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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말할 수 있다>를 위한 변명
  • 승인 2000.12.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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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0|<이제는 말할 수 있다> 2000년 시리즈 중의 한 편인 ‘베트남전의 포로, 실종자들’편을 제작할 때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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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3|사실상 그때까지 국방부의 공식입장은 베트남전 당시의 한국군 실종자는 8명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
|contsmark4|8년에 걸쳐 거의 30만 대군을 파견했던 전쟁에서 실종자가 8명이라는 사실을 믿을 수는 없었다. 게다가 국방부 주장에 의하면 공식적인 전쟁포로는 단 1명도 없다는 것이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미국이 같은 기간에 300만을 파병하여 최소 3000명 이상의 포로, 실종자가 발생한 사실과 비교해봐도 8명이라는 실종자수는 터무니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추가 실종자나 포로를 증명하기란 생각보다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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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7|결국 미국 의회도서관을 뒤져서 찾아낸 cia 보고서 등을 통해 베트남전 당시의 추가 포로와 실종자의 존재를 확인하였고 ‘실종자 8명’이라는 숫자의 허구성을 폭로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문서에 의한 증명일 뿐이었다. 혹시라도 살아있을지 모를 포로나 실종자의 존재를 찾아내는 일, 그리고 구체적인 실종자의 신원을 밝혀내는 일은 결국 거의 이루지 못한 채 프로그램을 끝내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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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10|베트남전 참전사의 일부분으로써 ‘실종자’ 문제를 제기하기는 했으되 실제로 ‘생존 실종자’를 찾는 일에는 실패한 셈이었다. 그것은 또한 프로그램을 제작할 때 주위에서 일정하게 기대했던 바에 못 미치는 것이기도 하였다. 사실 그런 기대에 대한 부담 때문에 생존 ‘실종자’의 소문을 바탕으로 라오스 시골 구석구석을 추적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누군가를 찾아내는 일은 불가능했고 결국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만을 말할 수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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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13|사실 베트남전쟁에서 한국군 실종자 숫자가 그렇게 축소되어서 역사에 기록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프로그램을 통하여 나름대로 말했다고 생각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존 실종자를 찾아내는 특종’을 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떨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런 ‘특종’에 대한 강박관념이 <이제는 말할 수 있다>를 제작할 때 가져야 할 문제의식과 과연 무슨 관련이 있는 지 새삼 반성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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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16|<이제는 말할 수 있다> 시리즈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다양한 것이다. 그 중 심심찮게 들려오는 반응은 ‘왜 이제 말하는가’ 혹은 ‘뭐 새로운 게 있나’하는 식의 다소 시니컬한 것들이다. 사실 이런 류의 반응은 이 시리즈의 ‘제목’이 주는 다소 ‘선정적’인 인상에 기인하기 때문일 것이다. 뭔가 새로운 것을 이야기하고 뭔가 새로운 사실을 파헤쳐 낼 것이라는 기대가 배신당할 때 그런 반응은 당연히 예상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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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19|하지만 <이제는 말할 수 있다>가 ‘뭔가’ 기대감을 갖게 하는 뉘앙스의 제목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이 시리즈물이 추구하는 장르상의 본래 목표는 결국 ‘역사 다큐멘터리’인 것이다. 그저 이 시리즈 역시 ‘역사적인 사실’을 구체적으로 드러내고 또 그 의미를 제대로 ‘해석’해 내는 역사 다큐 본연의 일을 수행하고 있을 뿐이다. ‘역사의 바다’에서 ‘특종’을 건져 내기보다도 ‘있었던 사실’을 새로운 시각으로 ‘해석’하는 일을 ‘본업’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라오스 오지의 비포장도로를 달리면서 사실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었다. ‘혹시라도 실종자를 찾게되면 아마 이 프로그램의 기존구도는 완전히 무너질 것이다. 그리고 태평양 전쟁에서 종전사실을 모른 채 수십년을 살아온 일본군 귀환병 이야기 같은 것이 될 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프로그램은 센세이셔널한 그 무엇을 담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실종자 문제를 역사 속에서 온전하게 그려내는 작업이 방해받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반대로 실종자를 찾아냈다면 그 때문에 전체적인 구도가 깨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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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22|2001년판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시리즈가 또다시 방송될 예정이라고 한다. 그것은 아마도 파편조각이 돼 버린 우리 현대사를 차분하게 복원해온 제작진들에게 그 조각들을 제대로 맞추는 일을 계속해서 꾸준하게 하라는 시청자들의 뜻일 것이다. 그리고 그런 작업에 있어서 ‘특종’에 대한 강박관념이나 ‘선정주의’는 전혀 비본질적인 요소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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