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하마드 알리와 ‘내 안의 검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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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훈의 세상읽기]

▲ 우석훈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강사 (88만원 세대 저자)
케시어스 클레이라는 자신의 이름을 버리고 무하마드 알리란 이름을 선택한 어느 복서는 아마도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스포츠맨이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지난 8월 7일 뉴욕 양키스와 보스턴 레드삭스의 미국 프로야구 라이벌전에서 알리는 경기 전 작은 시상식에 시상자로 모습을 드러냈는데, 몸값이 수백억원에 달하는 메이저리거들이 알리를 보기 위해서 덕아웃에서 뛰쳐나왔다.

역시 알리는 알리였다. 파킨슨병을 앓고 있고, 더 이상 예전의 영민하고 민첩한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어도, 알리는 알리였다. 지금 알리 정도의 위치에 비견할 수 있는 사람은 중남미 빈민들의 영웅이자, 전세계 축구 대통령이라고 할 수 있는 펠레 정도일 것 같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알리의 위상은 더욱 높아지는 것 같다.

알리만큼 권투를 잘 했던 사람을 꼽으라면 금방 몇 명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무적의 마이클 타이슨, 헤비급 타이틀 20차 방어의 래리 홈즈, 천재 복서 슈가레이 레너드, 돌주먹 듀란, 이런 사람들도 당대의 인기만 따지면 알리를 능가했던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과 무하마드 알리는 전혀 다르다. 알리라는 이름에는 흑인 운동의 대부 말콤 엑스, 월남전 참전 거부와 대법원까지 올라간 종교적 병역거부, 흑인 빈민들을 위하여 아프리카에서 열렸던 조지 포먼과의 챔피언전 같은 것들이 붙어 다닌다.

국가가 그를 위하여 4주짜리 훈련과 예비군으로 구성된 입대 프로그램을 제시하였을 때, 그는 자신의 민족을 위하여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은 사람들과는 싸울 수 없다고 결국 참전을 거부한다. 그리고 권투선수 자격이 박탈당하고, 패전 없이 헤비급 챔피언 벨트가 빼앗긴다. 그걸 포먼에게서 되찾아온 것이 32살의 나이였다. 너무 쉽고 편한 선택이 있었지만, 어쨌든 세상이 ‘떠벌이 알리’라고 불렀던 그는 가난을 선택하고, 흑인 빈민 운동과 평화라는 두 가지 상징을 어깨에 붙이게 된다.

▲ 뉴욕 양키스 스타디움에서 열린 뉴욕 양키스와 보스턴 레드삭스의 시합전에 시상자로 나선 무하마드 알리(왼쪽)가 관중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고 있다.
케시어스 클레이라는 이름은 주인 클레이의 성을 딴 노예의 이름이라고 거부했던 알리의 영광과 그가 쌓아올린 부를 탐내는 스포츠 영웅, 예술가, 그리고 연예인들은 많을 것 같지만, 알리만큼 누군가를 대변하고, 자신의 생각에 따라서 발언하고, 그렇게 사회적 존재로 우뚝 서는 것은 세계적으로도 쉽지 않은 것 같다. 알리와 비교해보면, 우리는 너무나 정치적 올바름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고, 정치적 신념을 가지고 있지 않거나 아니면 감추는 데 익숙해져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프로야구 선수들은 절대로 2군 선수들의 경제적 고통을 대변하지 않고, 그 맨 앞에 서서 영광을 누리려 하지만 세상의 어두움을 같이 짊어지려고 하는 것 같지는 않다.

오드리 햅번은 세계 어린이의 기아 문제에 가장 앞장서서 나섰던 인생으로 자신의 삶을 마무리하였고, 이 햅번의 이미지를 이어받기 위해서 마돈나, 샤론 스톤, 안젤리나 졸리와 같은 여배우들이 진심이든 아니면 가식적이든 국제 활동의 맨 앞에 나서고, 진보적 이미지를 잃지 않으려고 한다. 한 때 프랑스 선거 때마다 이브 몽땅은 사회당을 대표하고, 알랭 들롱은 우파를 대표해서 세기의 홍보전을 펼친 적이 있다. 아무도 이브 몽땅에게 왜 중립을 지키지 않느냐고 비난하지 않고, 아무도 알랭 들롱에게 어떻게 우파를 찬양할 수 있느냐고 비난하지 않는다. 어떠한 방식으로든 자신의 생각을 사회적 영웅으로서 얘기하고, 자신이 믿고 잃는 옮음을 실천하는 것은 세상을 위해서 중요한 일이다.

한국의 스포츠 영웅, 연예계의 영웅 그리고 예술계의 영웅을 보면서 그들 안에 자리 잡는 지독할 정도의 ‘자기 검열관’이 무서울 뿐이다. 우리의 영웅들은 국가로부터 혹은 시장으로부터 명예와 영광만을 가지고 갈 뿐, 아무런 사회적 책임은 지지 않으려고 하는 것 같다. “우리는 중립이예요”라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가끔씩 무하마드 알리를 떠올리게 된다. 어떤 식으로든 발언하라. 그렇지 않다면 영원히 대중들의 바비 인형이 될 뿐, 알리처럼 세기를 뛰어넘고 국가를 뛰어넘는 진짜 영웅은 되지 못한다.

한국의 영웅들이 대중 앞에서 하는 얘기는 “자기는 이렇게 잘 나서 성공했다” 혹은 “이렇게 노력해서 성공했다”, 딱 두 마디 밖에 없는 것 아닌가? 신자유주의 시대, 우리의 영웅들은 왜 이렇게 “모든 것은 자기하기 나름이다”라는 신자유주의적인 이념의 전파자 밖에 되지 못하는 것인가? 그 안에 정말로 무서운 자기 검열관이 있어서 그런 것인가, 아니면 팬들이 그들에게 사회적 위치를 요구하지 않아서 그런 것인가? 어떤 식이든 좋다. 제발 “팬 여러분 사랑해요”라는 말 대신, 생태든, 평등이든, 균형이든 아니면 평화든, 자신의 신념을 말하고, 그렇게 해서 우리의 영웅이 알리와 같은 진짜 역사 속의 영웅이 되기를 바란다. 내 안이 검열관, 그것과 이기지 못하면 진짜 영웅이 되지 못한다. 무하마드 알리를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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