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들이 미디어위 보고서를 오독한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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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용의 주간미디어리뷰]

▲ 이희용 연합뉴스 미디어전략팀장
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가 6월 25일 활동을 모두 마치고 최종보고서를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에 제출했습니다. 비록 20명의 위원 가운데 민주당과 창조한국당 추천위원 9명이 빠진 채 한나라당과 자유선진당 위원 11명이 참여해 작성한 것이어서 민주당 등이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지만 한나라당이 내달 중 표결 처리를 공언하고 있는 터여서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지요.

'디지털 시대의 미디어법 발전 방향'이란 부제가 달린 이 보고서의 내용은 24일부터 언론에 알려졌는데, 일간신문의 지상파방송 겸영을 2012년 12월 31일까지 금지하되 지상파방송, 종합편성 및 보도PP의 지분 취득은 대기업과 함께 허용하는 방안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보고서는 16쪽에서 "주식이나 지분을 취득하는 방법으로 경영에 관여하는 것을 겸영의 범주에서 제외한다"는 2006년 헌법재판소 결정문을 예시하며 겸영과 교차소유가 구분되는 개념임을 설명하고 있지요.

헌재는 당시 "나아가 하나의 일간신문 법인이, 이미 다른 일간신문ㆍ뉴스통신ㆍ방송사업 법인의 주식ㆍ지분의 2분의 1 이상을 소유하고 있지 않는 한, 또 다른 일간신문이나 뉴스통신 법인의 주식이나 지분을 소유하는 것은 금지되지 않는다"고 판시했지만, 미디어위 보고서 작성에 참여한 한 위원은 "방송법상 지분 한도를 설정하고 있고 최대주주를 변경하는 경우 방송통신위원회의 승인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일간신문이 지상파방송의 최대주주가 되는 경우에는 겸영이라고 봐야 할 것"이라고 설명하더군요.

그러나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지상파방송의 경우 일간신문이 최대주주가 될 정도의 자본 조달 능력이 없어 대기업과 컨소시엄을 이뤄 2대주주, 혹은 3대주주로 뛰어들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사실상 일간신문의 지상파 진출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셈입니다(참고로 OBS의 경우 CBS는 5%의 지분만으로도 사장 선임권과 보도국 운영권을 요구했습니다).

실제로 보고서 23쪽에는 "1인 지분을 49%로 확대해 신문의 진입으로 인한 경영 주도 가능성은 낮다"고 설명해놓고 있어 위원들 스스로도 신문사가 방송사의 최대주주가 될 가능성은 별로 없다고 보고 있지요. 이 말에 따르면 "일간신문의 지상파 인수라는 우려를 불식시키는 차원에서 신문과 지상파방송의 겸영은 디지털 전환 시점까지 금지할 것을 제안한다"는 설명이 공허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습니다. 보고서 설명대로라면 어차피 경영을 주도하기도 힘든 데도 여론을 의식해 당분간 유예할 것을 제안하고 당장 경영에 관여하는 것은 허용하자는 것이니까요.

사실 그동안 공방을 빚은 정황이나 현실적인 여건을 감안한다면 '일간신문에 지상파방송 진출 허용'쯤으로 제목이 달릴 만한 내용이지요. 하지만 대부분 언론은 '2013년 이후 신문ㆍ방송 겸영금지 해제'나 '2012년까지 신문ㆍ방송 겸영 유예'란 제목을 달아 보도했습니다. 지금까지 신문과 방송의 겸영을 둘러싸고 여야가 공방을 벌여왔다고 알고 있는 독자들에게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고도 남을 만한 일이었지요.

24일 오전 11시께 가장 먼저 연합뉴스가 '주식 취득은 허용된다'는 설명도 없이 "신문과 지상파방송의 겸영을 금지한 현행 방송법 및 신문법의 조항은 지상파방송의 디지털 전환 시점인 오는 2012년 12월 31일까지만 유지할 것을 제안했다"고 보도해 혼란을 촉발한 이후 한국, 세계, 경향 등 여러 신문이 비슷한 논조로 보도했습니다.

▲ 세계일보 6월 25일 5면
한겨레는 25일자 신문에 "지상파방송의 경우 신문의 방송지분 보유를 2012년까지 유보할 것을 권고했다"며, 같은 날 중앙일보는 "다시 말해 본격적인 지상파 다채널 시대가 열리기 전까지 KBSㆍMBCㆍSBS에 대한 지분 취득 자체를 막자는 것"이라며 사실상 오보를 냈지요.

반대로 동아일와 조선일보는 각각 "신문의 지상파방송 지분 소유는 당장 인정하되 경영권 행사에는 유예 기간을 두자는 것"이라거나 "현재 금지된 신문ㆍ대기업의 지상파TV 지분 소유는 법 개정 직후부터 허용하되 신문ㆍ대기업이 지분을 인수한 방송사의 경영에 참여하는 것은 2013년부터나 가능토록 한다"고 비교적 정확히 보도했습니다.

이런 일이 벌어진 까닭은 무엇일까요. 우선 방송법에서 겸영과 지분 소유를 엄격히 구분하고 있고 2006년 헌재가 이를 명확히 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이나 언론이 이를 구분하지 않고 겸영이란 단어로 뭉뚱그려 써왔기 때문입니다.

이 보고서를 소개하면서 많은 언론들이 "그동안 가장 큰 쟁점이 돼온 신문과 방송의 겸영 문제"라는 표현을 쓰고 있는데, 법적 해석과 현실을 감안하면 '교차소유' 논란을 잘못 써온 것이지요.

따라서 독자들은 물론 기자들도 이를 잘 모르고 있습니다. 어떤 이는 "정치부 기자들이 기사를 써서 그런 문제가 빚어졌을 것"이라고 말하던데, 솔직히 말해 미디어담당 기자도 혼동하고 있기는 마찬가지라고 여겨집니다.

또 하나는 의도적이었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최종보고서 구성이 착시 현상을 불러일으킬 여지가 있다는 점입니다. 신문법에는 겸영 금지 조항만 있고 방송법에는 겸영과 함께 주식 및 지분 소유가 금지돼 있는데, 보고서는 신문법 항목에서만 '겸영 금지 유지'를 제안하고 있고 방송법에서는 '겸영 금지'를 전혀 언급하지 않은 채 지분율에 관해서만 4가지 안을 제시했지요.

앞서 신문법에 언급했기 때문에 중복을 피하기 위한 것이라고 해명할지는 모르겠지만, 만일 방송법 항목에서도 겸영 금지 유지를 언급했다면, 또 지분 취득은 곧바로 허용하는 것이라는 설명만 달아놓았다면 이토록 많은 기자들이 착각하지 않았을 겁니다. 일반 국민은 물론 상당수 기자와 국회의원들마저 겸영과 교차소유의 의미를 혼동하고 있는 줄 알면서도 보고서를 이런 방식으로 작성한 것은 야당과 언론운동진영에 큰 양보를 하는 것처럼 보이려는 '미필적 고의'를 의심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고서를 오독한 것은 어디까지나 기자들 탓이고 언론사 책임입니다. 법 개정에 찬성하는 조선과 동아가 오히려 보고서 내용을 더욱 정확하게 썼으니 반대하는 신문사들로서도 보고서 핑계만 댈 수는 없겠지요.

한나라당 및 자유선진당 추천 위원들은 현행 30%인 1인 지분 한도를 49%로 확대하는 동시에 일간신문과 대기업의 소유지분 한도를 지상파방송 20%, 종합편성PP 30%, 보도PP 49%로 제한하는 한나라당 개정안, 일괄적으로 49%로 올리는 안, 지상파방송의 경우 가시청 인구가 일정 규모 이하인 방송사에 대해서만 진입을 허용하는 안, 지상파 10%, 종합편성 20%, 보도 40%(대기업은 30%)로 하는 자유선진당 개정안을 제시했더군요.

이 문제를 놓고는 한나라당 및 자유선진당 추천위원 가운데서도 격론이 오갔음을 짐작하게 합니다. 22일자 조선일보가 '신문ㆍ대기업의 방송 진출에 5대 단서 조건 제안'이란 제목으로 보도한 △일간신문의 지상파방송 겸영을 디지털 전환 시까지 금지 △신문ㆍ방송 겸영 범위를 지상파TV의 경우 민영으로 제한 △대기업ㆍ일간신문ㆍ뉴스통신 등의 지상파 지분 합계를 49%로 제한 △가시청 인구 1천500만 명 이하 방송사에만 대기업 진입 허용 등도 대부분 반영되지 않았지요.

여당 추천위원 사이에서도 합의를 이루기가 이만큼 쉽지 않은데 야당 추천위원들과 합의를 이룬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을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민주당 측 여론조사 "보수층도 미디어법에 반대"

이에 앞서 6월 17일 여론조사 실시 등을 주장하다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더이상 논의가 무의미하다고 선언한 민주당 및 창조한국당 추천 위원들은 23일 토론회를 열고 대국민 여론조사 결과를 소개했습니다.

대기업이 지상파방송을 소유, 운영하는 것에 대해서는 68.5%가 반대한 데 비해 찬성은 17.6%에 그쳤다고 합니다. 신문사가 지상파방송을 소유, 운영하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가 66.8%, 찬성이 17.0%였지요. 대기업과 일간신문이 종합편성PP를 운영하는 것에 관해서는 반대가 각각 59.8%와 62.7%였수적 성향이라는 응답자들도 찬성보다는 반대 의견이 높았다고 하네요.

여론조사 설문을 찬찬히 뜯어보면 "삼성, LG, SK와 같은 대기업이 지상파방송을 소유, 운영하는 것에 대해…" 등으로 민주당 측 의견을 은근히 반영하려는 듯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삼성 등을 예시하지 않고 '소유, 운영'이 아니라 '지분 참여'라고 표현했으면 다소 달라질 수도 있었겠지요. 그러나 한나라당이 막판에 여론조사를 극구 반대한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전반적인 추세가 바뀌지는 않았을 듯합니다.

야당 추천위원들은 한나라당 법안에 대해 강한 반대 의견을 피력하며 민주당에 대해서도 섣불리 타협과 절충에 나서지 말 것을 주문했습니다. 자구를 일부 수정하거나 비율을 조정한다고 해서 독소조항이 원천적으로 해소될 수 없다는 주장이지요. 또 만일 표결 처리를 막아내지 못한다면 여당이 일방적으로 통과시키는 게 향후 악법 반대 투쟁을 벌이는 데 훨씬 효과적이라는 계산도 담겨 있는 듯합니다. 이들은 27일 별도의 보고서를 제출할 예정이라고 하는데, 한나라당 문방위 간사인 나경원 의원은 "이미 위원 과반수가 참여해 만든 공식 보고서를 접수했으므로 민주당 측 보고서를 접수하지 않을 방침"이라고 밝혔습니다.

입법전쟁 3라운드의 향방은?

현재 한나라당은 29일 본회의를 열어 비정규직 법안을 통과시키고 7월 들어 미디어 관계법을 통과시키겠다는 계획을 세워두고 있습니다. 여당은 야당에 "대안을 내놓으면 얼마든지 조정할 용의가 있다"고 말하는 한편 문방위 소속의원들이 법안 심사에 들어갔다고 하네요.

민주당 문방위 간사인 전병헌 위원은 "신문과 재벌이 방송을 소유하도록 하는 조항만 삭제한다면 협상이 가능하다"고 말했답니다. 이는 협상 가능성에 무게를 둔 발언이라기보다 여당안의 핵심 조항 포기나 사실상 철회를 요구하는 뜻으로 해석해야겠지요.

지난해 연말과 올 2월에 이어 이번 임시국회는 미디어 관련법을 포함한 입법전쟁 3라운드라고 볼 수 있습니다. 7월 25일까지로 돼 있는 이번 회기를 넘기면 8월 임시국회는 통상 열리지 않으므로 9월 정기국회로 넘어갈 수밖에 없지요. 정기국회에는 국정감사와 예산 등의 현안이 있기 때문에 여당이 일방적으로 통과시키기 어렵고 결국 연말까지 가게 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한나라당 당직자들이 회기 내 통과 의지를 불태우고 있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만일 이번에도 어물쩍 넘어가게 되면 자신을 지지해준 보수 세력들의 비판에 직면할 가능성도 있다고 보는 듯합니다. 문화체육관광부도 26일 전국의 50개 신문에 미디어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내용의 광고를 게재하며 대국민 홍보에 나섰지요.

반대로 민주당 입장에서는 미디어법 협상에 나섰다가 표결 처리에 직면하면 두고두고 책임론에 시달릴 것이라는 부담을 안고 있습니다. 그나마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덕분에 오른 지지율을 한꺼번에 까먹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도 떨치기 어렵겠지요. '의원직 총사퇴' 얘기까지 나오는 마당에 과연 누가 협상론을 내세울 수 있겠습니까. 언론노조는 여당이 언론법 상정을 시도하는 즉시 총파업에 들어가겠다고 밝혔고 미디어행동도 지금까지 전개해온 대국민 선전전에 박차를 가할 방침이라고 합니다.

미디어 집중도 조사 어떻게 할까

한나라당 및 자유선진당 추천 위원들은 보고서에서 시청 점유율과 시장 점유율을 조사해 허가 승인 심사에 반영하는 등 사후 규제를 실시하고 매체 집중도 조사방법을 마련해 주기적으로 조사한 뒤 규제 완화를 하는 방안을 권고했습니다.

이를 먼저 조사한 뒤 법 개정안에 반영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 같은데 순서가 뒤바뀐 느낌이 있긴 합니다. 미디어 집중도를 조사하기도 전에 교차소유 허용 대상이나 지분 한도 등을 정하는 것이 논란의 소지가 있고, 이미 진입을 허용한 뒤 규제를 하려면 쉽지 않거든요.

신문법 개정안에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신문ㆍ인터넷신문ㆍ인터넷뉴스서비스ㆍTVㆍ라디오ㆍ이동멀티미디어방송 등을 대상으로 여론집중도를 조사, 공표할 수 있다"고만 규정해놓고 구체적인 조사방법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돼 있습니다. 여론집중도에 따라 어떻게 사후규제를 하겠다는 조항은 신문법이나 방송법 어디에도 없지요.

이와 관련해 한국언론재단은 6월 15일 '미디어 집중도 조사모델'을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했습니다. 조영신 SK경영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미국의 다양성 지수를, 정준희 충남대 강사는 영국의 의견 다원성 정책과 미디어 집중 규제 사례를, 박진우 연세대 국학연구소 연구원은 프랑스 사례를, 심영섭 건국대 강사는 독일의 사례와 함께 OECD국가 미디어 집중 규제의 특징을 발표했지요.

신문시장에 대해서는 특별한 규제 제도가 없는 반면 방송에 관해서는 투자지분 제한이나 시청점유율 제한 등을 통해 자본 집중을 엄격히 통제하고 있고, 미디어 산업이 발달한 나라일수록 교차소유와 복수경영 규제가 복잡하고 세분화돼 있다는 것이 심영섭 씨의 설명이었습니다.

김영욱 한국언론재단 미디어연구실장은 한국의 미디어집중도 조사 방안을 제안했습니다. 그는 "미디어가 여론에 미치는 영향력의 정도를 매우 엄밀한 수준까지 측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여유 있는 한도를 설정할 필요가 있고, 전체 미디어 시장을 대상으로 측정하는 것은 힘든 만큼 개별 미디어 시장 내 집중도 측정에만 만족해야 하며, 사후 규제는 미디어의 공정성ㆍ균형성ㆍ다양성 등을 평가하는 내용 규제로 규제기구의 신뢰성이 문제가 되는 한국 실정에서는 사전 규제가 더 효율적"이라고 밝혔지요.

토론자로 참석한 윤석민 서울대 교수와 윤정민 조선일보 여론조사전문기자는 "매체별 위상이 달라지고 있는 추세에서 전체 미디어 시장 안에서의 집중도를 평가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으며, 윤호진 한국콘텐츠진흥원 수석연구원은 "보수신문들이 방송의 시장지배력을 과장하고 있다"는 견해를 피력했습니다.

사장 진퇴 문제로 비화된 'PD수첩' 논란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성을 보도한 MBC 'PD수첩'을 놓고 1년 이상 논란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6월 18일 검찰은 수사결과를 발표하며 제작진 5명을 기소했지만 논란이 일단락되기는커녕 오히려 증폭되며 엄기영 MBC 사장의 진퇴 문제로까지 비화되고 있지요.

▲ 전국언론노조 MBC본부가 지난 24일 한나라당사 앞에서 정권의 언론 장악 음모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PD저널
검찰은 'PD수첩'이 30군데에 걸쳐 의도적으로 사실을 왜곡했다고 주장하며 그 근거로 김은희 작가의 이메일 내용 일부를 공개했지요. 김은희 씨가 현 정부에 대한 적개심을 품고 취재내용을 조작해 정운천 당시 농림수산부 장관의 명예를 훼손하고 업무를 방해했다는 겁니다.

이에 대해 'PD수첩' 측은 검찰이 주장한 내용은 대부분 사실이 아니거나 실수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미 해명과 사과를 끝냈으며, 작가의 사적인 이메일 내용과 프로그램의 연관성을 입증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이를 공개한 것 자체가 인격권을 침해한 것이라고 반박했지요. 김은희 씨는 검찰과 이를 보도한 조선일보를 직무유기, 비밀침해,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습니다.

'PD수첩'에 그리 호의적이지 않았던 신문들도 검찰이 작가의 이메일 내용을 공개한 것에 대해서는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는 듯합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직후 검찰이 피의 사실이나 진술 내용을 언론에 흘리는 관행이 도마에 올랐고 이를 그대로 받아쓴 언론도 문제가 있다는 자성 분위기가 일었거든요. 설혹 검찰의 기소 내용을 뒷받침하는 증거자료라 해도 재판부에 제출하면 되지 공표까지 할 일은 아니었다는 것이지요.

2007년을 떠들썩하게 한 '신정아 파문' 때도 신정아 씨가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과 주고받은 이메일 내용 가운데 낯간지러운 대목이 보도돼 논란을 빚었습니다. 당시에도 검찰이 흘린 것이라는 의혹이 많았지만 이번처럼 검찰이 수사결과를 발표하며 직접 공개한 것은 아니었지요.

검찰은 이메일 공개의 불가피성과 적법성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범죄행위를 입증하기 위한 것이며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공적 목적이 인정된다는 것이지요. 어찌 보면 법적 논란이 불거지고 여론의 비난을 받는다 해도 검찰은 공개한 것 자체로 이미 그 이상의 효과를 거두었는지도 모릅니다.

검찰 발표 이튿날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은 "엄청난 사회적 혼란을 일으킨 무리한 편파ㆍ왜곡 보도를 한 게 드러났는데 거꾸로 언론 탄압, 정치 수사라고 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라면서 "외국서 그 같은 일이 일어났다면 경영진이 국민에게 사과하고 총사퇴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엄기영 MBC 사장은 "기소된 사건에 대한 청와대 대변인의 발언은 부적절하고 어처구니없다"면서 "권력의 핵심에 있는 사람이 언론사 사장의 진퇴를 어떻게 말하느냐"고 반문했지요.

이를 되받아 한나라당 초선 의원 40명은 "'PD수첩' 제작진의 취재와 보도과정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고 자체 정화기능을 발휘하지 못한 MBC의 제작책임자와 최고경영자는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한다"며 엄 사장의 사퇴를 촉구했습니다.

언론계에서는 'PD수첩' 보도에 중대한 오류가 있었고 경영진이 의당 책임을 느껴야 한다는 견해가 있긴 하지만 법원 판결도 나기 전에 정부와 여당이 나서는 것이 적절치 않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습니다. 일각에서는 검찰과 정부, 여당이 이처럼 MBC를 압박하는 배경에는 'PD수첩' 광우병 보도가 지난해 촛불시위를 촉발하며 정권 출범 1년을 허송세월하게 만들었다는 이른바 괘씸죄가 깔려 있고, 미디어 관련법 통과를 위한 사전 정지작업에다 오는 8월 8일 임기가 끝나는 방송문화진흥회 이사를 교체하기 위한 포석의 의미도 담겨 있다고 풀이합니다.

아마도 방문진 이사 선임과정에서부터 MBC 노조를 비롯한 언론운동진영과 정부ㆍ여당 간에 한바탕 격돌이 불가피할 듯합니다. 방문진 이사 교체 후 임기가 2011년까지인 엄 사장을 조기에 하차시키려 한다면 충돌의 수위가 더욱 높아지겠지요.
 
피규제기관 수장이 규제기관 향해 공박

이석채 KT 회장이 6월 24일 국가경영전략연구원 수요정책포럼에서 "방송통신위원회는 기본철학이 잘못됐다. 합의제 조직인 방통위가 행정 기능인 통신을 다루는 것은 잘못이다. 방통위는 원래 중립적인 기관으로 만들어져야 하는데 여야 합의제 기관으로 됐다. 기관의 성격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반드시 고쳐야 한다. 차관이 없어서 부처로서의 통일된 의견이 만들어지지 않고 방통위 공무원들은 (상임위원이) 임기제이기 때문에 승진의 희망도 사라지고 있다. 부위원장은 돌아가면서 해야 하는데 야당이 추천한 인사가 부위원장이 되면 행정부 회의에서 발언에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 방통위의 정상화가 필요하다" 등의 발언을 쏟아냈습니다.

청와대 경제수석과 정보통신부 장관을 지내긴 했지만 피규제기관인 통신업체의 수장이 규제기관이자 정부 부처를 상대로 공격적인 표현을 서슴지 않은 것은 대단히 이례적이지요. KT 측도 "이 회장이 정통부의 부활 필요성을 묻는 청중의 질문에 대해 합의제 기관의 어려움에 대한 의견을 표명한 것일 뿐 방통위 구조를 정면 비판한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에 나섰습니다.

방통위의 고위 관계자는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표시하더군요. "정통부처럼 통신정책을 해오다가 통신업체 사장들이 줄줄이 감방에 가지 않았나. 합의제로 운영하다 보니 여론을 충분히 수렴하고 감시 효과도 높아져 특혜 시비가 사라지는 장점이 있다"라며 일축했습니다.

야당 문방위원 전원도 25일 성명을 내 "이석채 씨가 산업 진흥을 운운하면서 합의제 기구로서 방통위의 무능을 이야기하는 것은 방통위의 상전이요 관리자임을 자임하는 것"이라며 "야당 추천 위원이 부위원장을 맡으면 안된다는 식으로 말한 데 대해서도 끝까지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비판했지요.

야당이 이처럼 발끈하는 것에는 또다른 사연도 있습니다. 17대 국회 시절 민주당이 한나라당과 방통위 설치법을 논의하며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부위원장은 대통령이 속하지 않은 교섭단체에서 한다"고 합의했는데, 막상 방통위가 구성된 뒤 전체회의에서 국회 속기록에도 남아 있는 여야 합의내용을 어기고 한나라당 추천 위원인 송도균 전 SBS 사장을 부위원장으로 선출했거든요.

당시 여권 추천위원은 "조직의 시발점에 서 있기 때문에 대정부간 협력 사안과 현실적인 조직 안정화 차원에서 필요하다. 여타 행정업무에서 소위원장을 맡고 여타 기관 대표해서 부처 차관 역할을 한다. 위원장과의 호흡도 중요하다" 등의 이유를 내세웠고, 최시중 위원장이 "3년 임기의 반반을 나눠 여당 측이 먼저 하고 야당 측이 나중에 부위원장 하면 좋겠다"고 제안해 표결 끝에 관철했지요.

이를 문제 삼아 민주당 소속 당시 문광위원들은 최 위원장과 함께 송 부위원장을 탄핵하겠다고 나섰고 문광위 회의에서도 부위원장 명패를 뗄 것을 요구하는 소동도 빚었지요. 이런 아픈 기억이 남아 있는 터에 이석채 회장이 '야당 추천위원이 부위원장이 되면 문제'라는 취지의 발언을 늘어놓았으니 여권 측과 교감을 갖고 여론을 떠보기 위한 발언으로도 의심하며 발끈할 수밖에 없었겠지요.

송 부위원장의 임기가 오는 9월인데, 만일 이석채 회장의 발언을 핑계 삼아 이번에도 여권 추천위원이 부위원장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표결 처리를 강행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이에 대해 방통위의 한 관계자는 "아직 임기가 남았고 그때 가서 회의를 해봐야 한다"며 여운을 남기더군요.

반대로 이 회장의 발언을 지지하는 그룹도 있습니다. 매일경제가 25일자 사설을 통해 "위원들이 정파적 고려를 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신속한 의사 결정이 어려워지고, 이 때문에 IT 경쟁력이 뒷걸음질치고 있다"고 두둔하고 나섰고, 아이뉴스24의 이균성 기자도 '이석채 회장, 할 말 했다'는 제목의 칼럼을 썼습니다.

지금으로서는 이 회장 발언의 파장이 그리 오래 갈 것처럼 보이지는 않지만, 한동안 잠복했다가 언제라도 다시 불거질 수 있지요. 당장 오는 9월 부위원장을 교체하려 할 때도 재론될 겁니다. 당시 여권 추천위원들은 "여야 합의가 간사 사이의 담화 수준으로 알고 있다"며 부위원장 선출을 강행했는데, 설마 이번에는 최시중 위원장이 내놓은 제안마저 스스로 깨려 하지는 않겠지요.

※ 이 기사는 한국언론재단에서 제공했습니다. [이희용 기자  블로그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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