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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따져보기] 이문원 〈미디어워치〉 편집장 대행

한국 드라마계 ‘미다스의 손’으로 거듭나고 있는 그룹에이트 송병준 대표가 차기작을 발표했다. 타다 카오루의 일본만화 〈장난스런 키스〉의 드라마화다. 이미 원작 구매는 마쳤고, 구체적인 기획에 들어가 내년 여름 편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송병준 대표는 한국 드라마 제작자 중 몇 안 되는, 이른바 ‘시장 비전을 지닌’ 인물이다. 〈궁〉, 〈꽃보다 남자〉에서 다시 〈장난스런 키스〉까지, 이미 사멸된 것으로 여겨졌던 청소년 로맨스 드라마 시장을 정착시키려 애쓰고 있다. 그런 점에서 송 대표는 한국 드라마계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하나다. 젊은 층 재흡수로 시장 부활을 노리는 한국 드라마 시장에서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러나 송병준 대표의 디테일한 방향성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해볼 만하다. 송 대표는 〈장난스런 키스〉를 언급하며 “대만에서 드라마로 제작된”이라는 설명을 잊지 않는다. 일본만화 원작이라는 데 따르는 따가운 시선을 피해, ‘아시아 공통 히트 아이템’이라는 인식을 주고 있다. 물론 그 점이 중요하긴 하다. 전작 〈꽃보다 남자〉도 ‘아시아 공통 히트 아이템’이라는 데 힘입어 각국에서 큰 호응을 얻어낸 바 있다.

그러나 바로 그 “대만에서 드라마로 제작된”을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꽃보다 남자〉도 대만에서 먼저 드라마로 제작됐었다. 대만 드라마화가 본국인 일본보다도 빨랐다. 돌아보면, 대만 드라마계는 ‘일본만화 원작’의 천국에 가깝다. 무엇이건, 일본에서 히트한 만화라면 무조건 드라마화 된다. 순정만화 경우에는 더 심하다. 대만 드라마계 전체가 일본만화에 종속된 형태다.

그렇다면 그들의 ‘일본만화 원작’ 드라마는 과연 ‘아시아 공통 히트 아이템’으로서 아시아로 퍼져나갈 수 있었을까. 그렇지도 않다. 〈꽃보다 남자〉 정도만 아이돌 그룹 ‘F4’ 열풍을 타고 히트했다. 나머지는 제대로 소개조차 받지 못했다. 결국 일본만화 원작 드라마라는 사실 자체로 ‘아시아 공통 히트 아이템’은 안 된다는 이야기다. 그 중 한국판이 아시아로 나간 것은 ‘한류’라는 기본 신뢰도를 바탕으로 한 층계식 문화전달에 불과했다.

이쯤에선 송병준 대표도 생각을 달리해 봐야한다. 대만에 콘텐츠를 파는 게 주목적이 아니라면, 굳이 일본만화에 의존할 이유가 없다. 시장 안착 과정인 지금은 그 정도 화제성에라도 일단 기댈 필요가 있겠지만, 향후는 달라야 한다. 그런 식으로 가다간 일본만화의 아시아 문화 선도성만 강조시킬 뿐이다. 결국 대만처럼 일본만화 종속현상에 놓이게 된다.

〈궁〉처럼 한국 순정만화를 건져 올릴 필요가 있다. 그러면 드라마와 만화의 2중 문화전파도 낳을 수 있다. 나아가 오리지널 아이템을 개발할 필요도 있다. 〈꽃보다 남자〉는 사실상 〈대장금〉 이후 최고의 한류 드라마였다. 일단 불이 붙었으면, 그 다음부턴 차별화로 가야한다. ‘한국에서만 나올 수 있는’ 청소년 로맨스가 돼야한다.

▲ 이문원 〈미디어워치〉 편집장대행

아직 시작단계에 주문이 많은 듯 보이긴 하겠지만, 여러 가지 면에서 시장은 처음에 잘 길들여 놓는 게 좋다. 안일한 공식이 계속 적용되면 나중엔 그 프레임에서 빠져나오질 못한다. ‘일본만화 원작 청소년 드라마’ 제작자가 아니라, ‘청소년 드라마 시장 개척자’로 거듭나야만, 송 대표 자신에게도 한국 드라마계 전체에도 모두 도움이 된다.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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