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정부가 지난 한해 정부정책과 관련한 광고와 마케팅에 1조 800억원(540 밀리언 파운드)이라는 막대한 돈을 쏟아 부었다. 전년대비 50% 가까이 증가한 수치다. 영국정부의 광고 및 마케팅을 담당하고 있는 선전성(COI: Central Office of Information)은 지난해 3월부터 올 3월까지 TV와 라디오 광고에 4천 2백억원(211 밀리언 파운드)을, 인터넷 등 디지털 마케팅에 8백억원(40 밀리언 파운드)을 사용했다고 발표했다.
TV와 라디오에 비하면 턱없이 적긴 하지만 디지털 마케팅에 사용한 8백억원은 전년대비 무려 85%가 증가한 액수다. 인터넷의 영향력이 얼마나 급속도로 커지고 있는지 보여주는 예도 되겠다. 선전성은 그 이유에 대해 극심한 경제 붕괴와 기후변화라는 국내외적 위기를 겪으면서 정부와 국민의 소통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국가가 어떤 위기로부터 벗어나려면 국민과 소통해야 하고, 소통의 노력을 통해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는 건 상식이다. 그런 상식에 충실한(영국정부라고 해서 매번 상식에 충실한건 아니지만) 영국정부로써는 1조 800억원이라는 거액을 위기극복을 위해 아낌없이 써야할, 일종의 투자라고 생각 한 것이다. 선전성은 실제로 이렇게 말한다. “정부의 캠페인은 국민이 생명과 돈을 절약하는데 도움을 준다. 캠페인을 통해 납세자와 사회가 취하게 되는 이익은 우리가 캠페인에 투자한 금액보다 클 것이다”.
그 캠페인이라는 게 대체 무슨 캠페인이기에 그 많은 돈을 그리도 아낌없이 쓴단 말인가 하고 궁금하기도 하겠다. 정부가 쓰는 돈이라는 게 선전성도 밝히듯 세금, 즉 국민의 피와 땀일 터인데 긴축을 해도 모자랄 요즘 같은 시기에 무려 50%나 더 많은 돈을 쓰다니 하고 말이다. 그런데 실상 그 캠페인이라는 걸 보면 별게 아니다. 비만문제, 흡연문제, 도로안전문제, 기후변화문제 등 우리나라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공익광고에 불과하니 말이다.
나라 살림이 빠듯한 상황에서도 영국정부가 공익광고에 거금을 써대는 이유는 간단하다. 국민이 건강해야 한다. 국민이 무고해야 한다는 거다. 비만과 흡연, 음주, 범죄, 기후변화는 전 사회적, 국민적 문제다. 국가가 지금의 위기를 이겨내고 건강하게 유지되려면 국민의 건강과 안녕을 제일로 챙겨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정부는 사회구성원들이 스스로 생각과 행동을 건강하게 유지할 수 있도록 선도하고, 국가가 펼치는 각종 정책으로부터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알려야 한다. 국가라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이고, 국민이라면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일 것이다.
선전성은 정부의 정책을 TV나 라디오, 인터넷 매체, 공연과 이벤트 등 각종 수단을 이용해 홍보하는 홍보기관이다. 물론 정부기관이니만큼 그들이 사용하는 홍보비는 국민의 호주머니에서 나온다. 흔히 말하는 혈세다. 소중한 혈세를 쓰는 만큼 그들에겐 여러 가지 까다로운 원칙이 있다. 그중 대표적인 게 각종 미디어를 통한 정부의 홍보(광고, 마케팅, 캠페인이라고 해도 뜻이 다르지 않은 표현이다)는 공정하고, 정직하며 객관적이고 성실해야 한다. 그리고 대중과 미디어로부터 정당성을 확보하고 있어야 한다는 거다.
영국의 선전성은 정부가 추진하는 법이나 정책에 대한 일방적 주입, 주장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누구나 쉽게 공감하는 보편적 문제에 대해 합의된 정책, 그 정책에 따라 국민이 마땅히 알아야하고, 누려야 하는 혜택을 위해 존재한다. 선전성은 자신들이 세운 그런 원칙들이 지켜지지 않을 때 영국의 어떤 미디어도 그들의 요구에 응해주지 않을 것임을 잘 알고 있다. 영국의 미디어는 다분히 상업적이지만 동시에 지극히 자존심이 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