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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이정호 민주노총 정책국장

지난 6일 아침 정부의 일자리 창출정책의 하나인 희망근로사업에 참가했던 전남 순천의 60-70대 할머니 4명이 막걸리를 먹고 숨졌다. 도시에선 6억원 넘는 자산가도 희망근로에 참여하고 있다는 보도가 엊그제 나왔다. 아들이 은행 지점장인 중산층 노인도 희망근로에 나섰다. 10분 일하고 그늘에 누워 잠만 자고 오는데도 한달에 80만원씩 돈을 주는데 누가 마다하겠는가. 정작 시급한 차상위계층은 참여에서 제외되는 사각지대도 있다.

농촌에선 한창 농번기에 바빠야 할 일손들이 희망근로에 매달리는 바람에 때 아닌 일손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어차피 돈을 뿌리기 위한 사업이라 준비된 일거리도 마땅찮아 잡초 좀 뽑다가 그늘에 앉아 쉬다 돌아온다.

이번에 사고가 난 순천에서도 오전 8시부터 하천변에서 잡초를 뽑는 게 희망근로 일이었다. 한 시간 남짓 지난 오전 9시10분쯤 이들은 집에서 가져온 막걸리를 먹고 변을 당했다. 일 시작한지 한 시간 만에 막걸리를 먹을 정도의 노동강도로 일해도 한 달에 80여만원씩 돈이 나온다. 반면에 공공기관이나 민간회사의 대형빌딩에서 일하는 여성 미화원들은 하루 죽도록 일해 겨우 그 돈을 받는다. 이들 대부분이 최저임금 사업장이라서 83만원 남짓한 돈을 받는다. 미화 노동자들은 새벽녘 아침 첫 차를 타고 출근한다.

▲ 한겨레 7월7일자 10면.
정부와 국회는 지난 4월말부터 이른바 ‘슈퍼추경’이란 이름으로 희망근로 사업에 1조3000억원을 투입해 40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희망근로’ 사업을 시작했다. 국회가 지난 4월30일 말도 안되는 사업을 통과시킬 때 함께 승인한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을 지원하기 위한 예산은 그 돈의 10분의 1도 안되는 1100억원에 불과했다. 없는 일자리를 억지로 만들어 집행하는 희망근로사업은 시작부터 많은 문제를 안고 출발했지만 사업 시작 전에 문제점을 지적해준 언론은 드물었다.

지난 4월30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나온 KBS 보도는 “철저한 준비를 통해 경제위기 극복에 기여할 수 있도록 조속히 집행하겠다”는 윤증현 기획재정부장관의 인터뷰까지 자상하게 붙였지만 정작 ‘철저한 준비’에 대해선 침묵했다. 희망근로가 시작되기 전까진 대체로 정부 대변인 수준의 보도가 이어졌다.

막상 희망근로사업이 시작되자마자 곳곳에서 문제가 터져 나왔다. 뒤늦게 희망근로로 받은 상품권이 “되네 안되네” 북새통이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희망근로는 매월 받는 80여만원 가운데 일부는 상품권으로 준다. 그런데 이 상품권의 사용기한은 고작 3개월이고 현금화 기한은 7일에 불과하다. 상품권을 받지 않는 상점이 훨씬 더 많다. 하다못해 상품권으로는 기본적인 공과금도 낼 수 없다.

이 지경에 이르자 관료들은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지난달 24일 정부중앙청사에 여러 부처의 국장급 간부공무원들이 모였다. 박영준 총리실 국무차장이 주재한 ‘고용 및 사회안전망 TF 회의’가 있었다. 참석자 중에 한 사람은 “희망근로사업이 노동력을 흡수해 농촌의 공단 일손부족 문제가 생겼는데 이에 대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또 “인근 산업현장과 건설현장의 노동시장에 미치는 ‘노동공급 감소’ 등 파급효과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희망근로가 정작 필요한 노동시장에 투입될 노동공급을 감소시키는 악영향을 주고 있다는 지적이다.

희망근로는 올 연말이면 끝나는 한시사업이다. 잠시 실업자 숫자를 눈속임할 뿐인 이런 사업에 1조 넘는 예산을 쏟아 붓는데도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는 뉴스를 보지 못했다.

▲ 이정호 민주노총 정책국장
지난 6일 KBS <뉴스9>는 처음 4꼭지를 경의선 선로를 덮친 타워크레인 사고로 채웠다. 다음 4꼭지는 대통령의 재산기부로 채웠다. 9번째 꼭지는 정부의 녹색성장 띄우기 기사였다. 10번째 꼭지는 위구르 유혈사태였다. 메인뉴스에 전면배치한 10개 기사는 무엇 하나 파헤친 게 없었다. 발생기사거나 아니면 정부 발표를 그대로 옮겼을 뿐이다. 대통령의 재산기부는 대선 공약으로 내건 지 20개월이 다 돼 뒤늦게 나왔다. 그 사이 정부는 대통령의 재산기부를 추진하는 위원회까지 만드는 요란을 떨었다. 이런 뉴스를 주요 시간대에 무려 4꼭지나 보도했다. 나눔문화의 파급 효과를 예상하거나 재산기부의 해외사례까지 동원했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로 전파를 낭비하고 있다.

양대 지상파 방송의 이사진이 바뀌는 오는 8, 9월을 지나고 나면 이런 뒷북 보도는 더 자주 출현할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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