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난국에 국무총리는 어디 갔나?
상태바
이 난국에 국무총리는 어디 갔나?
[우석훈의 세상읽기]
  • 우석훈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강사
  • 승인 2009.07.20 10:2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우석훈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강사 (88만원 세대 저자)
국무총리라는 자리는 한국에서는 좀 애매한 위치이기는 하다. 대통령에 맞서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가만히 있기도 그렇고, 여러 가지로 애매한 자리라는 사실은 맞는 것 같다. 그러나 그렇게 따지면 한국에서 애매하지 않은 자리가 어디에 있나? 장관은 대통령 눈치 봐야하고, 총리 눈치도 보고 또 절대로 호락호락 장관 지시대로 움직이지 않는 국장들이나 실장들 눈치도 봐야 하고. 정부 기관 기관장들은 또 어떤가? 대통령 눈치 보고, 장관 눈치 보고, 거기에 담당 공무원들 눈치도 봐야 하고.

긴 시간은 아니지만 총리실에서 근무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 시절의 동료들은 한국 최고의 국무총리로 김종필을 꼽는데 주저하지 않았었다. 글쎄 하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어쨌든 DJP 연합으로 정권을 새로 만들었던 시절, 김종필은 그야말로 실세 총리였고, 그래서 외부에서는 어떻게 평가할지 모르지만, 그 시절에는 총리실이 좀 총리실처럼 돌아갔다는 것이 총리실 내부에서 내가 공무원들에게 전해들은 얘기이다. 나는 이한동 시절에 총리실에서 근무했었는데, 그는 ‘한또’라는 애칭으로 불리고 있었다. 내가 겪어본 바에 의하면, 그는 내가 경험해본 어떤 공무원보다도 유연하면서도 합리적으로 일을 처리했고, 그래서 아주 좋은 인상을 지금도 가지고 있다. 지금도 그 때 생각을 해보면, “재밌는 일 많이 했었지”라고 나도 즐거운 기억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여담이지만, 한명숙 총리 시절에는 기대를 많이 했었는데, 대추리 사건과 같이 좀 실망스러운 일도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난국은 난국이다. 여야가 정말 첨예하게 대치할 수도 있고, 더 극단적으로 부딪힐 수도 있지만, 미디어법 같이 당장 급하지도 않은 법을 놓고 이 모양을 연출하고 있는 것은, 아무래도 이 정부가 지금 제 꼴이 아니라는 말 밖에 되지가 않는다. 비정규직 문제는 더 웃겼다. ‘자기실현적 명제’라고, 실업대란이라는 노동부 장관의 예언을 정말로 실현하기 위해서 국회나 KBS 그리고 노동부 산하 등 정부기관에서 그 예언을 정말로 실현하려고 하는 듯이 광분해서 2년째 되는 계약직들을 해고했다.

▲ 지난 5월에 열린 2009 국무위원 재정전략회의. 이명박 대통령(가운데) 왼쪽에 앉은 한승수 국무총리의 모습이 보인다. ⓒ청와대
이런 흐름 속에서 때로는 보이지 않게, 그리고 때로는 보이게 국정 현안에 개입하면서 이렇게 저렇게 조정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국무총리이고, 그런 일 하라고 국무조정실이 장관급으로 격상되어서 정부 기관 내에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조정은 보이지 않고, 강행과 속도전만 보이고, 이미 돌격대가 되어버린 한나라당은 청와대의 리모트 컨트롤이 되어버렸고, 정부는 아예 보이지가 않는다. 흔히 우리는 일본이라는 국가에 대해서 평가할 때, 아주 튼튼한 관료제 위에 서 있고, 정치가 위기라도 잘 버티는 나라라고 얘기한다. 그리고 한국도 그만큼은 아니더라도 튼튼한 관료들이 버티고 있다고 종종 얘기하고는 하였다.

지금 한국을 돌아다보아라. 도대체 이 튼튼한 관료들은 어디가 있고, 도대체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눈치꾼과 아부꾼 그리고 땅투기꾼들이 대통령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심지어 국정자료의 수치들까지 적당히 주무르는 지금, 이 행정 관료들을 총괄하는 국무총리는 도대체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지난 1년 반, 우리가 국무총리의 얼굴을 잠깐 본 것은 촛불 시위 때 잠깐, 그리고 4대강 살리기 기공식과 같은, 그런 생색 안 나는 순간들 잠깐일 뿐이었다.

대통령제 하에서의 국무총리, 그 운용의 묘와 조정의 기술은 그야말로 국무총리 하기 나름이다. 한승수 국무총리, 이미 개각 하마평에 그 이름을 올린 게 오래 전이고, 다음 총리가 누구인지 연일 정개개편과 관련된 각종 시나리오들이 나온다. 그래도 ‘1인 지하, 만인 지하’의 자리이다. 위기의 이 국면에서 존재감을 살려주는 것이, 우리 모두가 사는 길이 아닐까? 너무 존재감 없는 국무총리였지만, 그래도 한 때 대한민국의 ‘승상’ 자리에 있던 자로서, 용산, 쌍용 자동차, 줄줄이 적재한 이 현안에서 자신의 입장이라도 밝히거나, 아니면 하다못해 회의라도 소집해서 청와대가 도저히 풀 수 없어 보이는 이 문제들에서 당사자들끼리 얼굴이라도 볼 수 있게 해주면 좋을 것 같다.

이미 대통령, 청와대, 한나라당, 민심을 잃었다. 다행히 국무총리는 기대가 적은 만큼 잃은 민심도 별로 없어 보인다. 조정 업무는 국정의 꽃이다. 부디 역사가 기억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이 총체적 난국의 대한민국에서 존재감을 보여주기를 희망한다. 책임 총리는 제도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총리가 책임감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조정 절차를 열면, 그게 바로 책임 총리가 아닌가? 어차피 더 올라갈 자리도 없는데, 지금의 국무총리는 너무 몸을 사리고 있는 것 아닌가? 국민들이 지금 죽게 생겼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