른 차이가 없는 그들은 “탈레반이 된 것도, 경찰이 된 것도 다 우연이다.” 말끝마다 ‘fucking’을 달고 사는 미군들도 ‘평화’를 위해 싸우고 있다고 생각할지 의문이다.

총을 들지 않는 자들은 매일 탈레반의 테러 위협과 미군의 오폭 위험에 노출돼있다. 강경책으로만 대립하는 틈바구니에서 희생되는 건 ‘보통사람’들이다. 다큐멘터리의 마지막 내레이션도 이런 답답함을 담고 있다. “어제 살아남은 자들이 오늘도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아프간에서는 아무도 그것을 약속할 수 없다. 2008년 겨울, 전쟁은 끝나지 않았고 모든 들판과 골짜기에서 미래는 어디서도 보이지 않는다.”

삶과 죽음의 경계가 희미한 이곳을 취재한 이는 분쟁지역 전문 강경란 PD다. 미얀마, 동티모르, 카슈미르, 이라크, 이란, 코소보 등 세계의 화약고를 누빈 그는 지난 2007년 ‘아프란 피랍사건’ 당시 현지에 있던 유일한 국내 언론인이었다. 그 곳에서 강 PD는 2008년 겨울까지 칸다하르 취재를 계속했다.

특별기획 ‘인간의 땅’ 5부작은 3년 동안 제작한 KBS의 야심작이다. KBS는 이번 작품을 통해 <차마고도>, <누들로드> 등 ‘명품’ 다큐의 계보를 잇겠다는 계획이다. ‘인간의 땅’은 1부 ‘살아남은 자들’을 시작으로 방글라데시, 미얀마, 네팔, 아르메니아 등 우리에게 여전히 낯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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