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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르트르와 서정주

|contsmark0|현재는 파리제4대학이라고 불리지만 외국인들에게는 소르본느 대학이라고 해야 더 익숙한 파리 최고의 상아탑은 세느강 남쪽 생 미셸거리에 있다. 이 젊음과 낭만의 거리 생 미셸에는 소르본느 대학외에 유명한 것이 하나 더 있으니 바로 팡테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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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5|그리이스어로 사원을 뜻하는 pantheon! 이 우람한 석조건물의 지하에는 프랑스를 빛낸 볼테르, 루소, 빅토르 위고, 에밀 졸라, 마리 퀴리 부부 등 모두 80명의 대리석 관이 있다. 그렇다고 이 팡테온이 프랑스의 국립묘지냐 하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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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8|프랑스에는 미국의 알링톤이나 한국의 동작동 같은 국립묘지가 없다. 외국의 국가원수가 프랑스를 방문하여 헌화를 하는 곳은 샹젤리제 개선문 아래에 있는 무명용사의 횃불이다. 그렇다면 이 팡테온에는 누가 묻히는가? 물론 프랑스를 빛낸 위인이 묻힌다. 그런데 이 팡테온에는 정치인 출신이 없다. 2차대전의 영웅 드골 대통령도, 얼마전에 타계한 레지스탕스 출신 미테랑 대통령도 각자 그들 고향 교회에 있는 공동묘지에 묻혀있다. 팡테온측은 정치인을 배제하는 이유를 꼭 집어서 말하지는 않지만 “정치인은 시대에 따라 평가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게 파리지엥들의 얘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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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11|팡테온에는 프랑스 지성을 이끈 철학자나 문인 또는 인류발전에 현저한 공을 세운 과학자들이 주로 묻힌다. 가장 최근에 묻힌 사람이 바로 드골 대통령 당시 문화부장관을 지낸 작가 앙드레 말로로서 그는 5년전에 그의 고향 묘지에서 팡테온으로 유해가 옮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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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14|그 당시 기록을 보면 쟈크 시락 대통령 등 3부요인이 참석한 가운데 최고의 존엄과 경의로서 정중하고도 화려하게 식을 올렸음을 알 수 있다. 프랑스가 문화의 나라라는 소리를 듣는 이유를 팡테온 하나만 봐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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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17|프랑스에 비해 한국은 어떤가? 20세기가 저물어 가는 지난 연말에 한국에선 詩의 政府라 일컬어지는 미당 서정주가 타계했다. 미당을 빼고 한국의 근대시가 존재하지 않음은 모두가 동의할 것이다. 그리고 한국인 중에 ‘국화 옆에서’ 한 귀절을 모르는 자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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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20|그런데 한국은 미당을 너무 조용히 보냈다. 마치 미당이 오래전부터 한국에 없었던 것처럼 보내고 말았다.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의 텔레비전에서 한국과 관련해 즐겨 내보내는 화면이 경찰과 시위대가 맞선채 화염병과 최루탄이 난무하는 그림이다. 가끔 특파원들이 “한국에는 좋은 소식도 많은데 왜 한국관련 보도는 시위모습이 주종을 이루느냐”고 항의하면 이들 방송사들은 “이토록 수많은 사람이 질서정연하게 시위하는 이런 그림은 다른 나라에선 볼 수 없는 마치 전쟁터같은 그림이라 자주 내보낸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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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23|만약 이럴 때 “수십만의 한국인들이 종로거리를 꽉 메웠으며, 그들은 머리 위에 수천개의 깃발(만장)을 든채 시내행진을 하였다. 그런데 이번 행렬은 통상 한국에서 보았던 시위모습이 아니라 어느 뛰어난 시인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운구차를 뒤따른 행렬이었다”라는 보도가 나왔으면 얼마나 좋았으랴. 그렇다면 외국언론들도 한국에 어느 시인이 있길래 그토록 많은 시민이 몰렸을까하고 관심을 가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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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26|서정주의 너무도 쓸쓸한 장례를 보면서 사르트르의 장례모습이 떠오른다. 미당보다 20년 먼저 타계한 사르트르의 경우, 장례행렬이 파리시내를 한 바퀴 돌았으며 그 뒤로 수십만의 추모인파가 따랐다. 프랑스인들이 지성에 대한 존경을 표시함과 함께 문화대국 프랑스의 힘을 만방에 보여준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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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29|그런데 사르트르의 운구차로 파리시내를 한 바퀴 돌자는 계획을 낸 것은 프랑스 문화부로 알려져 있다. 시내행진 허가도 받아야 하고, 교통도 통제해야 하고, 시간대별 거리도 알리고, 경찰의 호위도 받으려면 이런 계획은 아무래도 정부의 능동적인 자세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이번 미당의 타계를 맞아 대한민국 문화부는 ‘시내행진’이라는 생각을 못 한 건지, 생각은 했는데 실행을 못 한 건지 여하튼 크나큰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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