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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하승수 제주대 법학부 교수

1998년과 1999년 필자는 서울시장 업무추진비를 공개하는 일에 매달린 적이 있다. 처음 정보공개청구를 하자 서울시는 비공개로 일관했다. 그래서 결국 소송까지 제기하자 서울시는 일부 자료를 공개했다. 자료를 열람해 보니, 불분명한 명목으로 현금이 뭉텅이로 지출된 경우, 영수증이 부실한 경우, 비싼 음식점에서 식대를 과다하게 지출한 경우, 격려금 명목으로 부하직원들에게 현금을 지급한 경우들이 많았다.

일부 공개된 자료를 가지고 문제제기를 했지만, 서울시는 문제를 덮기에 바빴다. 그리고 나머지 자료는 공개하지 않았다. 결국 대법원까지 진행된 소송에서 ‘개인신상정보를 제외한 정보는 모두 공개하라’는 판결을 받기까지는 4년여가 걸렸다. 물론 판결이 나왔을 때에는 시장도 바뀌었고, 담당공무원도 바뀐 후였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엉망인 업무추진비

▲ 한겨레 7월22일자 12면.
그후 10년이라는 세월이 지났다. 10년이 지났으면 뭔가 변화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도 현실은 그대로이다. 얼마 전 민주공무원노동조합에서 16개 시ㆍ도지사들의 업무추진비 내역과 영수증을 열람하고 문제를 지적했다. 그 결과를 보면 전혀 나아진 것이 없다. 여전히 업무추진비는 쌈짓돈처럼 방만하게 지출되고 있었다. 더구나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대법원 판례까지 무시하고 정보를 일부 비공개하기도 했다. 선심성으로 밥 사고 현금주고 하는 일들이 많다보니, 선거법 위반 의혹들도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공개된 서류들을 보아도 서류 자체가 부실하다. 밥을 먹었으면 구체적으로 어떤 이유로 누구와 밥을 먹었는지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내용들 자체가 적혀 있지 않는 경우들이 대부분이다.

뿐만 아니다. 올해 들어서 업무추진비 지출 실태의 어두운 면들이 계속 드러나고 있다. 지난 4월 27일에는 경기도 가평군에서 군수 업무추진비가 일부 언론, 경찰 등에 제공되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었다. 또한 며칠 전에는 강원도 화천군에서 군수업무추진비가 권력기관원, 언론 등에 제공되었다는 문제제기가 있었다. 모두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밝혀진 일이다.

사실 업무추진비가 전체 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그렇게 큰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업무추진비가 개인 돈처럼 사용되는 풍토에서 다른 예산이 살뜰하게 사용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을까?

또한 ‘남의 돈’으로 밥 먹고 술 먹는 문화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공직윤리’나 ‘건강한 시민의식’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업무추진비 개혁은 공직사회 개혁의 중요과제이고, ‘남의 돈’으로 밥 사고 밥 얻어먹는 데 익숙한 우리 사회의 부정적인 문화를 극복하기 위해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다. 

업무추진비를 둘러싼 공모시스템

그런데 문제제기가 계속되는데도 왜 문제가 고쳐지지 않을까? 그 이유는 일종의 공모시스템이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관련 부처에서는 업무추진비와 관련해서 매우 느슨한 규정을 만들고 있다. 지방자치단체의 업무추진비와 관련해서는 행정안전부령인 「업무추진비 집행에 관한 규칙」이 있지만, 별로 실효성 없는 규정들이다. 심지어 영수증을 받지 않고도 돈을 쓸 수 있게 하는 등 여러 가지 예외들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감사원도 업무추진비에 대해서는 제대로 감사를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다. 검찰이나 법원도 업무추진비에 대해서 관대하다. 스스로들도 업무추진비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아서일까? 문제가 드러나도 제대로 처벌되는 경우들은 드물다.

그래서 고질적인 업무추진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한시적 특별법을 제정하여 지방자치단체와 중앙행정기관 등의 업무추진비 집행을 규율하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가칭) ‘업무추진비의 투명성 및 책임성 확보를 위한 특별법’ 같은 것을 제정하여, 업무추진비에 대해 강하게 통제하는 것이다. 그리고 업무추진비를 잘못 쓴 경우나 용도가 불분명한 경우에는 철저하게 책임자로부터 돈을 환수하는 것이다. 정보를 은폐하는 공무원들에 대해서는 처벌도 해야 한다.

▲ 하승수 제주대 법학부 교수

이런 강력한 조치와 함께 정보공개법의 개정도 시급히 필요하다. 지금도 업무추진비 관련 정보를 공개청구하면 막무가내 식으로 비공개하는 경우들이 많다. 대법원 판례조차도 무시되는 것이 현실이다. 시간만 끌면 된다는 식의 생각이 기관장들에게 퍼져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보공개법을 개정하여, 위법ㆍ부당한 정보비공개에 대해서는 신속하게 구제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제는 업무추진비와 관련된 병폐를 끊을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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