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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BS 스페셜 <박영석, 에베레스트에 코리아루트를 개척하다> /  28일 오후 11시 20분

▲ ⓒSBS
기획의도

지난 5월 20일,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에 한국인 최초의 길 ‘코리아 루트’가 열렸다. 우리나라는 히말라야 14좌 완등자를 3명이나 배출한 산악 강국임에도 불구하고 8000m급 14개 봉우리 중 한국인이 직접 개척한 등반루트는 하나도 없다. 이번에 개척한 ‘코리아 루트’는 에베레스트 등반루트 중 가장 어렵다는 남서벽이라는 점에서 더 큰 의미를 갖는다. 한국산악계의 오랜 숙원이었던 ‘코리아 루트’의 완성 뒤에는 한 산악인의 집념과 회한이 숨어있다. 산악인 박영석은 에베레스트 남서벽에 네 번 도전, 네 명의 동료를 잃었다. 특히 2007년에 정상공격에 나섰다가 눈사태로 사망한 오희준, 이현조 대원은 10년간 한 아파트에서 숙식을 같이해온 친동생 같은 존재다. 박영석대장의 4전 5기 최후의 도전은 남서벽에서 희생된 후배들과 맺은 산사나의 약속이다. '최후의 도전 - 코리아루트를 뚫어라' 는 2007, 2008년 연거푸 실패한 남서벽 도전기와 2009년 5월 '코리아 루트'가 뚫리는 역사적 순간을 3년간 생생하게 기록한 장기 기획 산악 다큐멘터리다. 

가슴속에 새겨 둔 약속

산악인 박영석 대장은 에베레스트 남서벽에서 사랑하는 후배를 넷이나 잃었다. 특히 2007년 남서벽 정상 공격조였던 오희준, 이현조 대원은 10년간 히말라야 설산과 남북극을 함께 누빈 친동생 같은 후배다. 자신을 믿고 죽음의 벽 남서벽에 서슴없이 올랐다가 사늘한 시신으로 돌아온 동생들 앞에서 박대장은 한동안 절망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그를 일으켜 세운 건 희생된 두 대원의 가족이었다. 꼭 남서벽에 신루트를 완성해 먼저 간 동생들의 한을 달래달라는 가족의 당부를 박대장은 오늘까지 한 순간도 잊은 적이 없다. 세계 최초의 산악 그랜드 슬램을 달성했던 영광과 47살이라는 많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박영석 대장은 작년 가을에 이어 또다시 생명을 건 위험한 도전에 나섰다. 운명의 남서벽을 넘지 못하고서는 자신의 존재는 더 이상 의미가 없기 때문에.

죽음의 직벽, 에베레스트 남서벽

에베레스트 남서벽은 세계 3대 난벽 가운데 하나, 수직고도 2500m의 직벽을 올라야지만 정상에 닿을 수 있다. 이제까지 남서벽에 등반 루트를 개척한 나라는 영국과 러시아 두 팀뿐, 영국과 러시아팀은 20명이 넘는 대규모 원정대를 파견, 대대적인 물량작전을 통해 남서벽 신 루트개척에 성공했다. 남서벽은 셰르파들도 꺼리는 등반로, 그만큼 위험한 벽이다. 경사 70도가 넘는 가파른 직벽을 대원들이 앞장 서 뚫어야 한다. 바람이 불면 총알처럼 떨어지는 낙석을 피할 데가 없다. 숨쉬기도 힘든 8000m 암벽구간을 하켄을 박으면서 루트개척을 한다는 건 거의 초인적인 투지가 아니면 불가능하다. 5명 소수 정예로 꾸민 한국원정대의 사투가 생생히 포착되었다.

퇴로는 없다, 코리아 루트를 뚫어라

2009년 5월 20일 자정, 정상공격을 향해 8400m 캠프5를 떠난 대원들은 서릉의 칼날 능선에 매달려 동이 틀 때까지 악전고투를 해야 했다. 대원들은 운행 내내 바위에 달라붙어 기어오르느라 옷이 온통 찢어졌다. 준비한 로프도 모자라고 산소도 부족해 돌아설 수도 없는 상황, 정상에 오르지 않으면 하산이 불가능하다. 대원들은 추락에 대비해 서로의 몸을 묶는 안자일렌(확보)을 하면서 한 발자국씩 정상을 향해 전진했다. 그들에게 퇴로는 없었다. 살기 위해서 오로지 정상을 밟아야 했다. 목숨을 건 15시간의 숨 막히는 사투가 에베레스트 남서벽에서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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