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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정태인 경제평론가

2006년 늦은 봄부터 우리나라 구석구석을 참 많이도 돌아다녔다. 한미 FTA, 세계금융위기, 그리고 이명박 정부가 초래할 경제사회적 위기 탓에 지난 3년간 강연, 토론, 짧은 길거리 연설까지 합치면 1000회를 훌쩍 넘겼을 것이다. 이런 저런 상황에서 얘기를 끌어가기 위해서는 한두 가지의 우스갯소리는 필수적인데, 초창기에 주로 써먹었던 얘긴 “광우병에 걸리지 않는 두 가지 비책”이었다. 첫째는 쇠고기를 요리할 때 양잿물을 쓰라는 것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광우병을 일으키는 변형 프리온을 제거하는 방법은 두 가지밖에 없다. 완전히 태워 없애거나 양잿물로 녹이는 것이다. 또 하나의 비법은 한미 FTA에 반대하는 정치인을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으로 뽑는 방법이다. “어느 쪽이 나을까요?”

안타깝게도 한미 FTA 반대에 적극적이었던 수도권 의원들은 대부분 지못미 의원이 되어 버렸고 국민들이 뽑은 신임 대통령은 한술 더 떠서 내장, 그리고 기계로 뜯어낸 조각고기(이른바 선진회수육)까지 수입하는 데 합의했으니 두 번째 비법은 수포로 돌아갔다. 하지만 첫째 비법은 순도 100%의 농담이었다. “미국산 쇠고기를 먹으려면 양잿물과 같이 먹어라”는 충고가 아닌가? “미국산 쇠고기를 먹느니 청산가리를 먹겠다”는 배우 김민선 씨의 이야기가 무엇이 다를까?

▲ 배우 김민선 ⓒMBC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는 에이미트(American Meat?)라는 회사가 MBC <PD수첩>과 김민선 씨에게 소송을 걸었다. 이들이 대규모 촛불집회의 도화선이 됐고 그에 따라 막대한 금전적 손해를 봤다는 것이다. 논리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 에이미트의 변호사는 촛불집회 때문에 미국산 쇠고기 판매가 줄어들었고, 또 <PD수첩>과 김민선 씨가 도화선이 되었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

그러니 염려 말라고 격려의 말을 하고 싶지만, 문제는 이런 논리에 있는 게 아니라는 데 있다. 진심으로 뉘우쳐야 할 농림부장관이 적반하장으로 <PD수첩>을 고소하고 어느 순간부터 법정 공방이 우리의 사고를 사로잡았다. 여권 정치인이나 우파의 논객들이 촛불집회를 <PD수첩>에 속은 시민들의 광기였다며 툭하면 건드리고 심지어 중립을 표방하는 지식인들까지 광우병에 대한 우려가 최소한 과장되었다는 ‘성찰’을 내놓고 있으니 이런 분위기가 이 말도 안 되는 소송을 부추겼을 것이다.

문제는 광우병에 관한 과학적 사실이다. 과학자들이 합의하는 것은 광우병이 동물성 사료에서 비롯됐으며 걸리면 100% 죽는다는 사실 정도이다. 모든 동물성 단백질을 사료로 사용하지 못하게 한 영국의 3단계 조치가 취해진 다음에야 광우병 소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이고 사람의 유전자형에 따라 광우병에 걸릴 확률이 높을 수 있다는 것은 여전히 증명을 필요로 하는 이론적 가설이다. 이렇게 찬반의 의견이 팽팽할 때, 특히 건강과 환경 분야에서 우리가 취해야 할 정책 방향은 ‘사전예방의 원칙’이다. 잘 모르면 일단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정부의 정책도 다르지 않았다. 인간 광우병이 발생했을 때 영국에서 살았던 우리 가족이 헌혈을 할 수 없는 것도 다 이 원칙에 따른 것이다.

그런데 왜 갑자기 오로지 미국 축산업자의 이익(그리고 에이미트와 같은 수입업자)을 위해서 이 원칙을 포기해야 하는 것일까? ‘사전예방의 원칙’이 왜 미국판 자유무역의 원리인 ‘사전 증명의 원칙’에 무릎을 꿇어야 하는가, 즉 당연한 정책 원리가 왜 이윤의 법칙에 종속돼야 하는지가 여전히 따져 보아야 할 문제인 것이다.

▲ 정태인 경제평론가·성공회대 겸임교수 
한미 FTA 때부터 한 무리의 지식인들이 <PD수첩>에 조언을 했고 나름 최선의 진실(정부가 말하는 괴담)을 ‘유포’했다. 한미 FTA 전문가위원회, 그리고 광우병 대책위 전문가위원회에 속한 박상표 국장, 우석균 실장, 우희종 교수, 그리고 내가 그렇다. 애꿎은 <PD수첩>이나 김민선씨는 이제 그만 괴롭히고 에이미트는 우리들에게 소송을 제기하기 바란다. 그것이 에이미트의 박창규 회장이 마녀사냥의 광기에서 벗어나 진실의 촛불을 보는 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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