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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에서] 박정남 독립PD

“벼룩의 간을 내드세요...” 어제 내 옆에서 편집을 하던 미얀마에 관한 다큐프로그램 안에 나온 말이다. 한국 드라마를 미얀마 말로 번역을 하는 장면에서 나온 말이었는데 “아주 작은 벌레의 피를 빼먹는 거야...” 이렇게 번역이 됐다. 그렇다. 벼룩, 아주 작은 벌레. 보이지도 않는 작은 존재들이다. 이들의 간을 내먹고 피를 빨아먹는다?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요즘 그 상식이 무너지고 있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 경향신문 6월30일자 4면.
최저임금을 깎겠다고 한다. 최저임금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의 인간다운 삶을 지켜주는 마지막 방패다. 그리고 우리 사회가 지켜야할 양심의 마지노선이다. 내가 13년 전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시작 했을 때 받았던 임금은 한 달에 30만원, 연봉 360만원이었다. 그나마 전부 받아 본 적도 없다. 독립 다큐멘터리와 방송 다큐멘터리의 접점을 찾고자 했던 실험적 독립 제작사이었기에 애초에 수익을 기대할 수 없는 구조였다. 당시 우리는 우리가 버는 돈을 모두 제작비에 투여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생활비는 제작에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아르바이트로 충당을 했다. 하지만 우리가 30만원이라는 우리 스스로의 최저 임금을 정한 이유는 스스로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오늘 한 포털에서 최저 임금 생활자의 인터뷰를 읽었다. 쌀을 살 돈이 없어서 2,000원짜리 칼국수로 끼니를 때웠다고 한다. 하루에 10시간을 뼈 빠지게 일하면서 78만원을 받다가 올해 겨우 83만원을 받는다고 한다. 이렇게 한 번 제안을 하고 싶다. 최저 임금을 깎자고 제안 하시는 양반들 당신들이 한 번 최저 임금으로 한 달만 살아보시라! 소 99마리를 가진 이들이 이 사회에서 가장 어려운 사람들의 피를 빨아서 100마리를 채우려한다. “좀 고마 해라! 니들은 이미 많이 묵었다 아이가!” 좀 나눠라, 이 돼지들아!

만약 최저 임금을 깎아서 지금의 경제 위기가 극복될 수 있다면 그건 이 사회의 경제 구조가 잘못됐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 아닌가? 경제 위기를 구실 삼아 양심의 마지노선을 무너뜨린다면 차라리 미래를 생각해서 우리 경제구조를 이 기회에 리빌딩 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지 않은가?

사실 내 주변에는 최저 임금보다도 못한 임금을 받는 이들이 많다. 바로 독립 제작사의 조연출들, 서브작가 또는 자료조사원으로 불리는 방송 인력들이다. 대부분의 독립 제작사에서 방송생활을 시작하는 친구들이 처음 받는 월급은 60~80만원이다. (10년 전부터 이 임금 기준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80만원이라는 돈이 작년까지는 최저임금보다 많았지만 지금은 최저 임금보다 적은 금액이다. 대부분 주 6일 이상을 일하고 일주일에 2~ 3번은 집에 못 간다. 바빠서 못 가는 경우도 많지만 집에 갈 택시비가 아까워서 회사 소파나 편집실의 간이침대에서 새우잠을 자는 경우도 있다.

▲ 박정남 독립PD
사실 나는 현재의 제작비 시스템에서는 조연출의 인간적인 삶을 보장할 수 없기에 몇 년 째 조연출을 쓰지 않고 있다. 경력이 오래된 선배들의 얘기를 들어 보면 방송을 시작한 이후로 지금처럼 제작비 상황이 힘들었던 적은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아무리 힘들어도 조연출과 자료조사원의 월급은 깎지 않는다. 그들이 인간으로서 지켜야할 존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저임금이 무너진다면 방송 표준제작비 문건에 조연출의 한 달 월급이 70만원이라고 명문화 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때 또 한 번 상식이 무너질 것이다. 그때 흐르는 눈물은 진짜 피눈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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