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문진이 아니라 MBC ‘내부’가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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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칼럼] 줄서기는 파벌을 낳고 파벌은 분열을 양산한다

8월 1일자 동아일보 기사 한 대목.

“이미 구영회 전 삼척MBC 사장, 김재철 전 울산MBC 사장, 신종인 전 부사장 등이 차기 사장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새롭게 선임된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이사진에 대한 평가를 다루고 있는 이 기사는 엄기영 사장의 교체 여부로 마무리를 지었다. 방문진 이사진 교체와 MBC 현 경영진 교체가 마치 동의어가 된 듯하다. 엄 사장의 임기는 2011년 2월까지다. 하지만 동아는 해당 기사에서 차기 사장 후보 명단까지 적시했다. 무슨 의미일까. 교체의 기정사실화다.

엄기영 사장의 ‘결사항전’과 새 방문진의 선택

▲ 동아일보 8월1일자 8면.
교체작업, 순조롭게 진행될까. 새롭게 구성된 방문진 이사 9명 가운데 6명이 ‘친여성향’이고, 뉴라이트 인사들까지 이사에 포진했으니 가능성이 높다고 봐야 한다. 하지만 단정은 이르다. 변수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그 변수는 다름 아닌 엄기영 사장이다. 지난 7월 “끌려 나가는 한이 있어도 내 발로 걸어 나가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며 강경한 입장을 밝혔던 엄 사장은 3일 “회사 안팎에서 많은 논란과 갈등이 일어나고 있지만, 어느 정파, 어느 세력에도 흔들리지 않고 ‘정도를 가겠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강조했다.

외부에서 가해오는 ‘MBC 압박’에 정면대응 의지를 밝힌 셈이다. 스스로 물러나지 않겠다는 뜻도 분명히 했다. 자신의 남은 임기를 끝까지 마치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정리하면 이렇다. 결사항전.

이 대목에서 다시 질문 하나.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가능성은 반반이다. 물론 새 방문진은 엄 사장을 합법적으로 해임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해임의 내용’이 무엇인지에 따라 사안의 성격은 달라진다. ‘정치적인 이유’로 임기가 남은 방송사 사장 교체를 시도할 경우 특히 그 결정에 불복, 엄 사장이 결사항전 태세로 나올 경우 얘기는 더욱 달라진다.

우선 임기가 남은 사장을 강제로 끌어내리려는 방문진의 시도가 ‘합리적인가’ 여부가 도마 위에 오르게 된다. 조중동의 ‘지원사격’을 고려해도 정부가 여론전에서 유리할 거라는 장담도 할 수 없다. 가변적이긴 하지만 엄기영 사장에 대한 대중적 지지는 생각 외로 클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탄압받는 언론인 이미지가 더해진다면? 엄 사장의 결사항전 의지에 변화만 없다면 이 변수는 생각 외로 파괴력이 클 수 있다.

청와대와 방문진보다 ‘내부의 적’이 문제다

엄 사장 의지에 변화가 없다는 걸 전제로 할 경우 문제는 MBC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 있다.  이 말은 만약 MBC가 정권이나 권력에 의해 장악이 된다면 그건 ‘외부의 압박’에 의해서라기보다는 ‘내부의 분열’ 때문에 가능했다는 얘기다.

▲ 엄기영 MBC 사장 ⓒMBC
내부 분열은 멀리 있지 않다. 당장 MBC 이사회 구성을 놓고 분열이 발생할 여지는 많다. MBC 이사회는 지금까지 사장이 ‘권한’을 행사해왔다. MBC 사장이 이사진 후보 명단을 방문진에 제시하면, 방문진은 이를 거의 그대로 수용해 온 것이 일종의 관행이었다. 하지만 새 방문진은 이 관행을 인정하지 않을 방침이다. 직접 이사진을 구성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기 때문이다.

방문진이 직접 이사진을 꾸리면 어떻게 될까. 일차적으로 MBC의 무게중심이 사장보다는 방문진 쪽으로 쏠리게 된다. 그리고 그 다음엔 MBC 구성원들의 방문진 줄서기가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 당장 ‘포스트 엄기영’을 생각하고 있는 일부 사장 후보들의 방문진 줄서기가 가시화 될 가능성도 있다. 동아의 기사를 예사롭지 않게 보는 이유다.

그 다음 수순은? 예상대로다. 줄서기는 파벌을 낳고 파벌은 내부 분열로 이어지며 이는 곧 MBC의 ‘효율적 통제’로 연결된다. 이 과정에서 부문별 갈등이 심화될 가능성도 상존한다. 이런 상황이 초래되면 엄기영 사장의 결사항전은 무용지물이 된다. 그 역의 상황도 마찬가지. 구성원들이 결사항전 의지를 보이더라도 엄 사장이 태도를 바꾸면 역시 무용지물이다.

정리하면 이런 얘기다. 권력 또는 방문진의 MBC 장악여부는 청와대나 방문진의 ‘의지’보다는 MBC 내부의 동력에 있다. 지금 MBC는 그 동력을 제대로 가동시키고 있는가. MBC에 묻는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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