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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고재열 시사IN 기자

▲ 고재열 시사IN 기자
이명박 정부 들어 언론자유가 군부독재 시절로 후퇴했다고 말하는 언론인들에게 보수단체 사람들은 항변한다. “무슨 얘기냐. 할 말 다 하지 않느냐. 군부독재 시절로 후퇴했다고 말할 수 있는 자유가 있지 않느냐”라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할 말은 다 한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할 말 다 하는 사람들이 그 뒤에 어떤 비용을 치러야 하는지가 문제다.

편집국 옆자리 주진우 기자는 얼마 전 검사 6명에게 3천6백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BBK 김경준씨가 검사들이 회유와 협박을 하려한다는 메모를 누이인 에리카 김에게 보냈는데, 그 메모를 단독 보도한 것 때문이었다. 메모가 가짜였던 것도 아니었는데, 반론권을 주지 않았다는 것 때문에 배상 판결을 받은 것이었다.

매일 주야로 브리핑을 하고 기자들을 끼고 사는 검사들이 반론권을 행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구미 선진국에서는 한 기사의 공정성을 따질 때 기사 안에서만 따지지 않는다. 그와 관련한 보도 전체를 보고 알려지지 않은 소수의 입장을 전할 경우, 비록 일방적이라 하더라도 공정한 것으로 본다. 그러나 우리는 아니었다.

수시로 이메일을 주고받았던 <PD수첩> 김은희 작가는 이메일을 압수수색 당했다. 지인과 주고받은 이메일에서 ‘이명박에 대한 적개심’을 드러낸 것 때문에 검찰에 기소 당했다. 아찔했다. 김 작가와 주고받은 메일 속에 ‘검찰에 대한 혐오감’을 드러낸 문장이 있을 터인데, 나중에 그것을 트집잡을 것 같았다. 우리는 ‘적개심’과 ‘혐오감’이 죄가 되는 세상에 살고 있다.

가장 좋아하는 논객 중 한 명인 진중권 교수는 요즘 뉴라이트 단체의 검찰 고소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정부 압력을 받은 학교 측에서 그의 강의를 개설하지 않은 것이었는데, 정부는 역으로 강의를 하지 않고 강사료를 받았다며 ‘부당수령’이라고 몰아붙였다. 사람 한 명 파렴치범 만드는 것 잠깐이었다. 진 교수와 블로거들이 만나는 간담회를 주선하고 지켜보면서 한숨이 나왔다. ‘언젠가 나도 저 자리에 앉아있겠지’

▲ 한겨레 6월26일자 10면.
엊그제 동료 블로거 ‘미디어몽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경찰에 소환된다는 내용이었다. 1년 전 올렸던 동영상에서 보수단체의 폭력행위를 담은 것 때문이었다. 왜 1년 전 일을 지금에서야 조사하는 것일까. 그를 상담해 준 변호사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내용이다. 모든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하라”라고 조언해 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결과는 장담 못한다.

일주일에 한 번씩 받는 전화가 바로 누가 소환되었다 혹은 누가 연행되었다는 내용이다. 얼마 전에는 좌파 매체를 표방하는 <레프트21>의 수습기자로 일하는 김지윤씨가 긴급 체포되었다는 문자를 받았다. 누리꾼들에게 ‘고대녀’로 알려진 고대생이었다. 용산참사 관련 불법집회에 참가했다는 이유로 그녀는 과외 아르바이트를 가러 나오다 붙잡혔다.

눈을 뜨면 새로운 사람이 잡혀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스스로 ‘두려움을 정복하자’며 ‘겁테크’에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위축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자꾸 움츠려드는 나를 다시 일깨운 사람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었다. 그가 죽음으로 말하려고 했던 것을 살아있는 우리가 전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육체의 감옥’ 보다는 ‘마음의 감옥’에 갇히는 것이 더 고통스러울 것이라는 생각에 용기를 냈다.

그래서 생각해낸 방식은 내 구속에 대한 그림을 그려보는 것이었다. 사형수가 죽음의 공포를 이겨내는 방법은 자신의 죽음을 머릿속으로 그리는 것이다. ‘젖은 자는 비를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했던가, 머릿속에 그림을 그리자 공포심이 사라졌다. 그동안 품앗이를 해둔 것이 많아서 잡혀가면 떠들어 줄 곳이 많을 것 같았다. 기자일 뿐만 아니라 블로거이기까지 하다. 주류와 비주류 미디어 양쪽 다 시끄러워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소한 나의 억울함이 알려지기는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안심이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날이 왔다. 6월24일의 일이었다. 그 날 저녁 문화연대에서 주최하는 덕수궁 대한문 앞 토론회에 패널로 참석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경찰의 방해로 토론회는 열리지 못했다. 주최 측은 토론회 대신 발제자와 패널들에게 자유발언을 시켰다. 경찰과 대치하고 있는 시민들 앞으로 나가서 발언을 시작했다.

그때, 자신을 남대문경찰서 경비과장이라고 밝힌 경찰간부가 5분 후에 강제해산시키겠다고 확성기로 말했다. 1차2차 경고 방송을 마쳤고 이번이 마지막 경고라는 것이었다. 5분 후, 경찰은 약속을 지켰다. 순식간에 시민들을 밀어냈다. 경찰과 시민들 사이에 있던 나는 고립된 섬이 되었다.

출장 다녀온 길이라 짐이 많았는데, 그 혼비백산의 와중에 짐이 분실되지 않을까 걱정하면서 조용히 연행을 준비하고 있는데, 전경들은 모두 나를 지나쳤다. 전경들 틈을 비집고 밖으로 나왔다. 끝까지 자리를 지켰던 시민 몇몇이 연행되는 모습이 보였다. 머릿속에 상상의 목소리가 들렸다. ‘회개하라, 감옥이 가까웠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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