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정배 의원이 고양이로 변신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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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서울 도심에 나타난 미디어법 잡는 ‘고양이들’

8일 오후 6시, 서울 도심에 강행처리된 '미디어법'을 잡는 '고양이들'이 나타났다.

얼굴에 페이스 페인팅으로 고양이 분장을 하고 손에는 '언론악법 원천무효', '언론장악 저지'와 관련된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든 사람들이 광화문광장과 청계광장, 시청광장 등 주요 도심에서 활동을 시작한 것.

'고양이' 무리 중에는 전국언론노조 조합원들은 물론 일반 시민, 누리꾼들, 그리고 국회의원까지 각계 각층의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숫자도 100여명이 넘었다.

'고양이들'은 '언론악법 원천무효 언론장악 저지 100일 행동(아래 100일 행동)'이 주최한 동시다발 1인 아트 퍼포먼스에 참가한 이들이었다. '100일 행동'은 야4당(민주당·민주노동당·창조한국당·진보신당)과 미디어행동 등 시민사회단체, 누리꾼, 그리고 전국언론노동조합이 함께 하고 있다.

▲ 영화 <브이포벤데타> 속 '브이'의 가면을 쓰고 나온 참가자들. ⓒ 이승훈
서울 도심에 나타난 고양이들

이들은 곳곳으로 흩어져 미디어법 폐기를 요구하는 1인시위를 벌이고 미디어법의 문제점을 알리는 유인물을 시민들에게 나눠줬다. 시민들의 주목을 받기 위해 페이스 페인팅은 물론 가발과 가면 등 갖가지 아이디어들도 동원됐다. 한 참가자는 "이명박이 독재자가 아니라면 제 멱살을 잡아주세요"라는 피켓을 높이 들었다. 하지만 그의 멱살을 잡는 시민은 없었다.

고양이 분장을 하고 머리에 알록달록한 가발까지 쓰고 나온 박상원(50)씨는 '조중동'이 신문시장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데 방송까지 장악하게 되면 진실한 보도가 이루어질지 걱정스럽다"며 "시민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미디어법의 문제점을 알리기 위해 가발을 썼다"고 말했다.

박씨는 "시민들이 물과 먹을 것도 가져다 주시고 응원을 해주시는 것을 보니까 효과가 만점이었던 것 같다"고 흐뭇해했다.

방아무개(34·컴퓨터 프로그래머)씨는 영화 <브이 포 벤데타>의 '브이(V)' 가면을 쓰고 나와 눈길을 끌었다. <브이 포 벤데타>는 정부의 완벽한 통제 아래 국민들이 모두 똑같은 채널을 보고 조작된 뉴스를 보면서 '진실'을 알 권리를 박탈당한 채 살아가는 2040년 영국의 가상현실을 다룬 영화다.

방씨는 "이번 미디어법 날치기는 언론과 방송을 장악하기 첫 번째 포석이라고 생각한다"며 "이런 식으로 국민들이 하나씩 양보하다 보면 <브이 포 벤데타>의 세상처럼 언론이 국가의 통제를 받는 상황이 오지 말라는 법이 없다"고 우려했다.

그는 "그래서 저항의 의미로 영화 속에서 독재체제를 무너뜨리기 위해 저항하는 '브이'의 가면을 쓰고 나왔다"며 "이명박 정부가 집회를 막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식으로라도 저항의 뜻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 고양이 분장을 하고 광화문광장에 선 천정배 민주당 의원 ⓒ 이승훈
얼굴에 고양이 분장을 한 천정배 민주당 의원은 광화문광장의 이순신 동상 앞에 자리를 잡았다. 광장에 선 천 의원은 시민들에게 "미디어법은 여러분의 눈과 귀와 입을 막고 민주주의를 죽이는 악법"이라며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언론악법을 막아달라"고 호소했다. 고양이 분장을 했음에도 천 의원을 알아본 시민들은 그와 함께 사진을 찍고 악수를 청했다.

주봉희 전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교통사고로 몸이 불편한 가운데 링거병을 꽂은 채로 이날 1인 시위에 나와 시민들의 눈길을 끌기도 했다.

1인 시위마저 막은 경찰... "시민들에게 피해도 없는데 왜 막나"

이날 경찰은 10개 중대 700여명을 동원해 피켓을 들고 광화문광장과 청계광장, 시청광장 등으로 이동하려는 1인 시위자들을 둘러싸고 길을 막아 거센 반발을 샀다.

참가자들은 "무슨 규정에 근거해 자유로운 이동을 막는 것이냐", "합법적인 1인 시위를 막는 이유가 뭐냐"는 거센 항의가 이어졌지만 경찰은 침묵을 지키며 꿈쩍도 하지 않았다.

광화문광장에서 있던 시민들이 보다 못해 "1인 시위는 합법 아닙니까", "시민들에게 피해를 주지도 않는데 왜 막는 겁니까"라고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현장에 나와 있던 경찰 지휘관은 "변질된 1인 시위라서 집시법 위반으로 막는 것"이라는 궁색한 답변을 내놨다.

태평로 언론재단 앞에서는 1인 시위자가 들고 있던 피켓을 빼앗아 "경찰이 강도냐"는 비아냥을 듣기도 했다. 근처에서 이를 본 전아무개(40)씨는 "이명박 정부는 집회의 자유를 말살하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합법적인 1인시위마저 막아서고 있다"고 개탄했다.

법 집행의 형평성도 없었다. 같은 광화문 광장에서 1인 시위를 하더라도 언론노조 조합원이나 일반 시민들의 경우에는 경찰 6~7명이 한꺼번에 둘러싸고 막았지만 민주당 의원들의 1인 시위는 막지 않았다.

미디어법 관련 1인시위는 안되고 전도활동은 OK

▲ 경찰은 이날 1인 시위마저 병력을 동원해 가로막았다. ⓒ 이승훈
특히 광화문 교보 빌딩 앞에서는 미디어법 철회를 요구하는 피켓을 든 1인 시위자가 경찰에게 저지를 당했다. 하지만 "그리스도는 다시 오셔서 세상을 심판한다"고 적힌 깃발을 들고 있던 종교인은 아무런 제지를 받지 않았다.

같은 1인 시위 형태라도 미디어법의 부당성을 알리는 것은 불법이고 전도활동은 합법이라는 게 이날 경찰의 논리였다.

이날 퍼포먼스가 끝난 후 열린 정리 모임에서 천정배 의원은 "경찰이 1인 시위자를 둘러싸고 막는 것은 국가공권력의 심각한 남용이자 길가는 무고한 시민을 위협하는 범죄행위"라고 비판했다.

최상재 위원장은 "경찰이 가로막으니 주위의 시민들이 더 많이 주목해서 효과가 더 좋았다 그래서 오히려 경찰이 당황하더라"며 "앞으로 모든 상상력을 발휘해서 오늘처럼 경찰이 대응책을 마련할 수 없는 발랄하고 업그레이드된 방식으로 투쟁해 나가자"고 밝혔다.

* 이 기사는 오마이 뉴스(www.ohmynews.com)에서 제공하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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