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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기획(1) 여성 대중음악 뮤지션을 말한다]

연재를 시작하며

이 기획은 지금 이곳의 여성 뮤지션이 음악을 하는 현상들을 여러 각도에서 조명해보는 데 있다. 왜 여성들의 음악인가. 이글은 그간 여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나 관습적 제약 등을 상세히 논하는 (혹은 여성주의적 시각에 입각한) 자리는 아니다. 역설적으로 이런 편견이나 제약 때문에 여성음악을 설명하는 여러 범주들이 생긴 건 아닐까. 더불어, ‘여성음악’만을 별도로 장르화하려는 것도 아니다(그럴 수도, 그럴 필요도 없다). 다만, 이들 주변에 많은 흥미로운 양상이 복류하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최근만 해도 주류 음악계에는 ‘소녀들의 시대’가 만개하는 중이며, 최근 화두로 떠오른 인디 씬 주변의 여성음악인들도 주목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다. 시대는 변하고 있고, 과거와는 다른 태도를 견지한 여성 뮤지션들도 많이 나오고 있다. ‘여성음악’은 말하자면 우리 시대, 대중음악의 ‘한’ 단면을 묘사한 자화상 같은 것이 아닐까. 〈PD저널〉은 앞으로 약10회에 걸쳐 최지선 대중음악평론가와 함께 한국의 여성 대중음악뮤지션 조명을 통해 대중음악 발전을 모색해 볼 예정이다. 〈편집자 주〉

<여성 대중음악뮤지션을 말한다> 연재기획 순서

1. 여성가수의 음악을 둘러싼 편견들
2. 섹시 댄싱퀸의 존재론 (1): 김추자에서 손담비까지
3. 섹시 댄싱퀸의 존재론 (2): 김추자에서 손담비까지
4. 중성 혹은 남성형 캐릭터들: 피터팬과 톰보이 사이에서
5. 주술자, 사제, 여신, 그리고 뮤즈
6. 다양한 유형을 한 자리에: 여성 그룹 (1)
7. 새로운 세대, 새로운 여성 그룹 (2)
8. 전기기타를 든 여자들
9. 여성 싱어송라이터의 계보학
10. 홍대 앞 여성 뮤지션
11. 아직도 못다 한 이야기들

첫 번째 이야기. 여성가수의 음악을 둘러싼 편견들

올 봄, 박중훈쇼에 초대된 소녀시대에게 진행자 박중훈은 이런 질문을 했다. “가창력 있는 진정한 가수이지만 무명가수인 경우와, 인기는 있는 스타이지만 가창력은 좀 떨어지는 경우” 중에 어떤 걸 택하겠느냐고. 멤버들이 각기 한 쪽을 선택하자 “가창력만 있는 가수: 써니 제시카 유리 태연 서현”과 “인기 스타: 수영 효연 티파니”로 양분하는 내용의 자막이 떴다.

▲ 지난 3월8일 KBS 2TV <박중훈 쇼 대한민국 일요일밤>에 출연한 소녀시대 ⓒKBS
자신들이 인기만 있고 진정한 가수는 아니라는 시선을 의식해서였을까. 둘로 딱 가르려는 진행자의 멘트에 미묘한 반응을 보였다. 특히 수영은 “진정한 가수라는 기준 자체가 가창력 등등 여러 가지가 있다”면서 “노래를 잘 하면 물론 진정한 가수이기는 하지만, 노래를 못해도 무대에서 내 모습을 열정적으로 표출하고 관객과 호흡할 수 있다면 진정한 가수”라고 말했다. 이들의 답변에는 (이들의 진짜 의도인지는 몰라도) “(가창력 없는) 인기스타와 진정한 가수”라는 이분에 대한 의구심이나, “가창력이 있어야만/가창력만 있다고 해서 진정한 가수인가”에 대한 의문이 내포되어 있었다.

진정한 가수란?

당연히 가수는 실력이 있어야 한다. 그러면 가수에게 필요한 능력이란 무엇일까. 좋은 가수의 조건은 무엇인가. 우선 가수는 노래를 잘 불러야한다. 너무 당연한 말인가. “가창력 있는 가수=진정한 가수”라는 등식은 앞의 사례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또 질문! 노래를 어떻게 불러야 잘 부른다는 걸까. 흔히, 정확한 음정과 박자 표현은 물론, 고저음을 자유롭게 오가는 넓은 음폭, 특히 안정적인 고음 처리와 풍부한 성량, 표현력을 더해주는 적당한 바이브레이션, 더불어 가수만의 독특한 음색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음악 쇼프로그램이나 콘서트장에서도 ‘쌩으로’ ‘잘’ 부를 수 있어야 한다.

이런 가창법을 가지면 정말 진정한 가수인 걸까? 노래를 잘 부른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사실 ‘잘 한다/못 한다’ 또는 ‘좋다/나쁘다’는 노래에 대한 가치판단도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맥락을 가진 것이다.

우선 한 장르/스타일 안에서도 시대에 따라 가창력의 잣대가 다를 수 있다. 음정이나 박자가 정확치 않은 것도 먼 과거에는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1920년대, 성악을 공부했다던 윤심덕이 부른 ‘사의 찬미’는 놀랍게도 음정이나 박자가 부정확하다. (한 분석에 따르면) 이는 민요나 시조에 익숙했던 사람들이 당시 유입되기 시작한 서양식 노래를 부르는 방식이었다. 1960, 70년대 트로트의 여왕 이미자의 목소리는 다소 구성진 바이브레이션에 비애가 서려 있었지만, 2000년대의 트로트 히로인 장윤정의 목소리는 경쾌하고 산뜻하기 그지없다(이는 사운드와 가사 등 음악 형식이나 내용과도 관련이 깊다).

각기 장르/스타일마다 좋은 가창의 기준은 상당히 다를 수 있다. 포크 음악은 기교 없는 깔끔한 톤을, 트로트는 ‘꺾는’ 소리를, 알앤비 발라드는 ‘소몰이창법’을 선호한다. 이런 장르관습적 코드를 넣지 못한다면, 노래를 잘 부른다고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포크식으로 밋밋하게 부르는 트로트를 두고, 좋은 또는 맛깔스런 트로트 가창이 아니라고 할 사람도 많을 것이다.

가수는 노래만 잘 부르면 된다? 

노래 실력 말고도 가수 주변에는 많은 것들이 따라다닌다. 첫 번째는 말할 필요도 없이 외모에 대한 것이다. 점점 화려해지는 최근으로 올수록, 빼어난 얼굴과 몸매는 특히 주류음악계 여성들에게 암묵적인 요건이 되고 있다. 얼굴만 예쁘고 실력은 없다고 비난하거나 이에 무관심한 척하면서도 우리는 얼굴에, 몸매에 눈이 간다. 예전과 달리 ‘예쁘다’는 것 이외에 섹시하다, 귀엽다, 지적이다, 발랄하다 등으로 다양한 층위들로 세분화되었을 뿐이다. 심지어 최근 홍대앞의 여성음악인들조차 ‘얼짱’ ‘요정’ ‘여신’ 등의 애칭으로 불리는 등 외모가 사람들의 호감을 불러일으키는 데 일조했음에 틀림없다. 예뻐도 문제고, 안 예뻐도 문제인 것이다.

두 번째로, 남녀 불문하고 가수에게 부과되는 또 하나의 짐은 노래실력 이상의 무언가를 갖추어야 ‘뮤지션’ 혹은 ‘아티스트’로 인정받는다는 것이다. 노래뿐 아니라 작곡이나 연주, 나아가 프로듀싱까지 했다면 대단한 뮤지션이라 칭송받곤 한다. 곡을 짓는 능력과 악기를 연주하는 능력, 나아가 음악 전체를 통제하는 능력을 가졌는가에 따라 뮤지션의 위계가 만들어진다. 이는 남성에게도 똑같이 작용한다.

▲ 홍대 '얼짱'으로 불리는 가수 요조
하지만 여성뮤지션 직업군에서 보컬리스트 이외의 역할을 가지기는 드물었다. 밴드편성에서도 연주나 작곡보다는 가창에 편중되어왔고, 연주를 한다 해도 전자기타나 드럼 같은 ‘쎈’ 악기보다는 피아노 같은 건반악기 등에 국한되곤 했다. 영화 〈그여자 작사, 그남자 작곡〉처럼 여자가 작곡보다는 작사하는 풍경이 더 익숙하다. 요즘에야 여성이 밴드에 참여하거나 여러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이 낯설지 않지만, 전문작곡가나 프로듀서, 엔지니어(그 외 많은 음악 관련 직업이라 칭송받는 테크놀로지 관련)는 아직도 여성의 유망직종과 거리가 있다. 위의 관점대로라면 여성의 경우 ‘진정한 음악가’로서의 위치를 점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들은 MUST HAVE MUSICIAN/SINGER 아냐/그들은 ARTIST” (빅뱅 〈Let's Go Bigbang with V.I.P〉 중)

이런 열망은 대중음악의 오랜 화두였던 ‘진정성’에 대한 천착과도 관련되며, 천부적 재능을 가진 창조적 예술가를 이상형으로 하는 낭만주의적 산물이기도 하다. 이는 호칭사용에서도 드러난다. 가수(singer)보다 뮤지션이, 뮤지션보다 아티스트가 음악성(뮤지션십), 예술성을 담은 단어로 간주되는 듯하다(이는 ‘가요’라는 용어와 마찬가지 입장이다).

가령 아이돌 그룹이나 트로트 가수들에게 뮤지션이나 아티스트라는 칭호는 잘 붙이지 않는다. 반면 신중현, 조동진 같은 이들은 아티스트가 된다. 여자로 치면 한영애는 아티스트, 장윤정은 가수가 된다(물론 ‘아티스트’라는 말을 적용할 때 남녀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다시 말해, 이런 현상들은 영화에는 진작에 유입된 이른바 ‘작가주의’적 관점이 투영된 결과일 뿐이다. 음악 레코딩에서는 프로듀서가 일종의 ‘작가적 위치’를 차지한다. 음악 전체를 통제하고 관장하는 수장으로서의 프로듀서는 (혹자의 주장에 따르면) 흡사 ‘가부장적 위치’를 수행하는 듯 보인다.

나는 작가주의 영화와 마찬가지로 대중음악도, 지나치게 음악성 또는 예술성에 경도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작곡가나 프로듀서의 존재는 중요하지만,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모두 맡을 필요는 없다. 그런 능력을 발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노래를 해석하고 이를 표현하는 것이 싱어에게 더 중요할 수 있다. 이때 가수에게 중요한 것은 목소리이다. 가수의 목소리를 통해 음악의 메시지나 정서가 전달된다. 악기를 통한 연주도 이런 역할을 하지만 근원적인 악기는 목소리일 수 있다. 가수가 ‘무엇을 노래하는가’보다는 ‘어떻게 노래하는가’가 중요하다는 한 영국 대중음악학자의 말은 이런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이때 중요한 것은, 한 기호학자의 용어를 빌면 가사의 직접적인 의미보다는 정서를 실어내는 목소리의 ‘결’일 수도 있지 않을까.

여자가 더 감정 표현을 잘 한다?

▲ 가수 인순이 ⓒKBS
그런데 노래 속 감정을 여자가 더 잘 표현한다는 이야기들이 종종 등장한다. 대중음악은 대부분 사랑노래들이다. 노래 속 화자들은 사랑에 빠져 행복하고, 사랑을 잃고 슬퍼한다. 우리는 흔히 보컬리스트들은 노래 속 화자의 감정을 그대로 (혹은 ‘연기’를 통해) 반영하여야 한다고 믿으며, 이를 위해 ‘가슴’으로 노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토치송(torch song)’이라고 불리는 부드럽고 슬픈 사랑노래들을 생각해볼 수 있다. 주로 재즈적인 팝(혹은 그 반대) 음악으로, 서서히 타오르는 불빛처럼 전개되면서, 사랑으로 인한 상처를 치유하(게 해주)는 의미를 가진다. 말하자면 발라드에 포함될 사랑노래들은 거의 토치송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사랑의 낭만 또는 실연의 슬픔을 노래하는 토치싱어(torch singer)는 주로 여성들로 간주된다(전형적으로는 에디뜨 피아프, 빌리 할리데이, 사라 본, 샤데이 등이 연상된다).

왜 여자가수들인가? 사실 남자가수들도 사랑의 기쁨과 이별의 슬픔을 노래한다. 하지만 연약하고 상처받기 쉬운 존재는 여성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게다가 여자들이 남자보다 더 미묘한 감정 표현, 섬세한 정서 전달에 능하다고 믿는다. 때문에 여성보컬이 노래 속의 감정을 잘 포착하고 섬세하게 표현할 거라 기대하는지도 모른다. 여성들이 슬프고 애잔한 노래를 부를 때, 그래서 죄책감 또는 연민이나 동정심을 느끼게 되는 건 아닐런지.

인순이가 〈거위의 꿈〉을 부를 때 사람들은 그간 그녀가 살아온 지난하고 고단한 삶을 읽어내고 감동을 받는다. 그것은 원래의 남성 가창자들(김동률, 이적의 카니발)의 버전에서는 받을 수 없었던 감동일 것이다. 백지영이 부른 슬픈 이별의 노래 〈총 맞은 것처럼〉에는 희생자로서의 한 여성가수의 삶이 중첩된다. 이는 묘하게 더 큰 슬픔을 안겨준다.

▲ 최지선 대중음악평론가
그렇지만 혹시 가창과 표현력의 남녀 간 차이로부터 또 다른 사회문화적 차별들이 양산되거나, ‘여성은 감정적, 남성은 이성적’이라는 고전적인 도식이 강화되는 건 아닐까. 역으로, 여성의 목소리의 힘에 대한 위의 설명이 여성의 목소리(역으로 남성의 목소리)에 대한 또 다른 역편견을 만드는 건 아닐까. 이런저런 생각들이 복잡하게 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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