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의 인권 및 여성운동가 시린 에바디 변호사가 아시아기자협회 이상기 회장의 초청으로‘2009 만해(萬海) 대상’ 평화 부문 수상을 하기 위해서 우리나라를 방문했다. 지난 2003년 이슬람 여성으로는 최초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시린 에바디 여사는 이란 최초의 여성판사로서 이슬람 율법을 앞세운 신정(神政) 체제의 이란에서 특히 여성과 어린이 등 억압받는 인권의 향상을 위해 헌신해온 국제적으로도 널리 알려진 대표적 이란 인권 운동가다.
노벨평화상을 계기로 세계적 인물로 부상했지만 그는 여전히 자신의 조국 이란에서만큼은 눈엣가시처럼 여겨지는 반체제 인사로 낙인찍힌 요주의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바쁜 일정으로 여성인권단체와 불교 가톨릭 개신교 등 각 종교단체 지도자들과 만나 여성의 인권과 종교간 대화 등을 주제로 대담을 나누고 강연도 했다.
언론 법조 문화 정치계 인사들도 만났다. 특히 김형오 국회의장을 접견한 자리에서 에바디 변호사는 이란과 달리 한국에서는 선거의 자유가 있음을 언급하면서 한국을 자유민주주의 국가라고 말하기도 했다. 물론 두 나라의 상황을 절대적으로 비교해본다면 이란보다 사정이 좋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1979년부터 공화제국가로 전환했지만 오랫동안 왕정체제를 겪었고 여전히 극단적 원리주의가 이란 사회를 지배하는 체제임을 감안할 때 분명 한국은 이란에 비해 자유민주주의 국가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한 언론보도에 따르면 김형오 국회의장은 노벨평화상 수상자이자 세계적 인권 및 여성운동가 시린 에바디 변호사 앞에서 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불필요’한 이야기들도 한 것으로 알려져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초당적 자세로 처신해야할 국회의장이 최근의 국내 정치상황을 자신의 정략적 입장에서 편파적으로 왜곡 해석해 발언했기 때문이다.
그 자리에서 김 의장은 최근 국회에서 미디어 관련법이 처리된 이후 ‘야당 국회의원들이 의사당을 떠나 장외집회를 이어가고 있다’면서 몹시 불편한 심기를 내비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누구도 이를 막지 않았고 못하게 하지도 않았다’면서 현 정부를 ‘독재’라고 하고 ‘민주주의가 죽었다’고 하면서 집회하는 사람들을 못마땅하게 여겼다고 한다. 김 의장은 한 술 더 떠 ‘야당의 주장이 언론을 통해 100퍼센트 전달된다는 점에서 한국이 이란과 다르다’고도 하기까지 했다. 과연 맞는 말일까?
미디어 악법이 다수당인 집권여당의 강압적 횡포로 날치기 처리되었다는 사실을 과연 에바디 변호사는 듣지 못했을까? 수천 명의 경찰병력을 동원해 시민의 집회를 원천봉쇄하며 헌법에서도 보장된 집회·결사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한국의 인권유린상황을 접하지 못했을까? 평화적 일인시위를 통해 직접 국민들을 상대로 미디어 악법 날치기 처리를 폭로하며 정부여당의 횡포를 비판하는 야당 국회의원들을 경찰병력이 둘러싸고 밀착 포위해 숨 막히도록 탄압하는 한국의 인권상황을 에바디 변호사는 전해 듣지 못했을까? 일부 극소수 깨어있는 언론들을 제외하곤 대부분의 보수족벌신문들과 ‘어느새 길들여진’ 방송들이 야당의 이유 있는 항변을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는 사실을 정말 에바디 변호사는 못 들었을까?
‘한국과 같이 언론의 자유가 있는 사회에서 산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라며 ‘말할 수 있는 자유는 민주주의로 가는 첫 여정’이라고 에바디 변호사는 말하지만 왠지 그 말은 마치 현재 우리나라의 비민주적 사회상황에 울리는 경종을 은유하는 것만 같아 적지 않은 것들을 생각게 한다.
만신창이가 되었던 한국 언론과 인권 회복을 위해 지난 수 십 년 동안 목숨까지 바쳐가며 투쟁하고 지켜온 이 땅의 선구자들을 생각한다면 일국의 입법부 수장인 국회의장으로서, 그것도 노벨평화상 수상자 앞에서 그런 식의 정략적 발언은 하지 말았어야 옳았다. 귀한 손님과의 넉넉지 않은 예방시간에 야당 의원들을 비판하고 왜곡적 언론보도행태를 두둔하기보다는 오히려 이란과 한국의 정치 인권 언론 등의 상황에 대해 좀 더 진솔하고 현실적인 이야기를 나누면서 진정한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이해를 공감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