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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도쿄=백승혁 통신원

일본에서는 정규 방송 중에 방송이 중단되고 갑자기 긴급 방송으로 전환되는 경우가 간혹 있다. 그것도 모든 방송국이 거의 동시에 말이다. 대부분이 대형 지진이 일어났거나 일본 천황 일가에 대한 뉴스의 경우다. 광고주의 눈치를 보는 민간 방송국은 웬만하면 정규 방송을 중단하지 않는데 이러한 경우에는 예외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며칠 전 정규 방송이 중단되는 사태까지는 아니더라도 조금 황당한 경험을 했다. 여느 때처럼 아침 6시에 일어나 텔레비전을 켰는데 얼마 있자 마이클 잭슨의 사망 관련 속보가 흘러나왔다. 비몽사몽 중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필자도 마이클 잭슨 팬의 한 사람으로서 역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관련 뉴스가 방송될까 싶어서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기 시작했다. 아직 사망이 공식적으로 발표되기 전이어서 그런지 6시대 뉴스에서는 별로 다루지 않았다.

▲ 미국의 연예 전문 뉴스 사이트 TMZ 닷컴 홈페이지에 올라온 마이클 잭슨 사망 관련 보도. <사진제공=TMZ 닷컴>

그런데 방송의 판도는 8시부터 완전히 돌변했다. 여전히 사망 공식 발표를 확인하지 못한 상황에서도 마치 정규 방송을 중단하고 긴급 방송을 내보내는 것처럼 후지테레비와 테레비아사히의 대표적인 아침 뉴스 와이드쇼 채널은 방송 시간인 8시부터 일제히 마이클 잭슨 보도부터 시작했다. 방송은 “오늘은 매우 유감스럽게도 프로그램의 내용을 대폭 변경하여 방송하게 됐습니다”라는 설명으로 시작됐다.

특히 후지테레비의 인기 와이드쇼 〈토쿠다네〉는 마이클 잭슨 사인에 대한 특집 방송으로 편성되면서 관련 보도로 거의 ‘도배’를 했다. 미국의 연예 전문 뉴스 사이트 TMZ 닷컴의 보도를 인용하면서 시작된 〈토쿠다네〉는 2시간 방송 중에서 장장 1시간 30분 남짓한 시간을 마이클 잭슨 관련 소식에 할애했다. 그러나 갑작스럽게 편성된 영향인지 동일한 뮤직비디오 등의 자료 화면 반복과 상황 진전 없는 미국 현장 소식을 듣기 위한 특파원과의 연결이 주된 내용이었다. 의미 없는 반복이 계속된 것이다.

이에 반해서 경쟁 뉴스 와이드쇼인 테레비아사히의 〈슈퍼모닝〉은 기존에 예정하고 있던 뉴스와 병행하는 스타일로 방송했다. 물론 뉴스의 시작과 많은 부분이 마이클 잭슨의 사망 관련 소식이었지만 〈토쿠다네〉에 비하면 뉴스 채널로서의 최소한의 성의는 보였다고 할 수 있다.

필자가 〈토쿠다네〉의 이번 마이클 잭슨 사망 관련 보도에 위화감을 느낀 것은 비록 연성화된 와이드쇼라고는 하나 〈토쿠다네〉는 어디까지나 뉴스를 중심으로 전해 온 보도 프로그램이기에 사회 제반 문제에 대한 논의와 정보 제공을 등한시해서는 안 된다는 이유에서다. 물론 하루의 특집 편성이었다고는 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일본에서는 정권의 교체설까지 나오면서 현 정권의 수장인 아소 총리의 인사 문제와 중의원 해산 문제 등으로 나라의 국정이 어수선한 상태다.

또 6월 27일은 7명이 사망하고 300명 이상이 중경상을 입은 신흥종교단체인 옴진리교가 일으킨 마츠모토 사린 사건이 발생한지 15년 되는 날이다. 다시 말해 일본의 민간 방송국들이 국민들의 알권리를 충족시켜주기 위한 저널리즘 기관이라고 스스로 일컫고 있다면 그에 걸맞은 행동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 도쿄=백승혁 통신원 / 일본 조치대학교 신문학 전공 박사과정

후지테레비는 같은 날 저녁 7시에 버라이어티 정규 방송을 중단하고 마이클 잭슨 사망 관련으로 긴급 특별 방송을 편성했다. 그렇다면 오전 뉴스 시간의 특집 방송의 의미는 무엇이었단 말인가. 물론 세계적인 아티스트의 사망 소식을 뉴스화하는 것에 대한 이견은 없다. 그러나 다른 시간대에 편성이 가능함에도 굳이 전할 뉴스가 없었다는 듯 뉴스 시간의 거의 전부를 할애해서 특집 방송한 편성 의도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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