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CG 눈치 못 채면 희열 느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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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CG 눈치 못 채면 희열 느끼죠”
[인터뷰] MBC 특수영상제작실 기정모
  • 김고은 기자
  • 승인 2009.08.25 16: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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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 천장에 거꾸로 매달린 귀신, 목이 돌아가는 귀신….

MBC가 〈거미〉 이후 14년 만에 선보인 납량특집 미니시리즈 〈혼〉(극본 고은님·인은아, 연출 김상호·강대선)이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빙의’를 소재로 한 〈혼〉은 TV 드라마로는 드물게 서늘한 공포를 선사하며 뜨거운 화제를 모으고 있다. 공포와 스릴러를 넘나드는 스토리, 배우들의 연기와 연출도 뛰어나지만, 공포효과를 배가시키는 영상이 특히 시선을 끈다.

압권은 부회장 자살 장면이었다. 주인공 하나(임주은)가 다니는 예술고등학교의 부회장이 옥상에서 바이올린을 켜다가 뛰어내린다. 투신하던 부회장이 하나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화면이 멈춘다. 머리카락 한올한올 날리는 장면까지도 섬세하게 포착해낸 이 장면은 시청자들의 시선을 단박에 사로잡으며 첫 회 시청률 12.6%(TNS미디어코리아, 수도권 기준)라는 준수한 성적을 거두는데 한 몫 했다.  

▲ 드라마 '혼'의 특수영상을 담당하는 MBC 특수영상제작실의 기정모씨. 오른쪽 모니터에 보이는 화면이 부회장 투신 장면. ⓒPD저널
화제의 장면 뒤에는 MBC 특수영상제작실이 있었다. 팀원 4명에 불과한 이들은 초당 300~500프레임을 찍는 고속카메라와 하루 대여료만 수백만 원을 호가한다는 모션컨트롤카메라 등 첨단장비들을 동원해 기존 드라마에서 볼 수 없던 장면을 창조해냈다. 스태프와 배우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대본을 3D애니메이션으로 시뮬레이션 하는 ‘프리비주얼’ 작업도 드물게 이뤄졌다. 단 한 장면이지만 준비기간도 길었다. 〈혼〉의 공포를 책임지는 특수영상제작실의 기정모씨는 “빙의의 단초를 제공하는 장면이라 3주 정도를 준비했다”고 말했다.  

그의 손길이 닿은 장면은 비단 이뿐만이 아니다. 창밖의 야경, 움직이는 지하철 등 눈치 채지 못한 장면들이 컴퓨터그래픽(CG)을 거쳐 탄생했다. 드라마의 전체 맥락을 위해선 없던 교회 십자가를 만드는 것도 그의 역할이다. 기씨는 “CG는 드라마의 몰입도를 해치지 않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오히려 기억나지 않는 특수영상이 낫다”면서도 “사람들이 나중에야 CG였다는 걸 알게 되면 속인 것 같다고 할까? 재미있는 희열을 느낀다”고 말한다.

그의 작업은 단순히 컴퓨터 앞에서만 이뤄지지 않는다. 뛰어난 특수영상을 위해 선행돼야 할 것은 연출과의 꾸준한 대화다. 그가 떠올리는 생각과 PD가 생각하는 영상에 극복할 수 없는 차이가 발생한다면, 훌륭한 효과는 기대할 수 없다. 그래서 스태프 회의에서도 PD와 대화하고, 현장 코디네이팅을 하지 못할 때에도 전화 통화로 계속 해서 아이디어를 주고받는다. 대본 해석 능력도 필수다. 그는 “제작마인드가 중요하다”며 특수영상은 “공학도와 미술도의 딱 중간”이라고 말한다.  

▲ MBC 납량특집 미니시리즈 '혼' ⓒMBC
2000년 MBC에 입사한 그는 예능프로그램과 쇼를 시작으로 〈다모〉와 〈환상의 커플〉 등을 거쳐 지금은 〈혼〉은 물론, 아침·저녁 일일연속극, 〈무한도전〉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작업하고 있다. 그는 “다 아이디어가 필요한 일이다. 장르도 다르고 거기에 맞춰 다 만족할만한 결과물을 내야 한다. 밤새는 일도 많고, 어렵다”면서도 “재미있게 일하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시청자들의 눈은 계속 높아져 열심히 해놓고 욕먹는 경우도 있다. 드라마의 경우 대본이 늦게 나오고 시간에 쫓겨 촬영하다 보면 CG 작업에도 많은 시간을 들일 수 없다. 어쩔 수 없이 방송시간에 맞춰 그 만큼의 퀄리티를 내야 한다. 당연히 완벽에 대한 쉬움이 있다. 하지만 적은 인력과 예산, 시간은 한계다.

“CG는 시간과 돈이 좌우한다. 영화 〈트랜스포머〉는 CG를 담당하는 인력만 MBC보다 규모가 더 크다. 몇 백 명이 한 장면을 위해 작업하는 반면, 우리는 한 사람이 여러 장면을 작업해야 한다. 퀄리티 차이가 당연히 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한계를 알기 때문에 시간이나 인력, 돈이 욕심나도 할 수 없다.”

적은 예산과 인력은 한계지만, 곧 가능성이기도 하다. 1994년 〈M〉은 당시 초라했던 CG 기술을 한 단계 발전시키며 엄청난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M〉을 계기로 MBC 특수영상제작실의 기틀이 잡혔듯이 〈혼〉 역시 방송기술 발전의 또 하나의 디딤돌이 될 수 있을까.

“기존의 드라마는 특수영상이 아닌 것처럼 보여야 했는데 공포물인 〈혼〉에선 마음껏 시도해볼 수 있다. 그래서 재미도 있고, 욕심도 더 난다. 하지만 정답은 자연스러운 비주얼이다. 우리 기술 수준은 많이 올라왔다. 그러다보면 언젠가는 우리도 〈트랜스포머〉 같은 드라마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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