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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일 칼럼

지난 10년이 주는 교훈이 있다면 l승인1997.06.12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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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항쟁이 불길처럼 일어난 지 10년이 흘렀다. 4·19 이후 국민의 힘으로 잘못된 정치권력을 응징한 유일한 사건임으로 해서, 그리고 4·19처럼 좌절되지는 않은 현재진행형의 6월임으로 해서, 철 들고 나서 1987년을 맞이한 세대들에게 6월항쟁은 분명 남다른 경험으로 남아 있다. 10년이 지난 지금, 모두들 나이의 앞자리수가 하나씩 많아져 당시의 대학생들은 어엿한 중견 직업인으로, 당시의 젊은 직장인들은 대개 중간간부의 대열에 들어서 있을 터이다. 바야흐로 6월항쟁이 세대 구분의 새로운 기준으로 정립될 즈음의 지금, 구세대가 물러나고 그만큼 새로운 세대가 자리를 메운 이 10년 동안, 세상은 어떻게 얼마나 변했고, 또 변하지 않았는가?어쩔 수 없이 이 시대의 화두가 되어 있는 정치상황으로부터 10년간의 변화를 가늠해 보자. ‘호헌철폐’로 체육관선거에서 대통령직선제로 바뀌었고, 야당 지도자가 ‘구국의 변절’을 하는 희한한 과정을 거쳤을지언정 쿠데타의 주모자가 아닌 민간출신으로 대통령이 바뀌었다. 그리고 쿠데타의 주역들과 대통령의 아들이 같은 시기에 감옥에 들어가 있는 희극적 상황 속에서 사상 최초로 여당후보가 경선을 벌이고 있다. 그러고 보니 과연 지난 10년간 큰 변화가 이루어진 듯도 하다. 그러면, 다른 분야는 어떠한가? 경제적 불평등은 얼마나 해소되었는가? 노동자들이 파업을 해야 하는 상황은 줄어들었는가? 금융실명제는 정착되었는가? 교사들의 단결권을 허용하지 않는 동안에 교육은 백년대계로 올바로 나아가고 있는가? 범죄는 줄어들고 환경은 개선되었는가? 부실공사는 사라졌는가? 그리고, 우리의 방송법은 올바른 방향으로 개정되고 있는가? 각각의 느낌과 판단이 다를 터이지만, 종합적으로 보건대 결코 크게 나아진 바가 없다는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새삼스럽게 ‘사람’이란 소재에 주목해 본다. 수많은 사건으로 수많은 범죄자들이 처리되었음에도, 큼직큼직한 비리사건의 주인공들은 끊임없이 등장한다. 아무리 그럴 듯한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 놓아도 교묘히 빠져나가 범죄를 저지르는 머리 좋은 사람들로, ‘한국사람들은 머리가 너무좋아서 탈’이라며 쓴웃음을 짓지 않을 수 없다. 구시대의 악명 높던 몇 사람만 퇴장시키면 될 것 같다는 생각도 환상이었을 뿐, 어찌된 일인지 악명 높은 인물들은 대를 이어 나타나고, 구시대의 청산을 부르짖던 세대 속에서도 그와 엇비슷한 인물들이 등장하는 것을 어렵지 않게 목도한다.그래서,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세상은 지극히 보수적인 재생산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명제는 나에게는 참이다. 잘못된 세상은 잘못된 사람을 낳고 그 사람은 다시 잘못된 세상을 지탱한다는 말이다. 아무리 해도 좀처럼 바뀌지 않는 세상이 하도 이상해서 나는 때때로 주변 사람들에게 ‘세상에는 좋은 사람이 더 많을까 나쁜 사람이 더 많을까?’ 하고 묻곤 한다. ‘왜 그렇게 나쁜 놈들이 많을까?’라고 묻던 예전에 비하면 인간 선악의 기준을 대폭 비관적인 쪽으로 조정한 셈인데, 그래 놓으니 흥분할 일이 좀 적어진다. 나이가 들면 얼굴에 표정이 없어진다는 사실을 가슴 시리게 체험하고 있는 셈이다.그러면, 그것으로 그만인가? 너무 무책임하지 않은가? 그렇다. 그래서 내 나름대로의 대안이 있다면, 그것은 ‘포기하지 말고 길게 보자’는 것이다. 철 들고 나서 늙어지기까지 30년이면 결코 짧은 세월은 아니다. 적어도 수십 년을 내려온 해묵은 시대적 과제들이 자기 당대에 해결될 것으로 믿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당대에 무엇인가를 확실히 결론짓고자 하면 할수록 마음이 조급해지고 실망하게 되고 드디어는 포기하게 된다. 포기는 변절로 이어진다. 인간의 정신세계에서 변절처럼 저열한 것은 없다. 나 하나하나가 쉽게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저열한 인간들의 수는 줄어들지 않겠는가.다시 10년 뒤, ‘헛살았다’는 결론에 이르지 않을 자신만 있으면 되리라. 잠시 고향에 계신 부모님과 그분들의 세월을 돌이켜 보고, 다시 잠자는 아이의 얼굴과 그의 미래를 생각해 보는 것으로, 나는 10년의 의미를 간직한 채 물처럼 흘러가는 6월을 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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