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홍 전격 사의표명, 언론계 재편의 신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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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 정부 측 판단 가능성…KBS·MBC 경영진 등에 대한 경고

3일 구본홍 YTN 사장의 전격적인 사의 표명은 YTN뿐 아니라 언론계 안팎에 미묘한 파장을 부르고 있다. 지난해 7월 취임해 임기 1년을 갓 넘긴 구 사장의 이번 사의 표명은 ‘낙하산 사장 반대’ 운동을 벌여온 YTN노조조차도 짐작하지 못했을 만큼 급작스러운 것으로, 정권의 판단이 주효하게 작용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조직 장악에서 감점?…“YTN 보도에도 영향 미칠 수 있는 인물 내려올 가능성”

▲ 구본홍 YTN 사장 ⓒPD저널

YTN 사측에 따르면 구 사장은 이날 오후 실·국장 간담회를 주재한 자리에서 “사장 취임 1년이 지났다”며 “그동안 회사가 어느 정도 안정된 것으로 보고 이제는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날 때가 됐다고 판단했다”면서 사의 표명의 배경을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언론계 안팎에선 구 사장의 이 같은 설명이 사의 표명의 ‘전부’가 아니라는 판단을 하고 있다. 구 사장 사의 표명 전 YTN 노조 등 누구도 이 사실을 예측조차 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구 사장 자의에 따른 결정이라면 자신의 취임 이후 1년 넘게 내홍을 겪고 있는 조직을 추스르기 위해서라도 노종면 노조위원장 등 해고자들의 복직 문제 등을 해결할 방안을 내놨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지상파 방송사의 한 관계자는 “구 사장이 진심으로 그간 YTN이 겪었던 갈등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길 바란다면 자신으로 인해 벌어진 해고자 문제를 해결하고 고소고발 등을 취하하고 떠나야 한다”며 “수많은 논란에도 버티던 구 사장이 일련의 문제들을 해결하지 않고 ‘선의’를 믿어주길 기대하는 것은 상식에 맞지 않다”고 말했다.

정권 입장에서 구 사장에 대해 참을 만큼 참았다는 시각도 있다. 지상파 방송사의 또 다른 관계자는 “구 사장이 취임 이후 1년 동안 ‘낙하산 사장’을 반대하는 노조를 제압하지도, 조직 내부를 장악하지도 못하지 않았나”라면서 “더 이상 구 사장 체제를 끌고 가봤자 정권에 유리할 게 없다는 판단을 한 것 같다. 구 사장과 같은 대통령 특보 출신이 아닌, 노조가 대응하기 더 힘든 강력한 인물을 내세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상재 전국언론노조 위원장도 “정권에서 결국 구 사장이 실질적으로 YTN을 장악하지 못했다고 보고 있는 게 아니겠냐. 향후 (YTN을)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을 내려 보내 보도에 영향을 미치는 등 ‘제대로’ 접수하려는 시도를 할 것으로 보인다. (지금보다) 더 위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로 구 사장의 사퇴 표명 직후 언론계 주변에서 지난 주말 청와대가 구 사장에게 이미 사인을 줬다는 소문이 떠돌고 있다.

구 사장은 현재 자신이 업무방해 혐의로 고소한 노조와의 법정공방을 진행 중이고 지난달 16일에도 이 때문에 법정에 섰는데 이 사안에 대한 결론이 난다 하더라도 노조 측의 ‘징계무효소송’ 등이 이어질 예정이다. 자칫하면 임기의 절반 이상을 노조와의 법정투쟁에 허비할 수도 있는 상황인 것이다.

결국 구 사장이 YTN 내부를 완전히 장악하지 못하면서 사실상 ‘식물 사장’으로 기능하게 두기 보단 잔여 임기 2년을 대외적인 결격 사유가 부족한, 그러나 정권과의 코드가 맞는 인물을 내세우자는 게 정권의 판단이란 얘기인 것이다. 실제로 언론계 주변에서 벌써부터 차기 사장 내정자에 대한 하마평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청와대 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YTN 문제는 YTN 내부에서 알아서 할 일”이라며 “청와대가 공식적으로 내놓을 입장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공영방송 사장 교체설 속 특보출신 사장 사퇴 의미는?

구 사장의 전격적인 사의 표명은 KBS와 MBC 등 공영방송 경영진에 대한 교체 논란 속에 나왔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심장하다는 지적이다.

지난 대선 당시 이명박 대통령 캠프의 방송특보단 상임특보를 지낸 구 사장이 취임 1년 만에 이처럼 전격적으로 물러나는 상황 자체가 정부·여당의 언론관계법 날치기 개정 이후 ‘다(多)공영 1민영’ 체제의 현재의 방송구조를 ‘1공영 다민영’ 체제로 변화시키는 과정 속에서 이뤄질 언론계 재편의 신호탄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양문석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총장은 “이병순 KBS 사장의 경우 오는 11월 임기가 만료되는데, 현재만 해도 정부의 언론법 개정 광고에 대해 노조가 문제를 제기하는 일 등을 막지 못해 말을 만들어내고 있는 상황 아니냐”면서 “구 사장의 사퇴가 이 사장에겐 ‘경고’처럼 느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이하 방문진)의 새 이사진의 3분의 2가 친여·뉴라이트 측 인사들로 채워지면서 민영화 논란이 가열되고 있는 MBC의 입장에선 구 사장의 사의표명은 더 심각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얘기도 나온다.

지상파 방송사의 한 관계자는 “특보 출신의 YTN 사장도 1년 만에 물러나는데 MBC 경영진이 지금처럼 정권 비판 보도·프로그램들을 내버려둘 경우 어떻게 될지, 엄기영 사장이 남은 3년 임기를 채우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구 사장에 대한) 일종의 시위성 징계로 엄포를 놓은 게 아니겠냐”고 말했다.

최상재 위원장은 “구 사장의 사퇴는 현재의 공영방송 사장단 그리고 향후 언론계 수장으로 앉게 될 이들 모두에 대한 정권의 경고로 볼 수 있다”며 “언론계가 현재보다 더 힘든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결국 구본홍 사장의 사퇴는 당장 KBS와 MBC 경영진에 대한 압박일 수 있지만, 향후 이들까지 교체된다면 이들 자리에 앉을 차기 경영진에 대한 일종의 본보기로서 기능할 수 있다는 지적인 셈이다. 때문에 언론계에선 정권에 대한 비판·감시의 역할을 해야 할 언론인들이 자신의 직분을 다하기 위해 안팎에서 치열한 갈등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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