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언론법 직권상정에 ‘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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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클리핑]용산 참사 6개월…뒷짐 지고 있는 정부

여야의 언론법 대치 정국이 극한으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또다시 최대 변수로 떠올랐다.

박근혜 전 대표는 19일 측근을 통해 “미디어법 처리를 위한 본회의에 참석하게 된다면 반대표를 던질 것”이라고 밝혔다. 당장 20일 본회의를 열어 강행 처리하려던 한나라당은 당황한 기색이고, 정세균 대표의 단식농성이라는 초강수를 던졌던 민주당은 반색하는 분위기다. 이로써 언론법 처리 향배는 이번 주 중반 이후에 가늠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전 대표의 ‘미디어법 반대표 행사’ 발언은 지난 주말 정치권은 물론 언론에도 상당한 파장을 일으켰다. 20일 주요 일간지들은 박 전 대표의 발언에 대한 저마다의 해석을 내놓았다. 〈한겨레〉와 〈경향신문〉은 박 전 대표의 발언을 “국민 여론을 무시한 법안 강행 처리에 대한 견제구”로 해석한 반면, 조·중·동은 박 전 대표의 ‘NO’ 한 마디로 본회의 처리를 연기한 여당을 나무라기 바빴다.

경향·한겨레 “여권 일방통행에 ‘제동’, 타협 종용”

경향은 ‘박근혜, 합의처리 무시한 당에 강력 경고’란 제목의 기사에서 “박 전 대표가 이례적으로 ‘반대표 행사’라는 강도 높은 제동을 걸고 나선 것은 이 같은 여권 핵심부의 일방통행에 경고와 거부감을 표출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경향은 이어 “당장 한나라당이 박 전 대표의 ‘반대표 행사’ 입장을 무시하고 예정대로 강행하기가 부담스러워졌다”고 설명했다. 박 전 대표의 강력한 영향권에 있는 친박계 의원들의 ‘수적 규모(60여명)’를 감안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박 전 대표의 입장 표명은 직권상정 여부를 고심하고 있는 김형오 국회의장의 선택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경향은 “김 의장으로서는 ‘박근혜 변수’를 고리삼아 여야의 협상을 추가로 요청하는 등 좀 더 중재하는 쪽으로 나아갈 명분이 생긴 모양새”라고 전했다.

한편으로 박 전 대표의 발언이 좀더 ‘권력적’인 파장을 일으킬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경향은 “박 전 대표의 발언으로 미디어법 처리 향배가 좀 더 안개 속으로 빠진 국면이지만, 종국에 미디어법 처리가 실패할 경우 친이와 친박 간 갈등은 예전과 전혀 다른 차원으로 전개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전했다.

▲ 한겨레 7월 20일 3면

한겨레는 ‘국민여론 업고 법안 강행에 강력 견제구’란 분석 기사를 통해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의 ‘언론관련법 반대 표결’ 발언은 자신을 직권상정의 디딤돌로 활용하려는 안상수 원내대표를 비롯한 친이명박계 강경파에 대한 불만과 경고를 담고 있다는 게 한나라당 내의 중론”이라고 설명했다.

한겨레는 이어 “박 전 대표의 발언이 친이 강경파에 대한 불편한 심기 표출을 넘어 직권상정이라는 외길 수순에 집착하는 강경론에 제동을 걸어 여야의 타협을 종용하려는 적극적인 의도가 담긴 것이라고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고 덧붙였다.

한겨레는 그러나 “다만, 박 전 대표의 저항이 어디까지 이어질지는 예단하기 어렵다”며 “박 전 대표가 반대표결에 나설 수는 있지만, 이 경우 친이-친박의 표대결에 따른 정치적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 한나라당 안이 부결되면 ‘내부로 총구를 돌렸다’는 비판과 함께 책임 추궁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거꾸로 친박계 전체가 반대표결에 동참하지 않으면 정치적 위상이 실추될 것”이라고 전했다.

친박계도 탈출구는 열어두는 모습이다. 파문이 확산되자 친박계 중진인 홍사덕 의원은 기자회견을 자청해 “한나라당이 관철하고자 하는 수정안이 어떤 내용인지 국민에게 충분히 알려질 수 있도록 야당과 더 노력할 시간이 남았음에도, 한나라당 원안을 직권상정해 관철하려는 것 같이 알려진 것을 우려하는 것이지 직권상정 자체를 반대하는 건 아니”라고 말했다.

조선 “혼돈 밀어 넣는 발언, 바람직하지 않아”

한편 〈중앙일보〉는 박 전 대표의 발언을 ‘소동’으로 표현했고, 〈동아일보〉는 “당내에서는 박 전 대표가 친이(친이명박) 진영의 정국 독주에 제동을 걸려는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면서 “야당과의 미디어법 합의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공감대가 당에 형성돼 있는 상황에서 박 전 대표가 원칙론적인 ‘훈수정치’를 하는 것은 주류가 벌여 놓은 판에는 나서지 않겠다는 뜻을 시사한 게 아니냐는 것”이라고 전했다.

▲ 조선일보 7월 20일 3면
〈조선일보〉는 ‘미디어법 처리 앞둔 여당 내의 황당한 일’이란 제목의 사설에서 “미디어법 처리가 임박한 가운데 한나라당이 적전(敵前) 분열의 모습을 보인 것”이라며 “박 전 대표가 현 정권 주류와 공개적으로 부딪히는 것은 이 정부 출범 후 수도 없이 되풀이돼 온 일이다. 정말 대책 없는 여당”이라고 비판했다.

조선은 “박 전 대표 같은 유력 정치인이 주요 현안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고 때론 소속 정당과 다른 주장을 하는 것을 잘못됐다고만 할 수 없다”면서 “그러나 박 전 대표는 한나라당의 유력한 대선후보로 꼽히는 사람이다. 그런 위치에서 여야 대치가 막바지에 이를 때마다 여야의 경계선을 넘나드는 발언으로 정치권을 혼돈 속으로 밀어넣는 일을 되풀이하는 것은 바람직스럽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조선은 “미디어법 같은 주요 현안에서 초기부터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하고, 여야 간 교착 상황을 타개하는 데 일조(一助)하는 것이 차기(次期)를 생각하는 책임 있는 정치인의 자세일 것”이라고 충고했다.

중앙 “한나라당, 집권당으로서 불구”

중앙도 ‘한나라당, 제가도 못하면서 무슨 치국인가’란 사설을 통해 “이번 사태는 집권당이 덩치만 공룡일 뿐 체질은 허약할 대로 허약해 국정 사안을 처리할 능력이 없는 불구의 상태임을 여실히 보여 줬다”면서 “역대 집권당 중에서 국정의 고비마다 이토록 무책임하게 자중지란(自中之亂)을 보인 전례는 거의 없다”며 강한 비판을 쏟아냈다.

중앙은 “지난 4월 재·보선 참패 이래 여권은 국정 쇄신을 논의해 왔다. 우리는 쇄신의 요체는 이명박 대통령과 박 전 대표의 화합이요, 집권세력의 단결이라고 수차례 강조해 왔다. 그러나 이명박 세력은 이 문제를 외면하고 덮어 뒀다”면서 “주류는 미디어법을 비롯한 각종 개혁 입법에 대해 박근혜 세력과 공감대를 이뤄 내는 데 주력했어야 했다”고 주장했다.

중앙은 “하지만 주류는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당론이라는 깃발만 들면 모든 의원이 따라오리라고 안이하게 대처한 것”이라며 “결과적으로 보면 야당은커녕 비주류조차 설득하지 못했고, 결국 ‘한나라당 당론’이란 건 없는 셈이 됐으며, 비주류의 이탈로 다수결조차 위태로운 상황이 된 것”이라고 꼬집었다.

중앙은 이어 “박 전 대표의 태도도 책임감이 많이 결여됐다”면서 “아무런 당직이 없다고 하나 그는 현실적으로 상당한 정치적 파워를 지닌 비주류 수장이다. 그렇다면 주요 국정 사안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때 건설적인 방법과 효율적인 시기를 선택해야 한다. 주류가 땀을 뻘뻘 흘리며 야당과 씨름하는 건 방관하다가, 국회 운영이 막바지 고비에 이르렀을 때 당론에 제동을 거는 건 자신의 위상에 걸맞은 책임 있는 태도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민주 ‘의원직 사퇴’ 의지…국회의장은 ‘장고’

박근혜 전 대표가 ‘변수’로 떠오른 가운데, 19일 국회는 여야간 대치로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돌았다.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미디어법을 20일 반드시 처리하겠다”고 하자 민주당 정세균 대표는 단식 농성에 돌입했고, 국회 사무처는 본청 출입 제한 조치에 들어갔다.

▲ 경향신문 7월 20일 3면
민주당은 언론법 강행처리를 막기 위한 비장의 수단을 꺼냈다. 정세균 대표가 19일부터 단식 농성에 돌입했고, 의원들은 의원직 사퇴, 삭발 등을 거론했다. 정 대표는 이날 국회 당 대표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재벌방송’ ‘족벌방송’은 안 된다는 국민 뜻을 받들어 170석 거대 여당의 횡포를 막기 위한 최후의 선택”이라고 밝혔다.

경향은 “그만큼 미디어법을 바라보는 민주당의 절박함이 묻어난다”면서 “제1 야당의 대표가 가장 극단적인 투쟁에 나설 수밖에 없을 정도의 위기상황이라는 것”이라고 전했다. 여론에 호소하기 위한 ‘정치쇼’로 비쳐질 수도 있지만, 한나라당 의석의 절반도 안되는 ‘소수 야당’으로서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는 위기의식의 발로이기도 한 것이다.

의원들도 결연한 의지를 다지는 강경한 발언들을 쏟아냈다. 이석현·장세환 의원은 “당장 삭발하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외교통상부 장관 출신으로 온건 성향인 송민순 의원도 “정말 상황이 엄중하다고 생각되면 의원직 사퇴서를 써서 당 대표에게 맡겨야 한다. 진정성 있는 결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김형오 국회의장은 19일 “오늘 중으로 내일 (국회 본회의) 의사일정을 어떻게 할 것인지 협의를 완료해 달라”고 허용범 국회 대변인을 통해 각 당에 주문했다. 중앙은 “정치권에선 직권상정 의지라고 해석했다”며 “그의 선택에 따라 쟁점법안의 처리와 여야 운명은 엇갈리게 된다. 김 의장으로선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선택의 순간으로 몰리고 있다”고 전했다.

동아도 4면 ‘김 의장, 직권상정 굳혀나가’란 기사에서 “김형오 국회의장이 미디어관계법을 직권 상정해 처리하겠다는 결심을 굳혀 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동아는 “측근들에 따르면 김 의장은 ‘여야가 합의하지 못할 경우 미디어법의 직권상정은 불가피하다’는 인식을 꽤 오래전부터 가져온 것 같다”고 전했다.

동아는 “당초 20일 또는 21일로 예상됐던 김 의장의 직권 상정은 금주 중반을 넘어설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고 설명했다. 이어 “내년 6월 임기가 종료되는 김 의장에게는 미디어법 처리가 마지막 직권 상정이 될 가능성이 높다”면서 “국회의장 직을 마치고 한나라당으로 돌아간 이후의 정치 일정까지 감안해야 하는 김 의장으로선 결단의 시간까지 고심을 거듭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국정운영 동력 상실 위기감 때문에 언론법 목매”

그렇다면 한나라당은 왜 이토록 언론법에 목을 맬까. 경향은 “여권에서 꼽는 가장 큰 이유는 청와대의 ‘의지’”라고 설명했다.

서울 지역 한 의원은 “청와대가 서둘러 회기 내 처리하자는 입장이 확고하다. 이후 국정운영과도 연결된 부분인 때문”이라고 말했다. 당 지도부의 “손을 떠난 문제”라는 분석도 그 때문이다. 바로 “개각을 미디어법 강행으로 인한 파행 국면을 추스르는 카드로 쓰려는 것 같다”(친이계 의원)는 소위 ‘당·청 시나리오’다. ‘미디어법 처리→청와대·내각 개편→8·15 대화합 구상→국면 전환’으로 이어지는 단계론이다.

경향은 “그러나 근본적 배경은 결국 ‘언론 지형’ 문제와 맞닿아 있다”고 전했다. 잇단 국정난맥으로 취약한 현 정권으로선 ‘언론장악-재집권 토대 마련’으로 이어지는 정치적 의도가 궁극적 배경이란 것이다. 당면한 민생 법안이 아님에도 매번 국회 때마다 미디어법을 밀어붙인 것이나, 민주당 등 야당의 대안(지상파·보도 채널에 대한 신·방겸영 불허)을 일축하고 ‘보도’ 채널 문제에 집착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경향은 “특히 ‘신·방겸영 허용’은 이어지는 공영방송법, 민영미디어렙 도입 등 ‘언론장악 3법’의 출발점이기도 하다”고 지적했다.

그 연장선에서 언론·학계나 시민단체 등에선 향후 여론몰이를 통해 의원내각제 등 개헌으로 가는 일본식 보수화 사회 기반 마련의 ‘그림’이 숨어 있다는 관측도 내놓는다. 결국 ‘정권기반 강화-언론지형 변화-대기업 이해’의 3박자가 맞물린 보수 국가개조의 아젠다인 셈이다.

▲ 경향신문 7월 20일 1면
한겨레도 ‘언론관련법을 왜 정권 문제로 보나’란 제목의 사설에서 “방송법을 위시한 언론관련법 개정안의 성격은 김형오 국회의장이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더욱 분명해졌다. 김 의장은 언론관련법은 민생과 직결된 법이 아니라고 지적하면서 방송법 개정안의 핵심은 조·중·동의 방송 진출 문제라고 밝혔다. 이로써 이들 법안을 일자리 창출 법안이니 하며 민생 법안이라고 호도해온 정부·여당의 주장은 더욱 설 자리를 잃었다”고 지적했다.

한겨레는 이어 “정부·여당이 조중동의 방송 진출을 위해 그야말로 죽기 살기로 나서는 이유는 무엇인가?”라고 물음을 던진 뒤, “미래 이들이 진출한 방송을 통해 여론의 보수화를 유도함으로써 한나라당에 유리한 정치환경을 만들겠다는 뜻도 물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보다는 당장 보수언론을 자기들 뜻대로 끌고 가기 위해서라고 보는 게 더 타당할 듯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의혹과 거짓으로 점철됐던 천성관 전 검찰총장 후보자의 청문회를 방송 진출에 목을 매고 있는 중앙일보와 동아일보가 어떻게 보도했는지를 보면 방송법의 위력을 짐작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겨레는 “결국 현재의 언론관련법은 정권과 보수언론 사이의 권언유착을 더욱더 강고하게 만들 도구일 뿐”이라며 “정녕 미디어 환경 변화에 맞춰 법 개정이 필요하다면 이제라도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법을 만들기 위해 여야가 머리를 맞대야 한다. 정권을 들먹이며 서두를 일은 결코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지상파 방송3사 12년 만에 연대 총파업

한편 한나라당의 ‘미디어법 밀어붙이기’에 맞서 지상파 방송3사가 1997년 노동법 대투쟁 이후 12년 만의 연대 파업에 들어가기로 했다.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와 80년해직언론인협의회 등 전직 언론인들도 ‘언론악법 저지투쟁’을 결의하고 나섰다.

기업별 노조인 KBS 노조 측은 “지난 18일 비상대책위원회를 열어 22일 오전 6시부터 전면 총파업에 돌입하기로 결정했다”고 19일 밝혔다. 이들은 사내외에 공표한 투쟁지침에서 “이번 파업은 시청자에 대한 공영방송인의 의무”라며 “파업기간 동안 모든 업무를 중단하고 파업지침에 따라 행동하라”고 지시했다.

MBC와 SBS 등 다른 언론사 노조들이 소속된 전국언론노조는 21일 오전부터 제작거부 등 총파업에 돌입할 예정이다. KBS를 비롯한 지상파 3사의 연대 총파업은 97년 1월 한나라당 전신인 옛 신한국당의 노동법 날치기 처리에 맞선 노동계 총파업투쟁 이후 12년 만이다. 언론노조는 21일 전국 조합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총파업 결의대회를 열 예정이다.

용산 참사 6개월…보이지 않는 싸움 계속

20일로 용산 참사가 벌어진 지 꼭 6개월째다. 지난 1월 20일 오전 철거를 앞둔 한강로2가 남일당 건물 옥상 망루에서 농성 중이던 철거민을 경찰이 진압하는 과정에서 화재가 발생해 철거민 5명과 경찰 1명이 희생됐다. 이후 계절이 두 번 바뀌었지만 철거민과 재개발조합, 정부간 갈등과 대치는 한 치의 진전도 없이 계속되고 있다.

〈한국일보〉는 20일 용산 참사에 관한 기사에서 “6개월간 장례식장 사용비만도 무려 5억원이 넘었다. 그간 여러 단체의 성금으로 1억원을 내고 4억여원이 남은 상태다. 병원비가 눈덩이처럼 쌓여가지만 유족들은 생계 활동을 아예 포기한 채 끝이 보이지 않는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유족들은 그러나 이 같은 여건 속에서도 “6개월이 아니라 6년이 걸려도 절대 이 싸움을 포기할 수 없다”며 강경한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유족들이 절실히 원하는 것은 그들 남편이자 아버지의 명예회복이다.

유씨는 “이대로 물러서면 정부 발표대로 도심 테러리스트로 불법 과격시위를 벌이다 X죽음을 맞았다는 오명을 씻을 수 없게 된다”며 “정부의 성의 있는 사과 없이는 어떤 문제 해결도 기대할 수 없다”고 말했다.

▲ 한국일보 7월 20일 9면
그러나 정부는 용산 참사를 부른 화재가 농성자들의 과실로 발생한 만큼 유족과 재개발조합 측이 풀어야 할 민사 문제이며 정부가 관여할 사안이 아니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6개월 동안 유족과 한 번도 공식 대화를 하지 않은 것도 정부의 이런 방침 때문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용산구청 등과 협의해 재개발조합에서 위로금을 지급할 수 있도록 하겠지만 그 외는 특별한 조치를 취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정치권에서도 용산 문제 해결은 답보 상태다. 참사 직후 재개발 관련 법 개정안이 20건 넘게 상정됐지만, 세입자의 주거 및 이주 대책을 사업시행계획에 포함하도록 한 도시 및 주거 환경정비법안 1건을 제외하고는 여전히 계류 중이거나 일부는 철회됐다. 야4당이 꾸린 용산참사 공동대책위도 오세훈 서울시장을 면담한 것 외에는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사태 해결의 조짐이 전혀 보이지 않자 유족과 범대위는 투쟁 수위를 더욱 높여나갈 태세다. 최근 철거민 희생자들의 사망 당시 사진을 공개하려다 윤리적 문제 등이 제기돼 취소했던 범대위는 20일에는 희생자 시신 5구를 서울광장으로 옮겨 집회를 열 계획이다.

‘천성관 자료유출’ 수사 ‘보복 수사’ 논란

검찰이 ‘보복 수사’ 논란에도 불구하고 천성관 전 검찰총장 후보자의 해외여행 등 정보 출처에 대한 수사에 나선 배경을 둘러싸고 각종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고 한국일보가 보도했다. 특히 해당 정보가 천 전 후보자의 낙마를 불러온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점에서 의문의 핵심은 이번 수사를 누가, 그리고 왜 지시했는지 쪽으로 모아지고 있다.

검찰은 일단 ‘내사 착수과정에 외부의 개입은 없었다’는 입장이다. 서울중앙지검 고위 관계자는 19일 “외부기관의 지시나 문제제기에 의해서가 아니라 검찰의 자체 판단으로 볼 때 (천 전 후보자의) 개인정보 유출과정에 문제가 있다고 보여 그 경위를 알아보고 있는 중”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은 “그러나 이번 사안은 국회의원의 의정활동과 동전의 앞뒷면처럼 직접적으로 연결돼 있는 사안이어서 독자적으로 수사착수 여부를 결정했다는 검찰의 주장을 선뜻 믿기는 힘들다”면서 “정치적 파장이 불가피한 성격의 수사를 수뇌부 공백 상태인 검찰이 아무런 ‘바람막이’도 없이 진행해 나갈 수 있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법무부나 청와대 등 ‘윗선’과의 사전 교감이 있지 않았겠느냐는 관측이 조심스레 나오고 있는 이유다.

정치권에서는 천 전 후보자를 검찰총장으로 ‘밀었던’ 검찰 내 일부 그룹에 대해 청와대가 모종의 조치를 취하려 하자, 검찰이 그에 앞서서 ‘만회’ 목적으로 수사에 나선 것이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이밖에 일각에서는 “천 전 후보자와 경쟁관계였던 또 다른 검찰총장 후보군 측의 인사가 문제가 된 정보를 흘렸으며, 이를 가려내기 위한 내부 감찰 성격의 수사”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검찰은 “천부당만부당한 말로 터무니없는 억측에 불과하다”고 분명히 선을 그었다.

이와 관련 동아는 사설을 통해 “공직 후보자의 검증을 위한 사생활 정보 수집이라도 합법적이며 정당한 방법과 절차를 통해 입수하거나 공개된 것이 아니면 문제가 될 수 있다”면서 “천 씨와 관련한 개인정보의 유출 경위를 파악하는 것은 무분별한 사생활 정보 유출과 정치권 줄 대기를 예방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라고 볼 수도 있다”고 검찰의 수사를 두둔하는 모습을 보였다.

동아는 이어 “검찰이 천 씨가 불명예 퇴진하자마자 내사에 나선 것은 조직의 수장이 불명예 퇴진한 데 대한 보복이라는 의심을 받을 여지가 있다”면서 “이 문제는 공무원의 개인 사생활 정보 보호 의무와 공인의 도덕성 검증, 의원의 의정활동 보호라는 관점에서 균형 있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한겨레는 사설에서 “청문회를 통해 드러난 천 후보자의 갖가지 비리 의혹은 본인뿐 아니라 검찰 조직의 체면까지 땅에 떨어뜨렸다. 그런데 그것으로도 모자라 검찰이 스스로 비웃음을 살 행동을 자청해서 하고 있으니 안타까운 노릇”이라고 꼬집었다.

한겨레는 “공인의 도덕성 검증 작업을 정보 유출 문제로 연결시키는 것부터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들다”면서 “검찰이 제보자 색출 작업에 나선 것은 공직사회에 엄포를 놓아 내부 입단속을 하겠다는 의도가 분명해 보인다”라고 지적했다.

한겨레는 “하지만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인사검증 시스템 손질 등을 통해 도덕적으로 흠 없는 사람을 골라내는 일이지 이런 식의 입막음용 보복수사가 아니”라면서 “검찰은 당장 정보 유출 수사를 중단해야 한다. 또한 이런 상식 이하의 조사 지시를 내린 게 누구인지 등도 명백히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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