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천성관 의혹 특종’ 고의로 놓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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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협 “인사청문회 당일 취재 끝났는데 보도국장이 승인 미뤘다”

KBS가 지난 13일 천성관 검찰총장 내정자의 인사청문회 당시 천 내정자에 대한 의혹 취재를 마치고도 다음날까지 방송을 미룬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KBS 기자협회(회장 김진우)가 27일 발행한 협회보에 따르면 KBS 법조팀은 천성관 내정자의 인사청문회 당일인 지난 13일 취재 끝에 천 내정자가 거액을 빌린 박 씨와 함께 해외여행을 다녀온 사실을 확인했다. 이날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천성관 내정자가 ‘스폰서’ 의혹을 받은 박 씨와 함께 해외여행을 간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런 적 없다”고 답한 직후였다.

당일 저녁에 이 기사가 보도되면 천 내정자의 위증 사실을 입증할 수도 있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법조팀 정윤섭 기자가 작성한 이 기사는 승인이 나지 않아 결국 인사청문회 당일 뉴스에 방송되지 못했고, 이튿날 저녁에야 보도됐다.

▲ 14일 <뉴스9>에 방송된 <천성관, 인사청문회 ‘위증 의혹’> 리포트 ⓒKBS뉴스화면 캡처
협회보에 따르면 법조팀은 당시 복수의 취재원을 통해 크로스 체크(중복확인)까지 마친 상 태였다. 하지만 고대영 KBS 보도국장은 당시 법조팀 기자에게 “(취재기자가) 들은 이야기일 뿐 증거가 없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고 국장은 또 “자문 변호사의 자문을 받고 좀 더 보강 취재를 한 뒤 방송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KBS 기자협회보는 “천성관 내정자는 14일 KBS 2TV 8시 뉴스에 정윤섭 기자의 기사가 나간 직후 사퇴를 발표했다”며 “방송이 하루 늦춰지면서 ‘특종’이 ‘김빠진 뒷북’으로 변질된 셈”이라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협회보는 “검찰은 취재과정에서 법조팀이 천 내정자의 의혹을 상당부분 밝혀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상태였다”며 “사실상 KBS 법조팀이 천 내정자의 자진 사퇴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보도본부 게시판은 수뇌부에 대한 질책이 이어졌다. KBS의 한 기자는 “(보도국장은) 인사청문 후보자에 위증혐의가 있다는 증좌(참고가 될 만한 증거)까지 가져오라고 한 것은 ‘노무현 시계’ 보도나 ‘박연차 정국’에서 알던 국장의 모습이 아니다”라며 “판단력을 잃어버린 국장의 중대 실책”이라고 질타했다.

그는 “결과적으로 천성관 내정자 사퇴 발표 후 방송된 <뉴스9>는 정리된 문제에 의혹을 제기하는 우스운 꼴이 됐다”며 “오로지 보도를 하루 늦추는 데 목적이 있었다고 밖에 해석할 수 없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다른 기자는 ‘상업방송 ABC보다 못한 공영방송 KBS’라는 제목의 글에서 “상업방송이 지배하는 미국 방송사들도 고위공직자의 인사 검증에는 철저하다”며 “정윤섭 기자가 취재한 내용은 KBS 뉴스가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였는데 아쉽다”고 밝혔다.

KBS 기자협회는 이번 사태에 대한 자체 진상조사를 마치고 오는 30일 보도본부장, 보도국장이 참석하는 보도위원회를 열 계획이다. 한편 <PD저널>은 고대영 KBS 보도국장의 입장을 듣기 위해 전화를 걸었지만 그는 “그 건에 대해서는 할 얘기가 없다. 홍보실을 통해 얘기하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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