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법 재투표, 국회의원 독립성 훼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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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법 재투표, 국회의원 독립성 훼손”
박경신 교수 지적…‘대리투표’ 진위 가리기, 국회 사무처 비협조 논란
  • 김세옥 기자
  • 승인 2009.07.27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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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표결을 한 후에 표결 결과가 공개되면 국회의원은 서로 간에 눈치를 보거나 심리적 압박감을 느끼며 두 번째 표결에서 자신의 투표 결과를 바꿀 수 있다…(중략)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자신은 소신껏 반대투표를 하였는데 이것이 공개된 후에 다시 표결에 부치게 되면 당 지도부로부터 찬성투표를 하라는 압박을 받게 된다는 점이다…(중략) 결국 표결을 2번 할 수 있게 하는 것은 당 지도부가 소속 의원들을 단속할 수 있는 길을 터주는 것이다.”

지난 22일 국회 본회의의 방송법 개정안 재투표를 놓고 국회법 제92조 ‘일사부재의’ 원칙 위반 등을 둘러싼 법적·정치적 논란이 뜨거운 가운데 박경신 고려대 교수는 27일 오전 민주당·민주노동당 등 야4당과 민주화를위한변호사모임(이하 민변) 공동주최로 국회에서 열린 ‘전문가가 본 미디어법 강행처리의 법적 효력’ 토론회에서 이 같이 지적했다.

▲ 야4당과 민주화를위한변호사모임 주최로 27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전문가가 본 미디어법 강행처리의 법적 효력’ 토론회에서 박경신 고려대 교수는 재투표가 국회의원의 독립성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회의원 독립성 훼손한 방송법 재투표는 무효”

박 교수는 이날 토론회에서 “우리나라가 일사부재의 원리를 도입한 이유는 국회의원의 독립성 때문”이라며 “전자투표를 통해 기명투표가 이뤄지는 상황 속 재투표가 진행될 때 첫 투표에 소극적이었던 몇몇 여당 의원들이 당 지도부로부터의 질책을 피하기 위해 두 번째 투표에 적극 참여했는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고 재투표의 위험성을 꼬집었다.

박 교수는 또한 국회법 제111조 2항 ‘의원은 표결에 있어서 표시한 의사를 변경할 수 없다’를 언급하며 “이 역시 일사부재의 원칙과 비슷하게 해석돼야 한다”면서 방송법 개정안 재투표가 국회법 제92조(일사부재의)뿐 아니라 해당 조항까지도 위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날 토론회의 사회를 맡은 이정희 민주노동당 원내부대표는 “실제로 본회의 당시 (여당의) 어떤 의원은 1차 투표 때엔 재석 버튼을 누르지 않았는데 2차 투표에선 표결에 참여했다”며 “투표하지 않겠다는 것 역시 의사표시인데 (여당 의원들끼리) 투표했냐고 묻는 등 투표를 강제하는 분위기가 있었다”면서 박 교수의 문제제기에 동의했다.

국회 입법조사연구관 출신의 서복경 서강대 교수는 “이번 사안에서 만약 단 1건의 대리투표라도 허용을 하는 방향에서 국회법 해석이 이뤄진다면 향후 여러 가지 예측 가능한 문제들이 발생할 수 있다”면서 여든 야든 단 한 건의 대리투표라도 확인될 경우 방송법 개정 표결 자체를 무효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대리투표가 있어도 표결의 법적 효력을 인정하되, 대리투표 숫자가 의결정족수를 충족시키지 못할 만큼의 범위라면 문제가 된다’는 일각의 견해와 배치되는 것으로 서 교수는 “향후 이런 사건이 다시 발생했을 때 ‘의결 정족수에 영향을 미칠 만큼’의 기준이 무엇인지, 증거효력은 어떻게 인정될 것인지, 누가 이것을 판단하게 할 것인지 등의 문제가 꼬리를 물고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계했다.

이어 “이번 사안을 계기로 대리투표가 금지된 국회법의 취지를 다시 한 번 확인하고 향후 대리투표를 행한 의원이나 외부인에 대해 중징계가 가능한 제도개선을 이뤄 법 적용을 하는 게 타당하다”고 강조했다.

이날 토론의 발제를 맡은 김선수 민변 부회장은 “국회 부의장이 국회법 제113조에 따른 표결종료를 선언했고 그에 따라 표결 결과가 전광판에 공시돼 표결 개시와 표결행위라는 표결의 실질적 절차뿐 아니라 표결 종료 선언이라는 형식적 요건까지 갖춰졌다”며 “방송법 개정안 1차 투표의 결과는 여당의 주장대로 ‘투표 불성립’이 아니라 ‘부결’”이라고 지적했다.

국회 사무처 비협조 ‘논란’

이처럼 언론법 개정안의 재투표 논란과 대리투표 의혹으로 법적 효력을 둘러싼 논란이 일고 있지만 국회 사무처는 진실을 규명하는데 아무런 협조도 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이날 토론회에 앞서 야4당은 지난 22일 본회의 당시 방송법 1차 표결 종료 이후 사회를 봤던 이윤성 국회 부의장에게 ‘투표 불성립’을 귀띔해준 이종후 국회 의사국장에게 토론자로 참석해줄 것을 여러 차례 요청했으나 거절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정희 부대표는 “야4당의 많은 의원들이 나서 이종구 국장에게 여러 차례 참석을 요청했고 하다못해 언론법 개정과 관련해 국회 사무처가 냈던 보도 자료라도 이 자리에서 읽어달라고 부탁했지만, 이 국장은 국회의 입장은 이미 다 나왔다며 오늘(27일) 오전 최종적으로 불참 의사를 밝혔다”며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이강래 민주당 원내대표도 축사에서 “전문가까지 가지 않더라도 초등학교 6학년 이상이면 ‘표결 불성립’이란 말이 국회 의사국장이 상황 수습을 위해 만든 하나의 꾀에 지나지 않음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비판하면서 이날 토론에 응하지 않은 것에 대해 유감을 표시했다.

한편, 야4당의 토론 참석 요구를 거부한 이 국장은 이날 오전 11시 20분께 국회 본청 의사국장실을 찾은 민주당 전병헌·우제창·김유정 의원이 대리투표 논란의 진위를 가리기 위해 본관 내 CCTV 녹화 영상을 제출해줄 것을 요구하자 “개인정보가 담겨 있어 줄 수 없다. 공공기관의 개인정보보호에 관한 법률상 수사기관 등에서 의뢰해야만 넘겨줄 수 있다”며 거절했다.

하지만 박경신 교수는 ‘개인정보 보호’ 차원에서 CCTV 녹화 영상을 제출하지 못한다는 국회 사무처의 주장에 대해 “국회의사당은 불특정 다수가 모여 있는 장소이며 국회의원들이 (표결당시) 본회의장 안에 있었는지 밖에 있었는지는 매우 공적인 정보에 속하는 만큼 프라이버시 침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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