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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 : 변 광 호 PD
방송 : 2009년 8월 2일 일요일 밤 11시 10분
진행 : 김 영 진 평론가

감독/ 김기영
출연/ 김진규 주증녀 이은심 엄앵란 안성기
제작/ 1960년
영화길이/ 108분, 흑백
나이등급/ 19세

줄거리
방직공장의 미남 음악선생 동식(김진규)은 여공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다. 그는 새로 장만한 피아노의 본전을 뽑기 위해 여공들에게 피아노 개인 레슨 부업을 하기로 한다. 동식은 아내(주증녀)가 새집 마련을 위해 무리해서 재봉일을 하느라 건강이 안좋아지자 여공 조경희(엄앵란)에게 부탁해 하녀(이은심)를 소개받는다. 피아노 개인 레슨을 받는 경희는 동식의 아내가 셋째 아이를 임신해 친정에 가 있는 어느 날, 동식에게 연모의 정을 고백하고 동식은 이를 거부하고 가정을 지키려 안간힘을 쓴다. 평소 2층 자기 방 옆방에서 피아노를 배우는 경희를 질투해왔던 하녀는, 동식에게 자기도 피아노를 가르쳐주고 경희에게처럼 다정히 대해달라며 비오는 그날 밤 동식을 유혹해 관계를 맺게 된다. 하녀가 임신사실을 동식의 아내에게 알리자, 동식의 처는 하녀를 계단에서 떨어지게 해 낙태시킨다. 아이를 잃고 난 하녀는 차츰 히스테리컬해지고 동식의 아들 창순(안성기) 또한 하녀로 인해 계단에서 떨어져 죽게 된다. 하녀가 이 집안에서 일어난 일을 공장에 알리겠다고 위협하자, 동식의 아내는 남편이 일자리를 잃게 될까봐 하녀의 요구대로 동식을 2층 그녀의 방에서 동침하도록 허락한다. 동식을 영원히 소유하기 위해 하녀는 동식과 함께 쥐약이 든 물을 마시고 동반자살을 시도한다.

주제
급속한 산업성장과 도시화로 인해 전근대와 근대가 충돌하고 가족제도가 변화하던 시기. 중산층 가정 내부에 존재하는 ‘불안’은 가정을 위협하는 괴물스러운 타자인 하녀와, 거기에 끌려들어가는 가부장의 파멸로 그려진다. 그로테스크한 욕망의 화신으로서의 하녀는 기존의 한국영화 속 관습적인 여성상의 재현과는 달리, 인간의 원초적 본능과 성의 문제가 단순한 쾌락의 문제가 아닌 생존투쟁의 양상을 띠고 나타난다. 1960년대 사회적 타자였던 하녀는 ‘계급갈등’과 ‘젠더’의 변화를 함축하는 상징적 존재로 여성에 대한 남성의 불안을 야기시키고 이어지는 ‘여자 시리즈’에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마조히즘적 남성상의 시초를 출현시킨다.

감상포인트
<하녀>는 금천에서 일어났던 ‘실화’를 토대로 만들어졌는데, 김기영 감독은 이처럼 실화에서 소재를 취하는 것을 선호했다. 자기만의 주제의식과 독특한 스타일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의 영화가 흥행에도 성공했던 것은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하는 이같은 김기영식 영화만들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특히, <하녀>를 원형으로 <화녀>(1971) <충녀>(1972) <화녀82>(1982) <육식동물>(1984)에 이르는 연작들 속에서는 이러한 시대적 감각이 각 시대상황에 맞게 변주되어 (하녀, 호스테스, 미디어 문제 등...) 나타난다.

동식이 신문기사를 읽는 프롤로그로 시작해서, 에필로그에서 관객에게 말을 걸며 여태까지의 내용이 허구였음을 드러내는 ‘액자식’ 봉합 구성은 검열에 대한 의식, 혹은 대중성을 고려한, 관객에 대한 안전장치로 보인다.

<하녀>의 영화적 공간은 연극적이고 매우 폐소공포증적으로 그려지고 있는데 재봉틀 소리가 끊이지 않는 아내와 아이들이 상주하는 1층과 낯선 젊은 여성들의 공간(피아노 방과 하녀 방)인 2층 그 사이를 잇는 계급과 의식/무의식(환상)을 가로지르는 죽음의 공간인 ‘계단’의 미장센 활용이 뛰어나다. ‘완벽한 중산층 가정’의 모델을 꿈꾸는 아내에게 2층 양옥과 피아노, 거실의 TV, 단란한 세 자녀 등은 일종의 ‘세트’로서 기능한다. 고압적·직설적이고 문어체적인 ‘대사’ 또한 김기영 영화를 특징짓는 중요한 요소다.

감독
1919년 서울출생. 서울대 의대 재학시절 연극반 활동을 했던 그는 소포클레스 등 일련의 그리스 비극과 입센 등의 북유럽 연극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한국전쟁 직후 미공보원에서 제작하는 홍보영화 연출을 하면서 영화와 인연을 맺고, 네오리얼리즘적 영화 <주검의 상자>(1955)로 데뷔해 <양산도>(1955), <초설>(1958), <10대의 반항>(1959) 등 초기영화에서는 리얼리즘 성향의 작품을 주로 만들었다. 이영일은 김기영의 작품세계를 ‘리얼리즘 영화’, ‘인간의 본능을 응시한 영화’, ‘오락영화’의 세 경향으로 나눴는데, <하녀>를 비롯한 ‘여자 시리즈’는 ‘검은 마성의 미학’을 드러낸 김기영 영화의 두 번째 계열을 이루는 작품들. 당대 사회를 반영한 실제 사건들을 모티브로 한 이 연작들은 표현주의적 조명과 세트, 문어체투의 대사 등의 특징을 띠며 당시 주류 영화의 관습들과 거리를 두었음에도 불구하고 흥행에 크게 성공했다. 시리즈를 통해 가부장제 가족 내에서 남성의 무능과 여성의 욕망 등을 주로 그려냈던 김기영의 영화는 산업화와 근대화가 추구했던 발전논리나 윤리적 엄숙성을 조롱한다.

1972년 이후 영화법이 바뀌자, 더 이상 제작자이자 감독의 역할을 동시에 하며 자신의 색깔을 가진 작품을 만들기 어려워졌고 김기영 감독이 이 시기에 만든 영화는 문예영화가 주를 이뤘고 반공영화, 멜로드라마 등을 오고갔다. 그러나 1970, 80년대 김기영의 필모그래프의 부침은 이 시기의 기형적이었던 영화산업의 흐름과 함께 이해되어야 한다. 이청준의 소설을 김기영식으로 각색한 <이어도>(1977)는 70년대 김기영의 대표작이었고, 이광수의 원작인 <흙>(1978) 또한 원작과는 다른 분위기로 훌륭한 각색을 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수천년 전 죽은 여성이 환생해서 정사를 치른 후 사라지는 <살인나비를 쫓는 여자>(1978)는 김기영 최고의 컬트영화로 꼽힌다. 1979년 신한문예영화사를 설립했으나 활발한 작품활동은 없었고, <바보사냥>(1984)을 끝으로 30편의 작품을 남겼다.

1997년 제 2회 부산국제영화제 김기영 회고전 개최 이후 재조명되었고, 이듬해인 1998년 자택에서 화재로 사망했다. 2007년 파리 시네마테크 프랑세즈 회고전 개최, 2009년 뉴욕현대미술관에서 회고전 개최, 2008년 마틴 스콜세지가 수장인 ‘세계영화재단’에서 <하녀> 디지털 복원, 칸 영화제에서 상영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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