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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진의 언니가 간다]

한국 현대사의 큰 별이 졌다. 그가 누군지는 다들 말 안 해도 알 것이다. 다들 큰 별에 대해서 말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 대세를 살짝 거슬러 작은 별들에 대해 말하려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죽인 건 결국 고독이 아니었나 싶은데 입장은 달라도 누구에게나 고독은 평등한 것일까, 평택 쌍용차 공장 앞을 무겁게 채우고 있던 것도 무덥고 무겁고 쓰라린 고독이었다, 누구 하나 할 것 없이.

시커먼 차단막에 가로막혀 잘 보이지도 않는 공장 쪽을 향해 안타깝게 손을 흔드는 해고자 가족들 두어 명의 연두색 티셔츠가 순식간에 곤색 경찰 제복으로 뒤덮여서 그나마도 안 보이게 되는 광경도 서럽고, 가대위(가족대책위) 천막 쪽에 가서 놀자, 라는 말을 익숙하게 발음하며 뛰어가는 꼬마 여자아이와 왼손에는 마이크, 오른손에는 과자 봉지 든 엄마가 발언하는 동안 찰싹 매달려 엄마 손에 든 봉지 안에 연신 손을 넣어 뒤지는 서너 살 된 아들네미도 귀엽지만 애잔하고, 국회의원이고 뭐고 금배지를 달면 뭘 한단 말인가, 카랑카랑하게 소리쳐 보아도 일시에 끌려가서 호송 버스 안에 순식간에 사라지는 이정희 의원의 모습도 서럽고, 그보다 먼저 사지를 들려 “우리 의원님 의정활동 하시는데!”하고 끝까지 외치면서 버스에 태워진 보좌관들도 쓸쓸하고…. 죄다 쓸쓸하다, 울고 싶을 만큼.

이 세상의 모든 일들이, 아주 단순무식한 필터를 통해 거르면 결국 ‘외로워서’, ‘먹고 살려고’, 딱 두 가지로 나뉘는 것만 같다. 쌍용차 공장 앞에서는 왜 이리 외로운 풍경만 눈에 들어오는지, ‘정상조업’이라고 쓴 완장을 찬 비해고 노동자들이 언론에 보인 적대적 태도도 아마 외로워서, 일지도 모르겠다. 아무도 내 편 안 들어주고 내 마음은 아무도 모른다, 저 놈들 내 편 아니야, 하는 그 마음이 칼라TV 자동차 같은 건 성나서 마구 두들겨 부수게 한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 2009년 8월 6일 <경향신문> 종합 01면
농성 마지막 날 그래도 그들은 승리감에 가득 차 있었다. 그늘에 앉아 있거나 몽둥이를 하나씩 들고 서 있다가 지나가는 사람도 다 붙잡고 이리로 못 다닌다고 윽박지른다. 연한 회색 회사 점퍼에는 선명한 붉은 피가 묻어 있어서 저도 모르게 움찔, 하게 된다. 저게 누구 피일까. “왜 못 다니게 해요? 경찰이세요?” 하고 묻자 아저씨는 머쓱하게 물러선다. 언제나 괴물과 싸우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기가 가장 힘들다. 다 진심일 테다. 먹고 살고 싶은데 ‘외부 세력’이 방해하는 게 진심으로 싫고 ‘정상조업’ 이뤄내어 빨리 일해서 얼른 집에 월급도 갖다 주고 싶은 게 아마 사람다운 진심일 테다.

쌍용차 공장 주변을 한 시간쯤 돌아다녀 봐도 밀려난 연대 대오는 어디에도 없고, 바닥에는 크고 작은 벽돌 조각만 무섭게 무성하다. 얼마간의 간격을 두고 보이는 사람이라곤 죄다 구사대 아니면 경찰만 있고 매미 소리만 들린다. 공장이 보이는 건물의 양철 지붕 위는 팔딱팔딱 뛰도록 무섭게 달아올라 있어서 조심해서 앉아야 한다.

▲ 김현진/ 에세이스트
거기 털썩 주저앉아 ‘대화를 안 할려면 차라리 다 죽여라’라고 쓴 공장 쪽을 멍하니 바라본다. 외로워서, 먹고 살려고, 하는 두 가지 큰 숙제는 저 안에서 너무나 처절하다. 마실 물도 없고 자꾸 떠나가는 사람들 보내면서 견뎌내는 저 안은 얼마나 뜨겁고 지겹게 외로울까. 이겼다고 말할 수 없는 싸움 싸우고 나온 사람들 중에 조사 받던 중 누가 자살을 기도해서 중환자실에 누웠다.

흔히 죽을 힘으로 살라는 말 지겹도록 하지만 정말 죽을 힘밖에 안 남았을 때 있던 고독은 훨씬 더 처절하게 진해진다. 긴 싸움 싸우고 죽을 힘밖에 안 남은 그 고독이 무섭고 슬프다. 벌써 여럿이 세상을 등졌다. 누군가 같이 감당하지 않는다면, 이 끝없는 고독을 어쩔 것인가. 게다가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끝없이 증식할 텐데. 큰 진보할 방법은 모르겠다, 다만 이런 고독을 조금씩이라도 같이 지워 나가려면 대체 어쩌면 좋을까, 대체 어떻게. 쌍용은 여전히 슬프고 고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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