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이병순 사장의 연임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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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이병순 사장의 연임 조건
[이희용의 주간미디어리뷰]
  • 이희용 연합뉴스 미디어전략팀장
  • 승인 2009.09.08 18: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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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희용 연합뉴스 미디어전략팀장
지난해 8월 정연주 사장의 뒤를 이어 KBS 수장으로 취임한 이병순 사장이 1년 3개월짜리 보궐 사장으로 끝나느냐, 연임 가도에 들어서느냐 기로에 서 있는 듯합니다. 이 사장의 임기 만료일은 11월 23일이지만 KBS의 새 이사회 구성 직후 부사장과 본부장 교체에 나섰다가 이사회로부터 제동이 걸리면서 벌써부터 연임 여부를 두고 논란이 벌어지고 있지요.

당초 이 사장은 예정됐던 '구원투수'가 아니었지요. 정 사장의 '강제 강판' 과정에서 비난 여론이 일고 YTN 노조의 낙하산 사장 반대 투쟁이 거세지자 가장 유력한 김인규 후보가 스스로 사장 공모에 응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면서 긴급히 대체 투입된 선수였습니다. 그것도 방송통신위원장이 KBS 차기 사장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청와대 비서실장과 예상 후보 등을 불러 모은 자리가 언론에 알려지면서 몸도 제대로 풀기 전에 누구 대신 등판했다는 소문이 파다했지요.

이런 저간의 사정으로 미뤄볼 때 당시 이 사장은 '원 포인트 릴리프 투수'에 그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습니다. 1년 3개월여의 임기를 마치고 나면 '롱 릴리프 투수'에게 마운드를 넘겨주고 그가 이명박 정권 말기까지 거의 임기를 같이 하면서 마무리 역할을 해줄 것으로 추측됐지요.

그러나 한번 믿고 맡기면 잘 바꾸지 않는 'MB식' 인사 스타일 때문인지, 그런 대로 KBS를 안정화시켰다는 평판을 여권으로부터 듣고 있기 때문인지 새로운 구원투수 후보는 좀처럼 부상하지 않았습니다. 반면 이 사장은 제작비 절감 등을 독려해 적자를 흑자로 돌려놓은 데 이어 수신료 인상이라는 KBS의 오랜 숙원을 해결하겠다고 나섰지요.

KBS 부사장 두 명의 사표를 수리하고 본부장 6명의 일괄사표를 받은 것도 연임을 위해 친정체제를 강화하려는 포석으로 비쳐졌습니다. 이 사장 취임 당시에는 그가 모든 인사를 관장할 분위기가 아니었으나 이제는 조직을 어느 정도 장악했다는 자신감의 발로가 아니었겠느냐는 해석도 뒤따랐지요.

단체협약에 따른 본부장 신임 투표가 이번 달 중순으로 예정돼 있어 불신임 표가 많이 나올까봐 서둘러 사표를 받은 것이라는 의혹도 제기됐습니다. 후임 부사장 후보로 내세운 이가 기술본부장 출신이어서 이 사장이 현재 조합원 중 가장 다수이고 노조위원장도 배출한 기술직 사원들을 향해 구애의 손짓을 한 것 아니냐고 보는 시각도 있지요.

▲ 이병순 KBS 사장 ⓒKBS
이 사장은 KBS 이사회에서 "퇴직금 누진제 폐지에 따른 보수규정 개정안이 이사회를 통과하지 못한 것에 대해 담당 부사장이 책임을 지고 물러났고 금품수수 사건과 수리부엉이 연출 조작 등 최근 불미스러운 일이 있어 다른 부사장도 사표를 제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부사장 교체라는 승부구는 이사회의 견제 때문에 통하지 않았습니다. 9월 4일 KBS 이사회가 김영해 부사장 후보의 임명동의안을 사실상 만장일치로 부결시킨 것이지요.

KBS 이사회 대변인인 고영신 이사는 "첫째 이병순 사장의 임기가 2개월 20일가량 남았는데 부사장을 새로 임명하는 건 시기적으로 부적절하고, 새 이사진이 임기를 시작한지 3∼4일밖에 안돼 업무현황을 파악하지 못한 상황이며, 오늘 아침에야 부사장 임명동의안을 제출받아 인사가 적절한지를 검증할 만한 시간이 촉박했다"고 설명했습니다.

KBS 이사들이 사장의 경영권을 존중해 부사장 임명동의안을 부결시킨 전례가 거의 없었던 점을 떠올리면 이 사장의 연임 가도에 빨간불이 켜진 것이라고 풀이할 만합니다. 노동조합이나 사원행동 모두 이번 일을 두고 이 사장을 거세게 비난하고 있지요.

물론 이 사장에게는 아직 등판 기회가 남아 있습니다. 수신료 인상안을 담은 공영방송법 제정을 이뤄내면 KBS 안팎의 여론이 달라질 수도 있고, 여권에서도 마땅한 구원투수가 없는 터에 "한 번 더 맡겨보자"는 목소리가 힘을 얻을지도 모르지요.

그러나 미디어 관련법 개정의 유효 여부 등을 놓고 정기국회에서 한바탕 격돌이 예상되는 터에 공영방송법 제정안이, 아니면 수신료 인상안만이라 해도 이 사장 임기 안에 통과될 가능성은 극히 희박해 보입니다(수신료 인상도 국회의 동의가 필요합니다). 또 공영방송법이 통과되면 KBS 사장과 이사들의 임기가 단축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저마다 복잡한 계산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지요.

그러나 이 사장의 의지는 확고해 보입니다. 방송의 날 기념 월례조회에서 "KBS가 공영방송으로서 제대로 된 방송을 하기 위해서는 수신료 현실화를 통한 재원의 안정성 확보가 필수적"이라며 "수신료 현실화는 결코 쉬운 과제가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경영 개선을 통해 확인했듯이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바탕으로 전사원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한다면 수신료 현실화에 대한 국민과 시청자의 공감과 동의를 반드시 얻어낼 수 있다고 확신한다"고 강조했습니다.

KBS 1TV '생방송 심야토론'은 방송의 날 주간을 맞아 9월 5일 '공영방송, 새로운 미래는?'이란 주제로 토론을 펼쳤습니다. 맨 마지막 쟁점은 수신료 현실화였는데 패널로 참석한 언론학 교수 4명 모두 수신료 인상의 당위성을 강조했지요. 윤석민 서울대 교수와 강형철 숙명여대 교수는 "수신료 문제의 당사자인 KBS가 주최한 토론회에서 이런 말씀을 드린다는 게 적절치 않아 보이지만…"이라는 단서를 달더군요.

특히 윤 교수는 "여야가 바뀌면 수신료 인상에 대한 입장을 바꿔 공방을 벌이는 정쟁을 중단하자"고 제안했는데, 말이야 백번 옳지만 정연주 사장 시절 야권이 그랬듯이 지금의 야권도 편파 방송에 따른 신뢰도 추락 때문에 수신료를 인상해줄 수 없다고 말할 것이 뻔합니다.

더욱이 지금은 새로 생겨날 종합편성 채널의 광고를 확보해주기 위해 여권이 수신료를 올려주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까지 제기되고 있거든요. 몇 해 전 수신료 인상에 찬성했던 언론운동진영 사이에서는 "KBS가 공영방송으로서의 역할을 다하지 못해 수신료 거부운동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마당에 이병순 사장의 연임을 도와주기 위해 수신료 인상에 협조할 까닭이 있느냐"는 반응이 주류를 이루는 듯합니다. 정연주 사장이 밉다고 당시 야권이 수신료 인상을 반대하는 것과 비슷하지요.

8일 오후에는 KBBS가 '디지털 전환과 공적 서비스 확대를 위한 텔레비전 방송 수신료 현실화에 관한 공청회'를 개최합니다. 최현철 차기 언론학회장과 임창건 KBS 정책기획센터장이 각각 사회와 발제를 맡고 △서울대 윤석민 교수 △한림대 강명현 교수 △최충웅 뉴라이트연합 방송통신정책센터 대표 △최영묵 성공회대 신방과 교수 △이병철 대한변호사협회 사업이사 △최승노 자유기업원 대외협력실장 △나호열 한국예총 정책연구위원장 △김상선 한국과학기술단체 총연합회 사무총장이 패널로 나서는데 개최 전부터 친여 보수 성향이 너무 많다는 불평이 나오고 있습니다.

KBS 이사회에 선진당 추천 몫은 어디로 갔을까?

방통위는 8월 26일 전체회의를 열어 △손병두 전 서강대 총장 △고영신 전 경향신문 논설고문 겸 상무 △김영호 언론개혁시민연대 공동대표 △남승자 전 KBS 해설위원 △이상인 법무법인 오늘 대표변호사 △이창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이창현 국민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정윤식 강원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진홍순 전 KBS 특임본부장 △홍수완 전 KBS 기술본부장 △황근 선문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를 KBS 신임 이사로 추천했습니다.

KBS 이사는 방통위가 직접 선임하는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와 달리 이사회 추천을 거쳐 대통령이 임명하는데, 이명박 대통령이 임명장을 수여한 것은 임기 개시 1주일이 지난 9월 7일이었지요. 당초 최시중 방통위원장이 대신 임명장을 전달하려다가 청와대가 입장을 바꿔 직접 수여했지요. 이병순 사장은 신임 이사들이 대통령 임명장을 받기도 전에 부사장 임명동의안을 올린 셈이지요.

방문진 이사와 비교할 때 KBS 이사 면면을 보면 무난해 보이기도 합니다. 노조나 시민단체의 성명에서도 원칙과 기준이 없다는 주장은 나왔지만 특정 인사에 대한 비토성 내용은 찾아보기 힘들었지요. 다만 9월 1일 이사장 선출 과정에서는 일부 야권 추천위원들이 사전 내정설이나 전경련 상근부회장 경력 등을 문제 삼아 반대했다고 합니다.

당초 야당 추천 방통위원들이 지지한 것으로 알려진 조준상 공공미디어연구소장은 최시중 위원장이 야권 추천위원을 한 명 더 늘려주겠다는 의사까지 내비치며 극구 반대해 이사회 입성이 무산됐다는군요. 최 위원장은 반대 이유로 조준상 소장의 민주노동당 가입 경력을 들었다는데, 미디어스는 한나라당 공천에 신청했던 최홍재 방문진 이사와의 형평성을 들어 비판했지요. 조 소장에 대해서는 방통위가 열리기 전부터 KBS 노사가 강한 거부감을 표시했다는 소문도 나돌았습니다.

KBS 이사회가 구성되고 나니 방문진 이사 구성 때의 정당 추천 운운하던 기사가 다시 생각납니다. 9명의 이사 가운데서도 자유선진당 추천 몫이 있었던 것처럼 보도했는데, 11명의 이사 가운데 자유선진당 추천이 없다는 것은 의아한 일이지요. 심대평 자유선진당 전 대표가 8월 30일 탈당해 선진과창조모임이 교섭단체 지위를 잃게 될 것을 방통위가 미리 예견이라도 한 것일까요?

선진당 추천이 빠지긴 했지만 이번에도 한나라당과 민주당 추천이라는 식으로 기사가 나오더군요. 한나라당과 민주당 추천 몫의 방통위원들이 있고 이들이 자기들의 추천 정당과 협의했을 가능성은 있지만 KBS 이사들은 엄연히 방통위가 공모 절차를 거쳐 직접 추천한 것이지 정당 추천으로 선임된 것이 아닙니다.

그런 점에서 손병두 이사장이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는 "이제는 모두가 같은 KBS 이사이므로 어느 한쪽의 시각을 떠나 KBS 발전을 위해 의견을 개진하고 합의를 이뤄가는 방식으로 이사회가 운영될 것"이라고 말한 것에 기대를 걸어봅니다. 이명박 대통령도 이사들에게 임명장을 주면서 "여러분들은 여야에서 추천을 받았지만 여야를 뛰어넘어 KBS가 국민으로부터 신뢰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달라"고 당부했지요.

야당 성향의 고영신 이사에게 대변인을 맡기기로 한 것은 그 연장선상에 있는 의미있는 시도로 여겨집니다. 이병순 사장에게는 뼈아픈 일이겠지만 여권 위원들이 사장 손을 들어주지 않은 것도 신선한 충격으로 받아들여졌지요. 손 이사장이나 이 대통령의 말이 의례적인 언사로 끝나지 않고 여야가 늘 성향에 따라 표가 갈리는 일이 의례적인 언사로 끝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엄 사장 거취에 맘 졸이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엄기영 MBC 사장은 방문진 일부 이사들의 직-간접적인 사퇴 압력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물러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그는 8월 31일 확대간부회의에서 "자리에 연연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MBC의 독립성과 구성원들의 자존심, 또 공영방송의 수장이라는 책무, 그리고 그 모든 결정이 선례로 남게 된다는 점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고 말해 자진사퇴설을 일축했습니다. 이어 9월 3일 전사원들에게도 이메일 담화문을 보내 "어느 정파, 어느 세력에도 흔들리지 않고 정도를 가겠다"는 뜻을 거듭 밝혔지요.

▲ 엄기영 MBC 사장 ⓒMBC
엄 사장은 방문진 업무보고 과정에서 여권 추천 위원들로부터 거센 비판을 받았던 점을 감안해 간부회의에서 "방송의 공정성을 높이고자 사장이 중심이 된 '리뷰 보드(Review Board)'를 상설 운영하고 외부인사가 참여하는 공정성위원회도 설치하겠다. 또 단체협약 가운데 책임 경영을 제약하는 부분은 고치겠다"고 말했습니다.

노조로서는 자신들이 확보해놓은 권리가 외압 때문에 축소될 처지에 놓인 것이 불만스러울 법한데도 이 대목에서 엄 사장과 대립하면 엄 사장의 중도하차와 방문진(정권)의 뜻에 맞는 인사의 입성을 막아낼 수가 없다고 판단해 "방송 제작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 안에서 방송의 공정성ㆍ객관성과 관련된 제도적 논의에 동참하고 기존의 단체협약을 재검토할 용의가 있다"고 화답했지요.

이에 대한 방문진의 평가는 호의적이지 않은 듯합니다. 방문진은 9월 2일 이사회를 열어 경영진의 최종 업무보고를 검토한 뒤 사장의 진퇴 문제에 대한 논의는 보류했지만 부실보고를 지적하고 실행의지를 의심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고 하네요.

9월 9일 열릴 이사회에서 본격적인 논의가 열려 모종의 결정이 내려질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나도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날 안건에는 지역계열사와 관계사 업무보고가 예정돼 있긴 하지만 논의야 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9월 2일 이후 방문진 쪽에서 별다른 이야기가 나오지 않고 있는 데다 정운찬 총리 내정 등으로 정국의 분위기가 바뀌고 있는 것으로 보아 급박하게 밀어붙이지는 않을 것 같다는 전망이 우세합니다.

이에 앞서 민주당 문방위원들과 MBC 노조는 잇따라 방문진을 방문해 엄 사장에 대한 사퇴 압박을 중단할 것을 요구했지요. 야권 추천 방문진 이사들도 공개적으로 김우룡 이사장을 비롯한 여권 추천 이사들의 행태를 비판했습니다. 정연주 전 KBS 사장은 오마이뉴스에 편지 형식의 글을 기고해 "그들이 무슨 짓을 해도 절대로 물러나지 말라"고 충고했지요.

방송법에 대통령의 임명권이 정해진 KBS의 사장과 달리 상법상 주식회사인 MBC의 사장은 주주총회에서 얼마든지 해임이 가능합니다. 이미 방문진 이사회 구성도 바뀌어 KBS 때처럼 무리하게 이사 교체를 시도할 필요도 없지요. 여권은 'PD수첩' 논란과 막대한 적자, 노영(勞營)방송 체제 등 사장에게 책임을 물을 만한 일은 널려 있다고 보고 있지요.

그러나 정 전 사장이 언급했듯이 MBC는 감사원 감사 대상도 아니어서 비리를 들춰내거나 부실경영의 혐의를 들이대기도 어렵습니다. 노조도 사장을 응원하고 있어 내부 분열이 일어날 가능성도 낮지요. 또 공교롭게도 최근 들어 몇 달째 MBC의 평균 시청률은 1위를 달리고 있고 신뢰도 조사에서도 KBS를 제치고 정상에 올랐지요.

여권으로서는 무리하게 엄 사장의 해임을 시도하다 비판여론에 직면할 수도 있고 10월 국정감사 과정에서 역풍이 커지면 10ㆍ24 재-보선에서도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물론 그렇다고 엄 사장이 2011년 2월까지 임기를 채울 것이라고 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겁니다. 국감과 재-보선이 끝난 연말이 교체 타이밍이 될 수도 있고 아예 내년 2월 정기주총이 적기라고 볼 수도 있지요.

엄 사장의 거취에 관심을 가진 이들이 적지 않지만,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으면서도 가장 촉각을 곤두세우는 사람들은 아마도 MBC 임원들과 함께 19개 지역계열사 및 17개 관계사 사장들일 겁니다. 엄 사장이야 "해임돼 물러날지언정 제 발로 걸어나가지는 않겠다"고 선언한 사람이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대부분 본의와 상관없이 엄 사장의 거취에 따라 3년 임기가 얼마나 줄어들지 좌우되거든요.

언론계 공직의 막차 EBS에 누가 입성할까?

방통위는 8월 24일부터 9월 4일까지 2주간 EBS 사장 및 이사 후보자를 공개모집한 결과 사장에는 14명, 이사에는 84명이 지원했다고 밝혔습니다. 이사 9명 중 교육과학기술부 장관과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추천 몫 1명씩을 제외하면 이사 경쟁률은 12대 1입니다. 방송법에 따르면 EBS 감사까지 방통위가 임명하는데, 방송가에서는 KBS와 방문진 이사 공모에서 탈락한 사람들을 합쳐 아직까지 언론계에 번듯한 자리를 차지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막차인 셈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실 정권 교체 이후 방송가의 수장 가운데 가장 먼저 교체될 자리로 EBS 사장을 꼽은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구관서 사장이 관료 출신이어서 정권의 사퇴 권유를 선선히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은 데다 후임 사장 후보로 한 여권 인물이 유력하게 거론되기도 했거든요.

그러나 여권에서 EBS 사장 자리를 중요하지 않게 여겼기 때문인지, 정권 핵심이 유력한 후보를 마음에 안 들어했기 때문인지, 눈독 들이는 다른 후보자들이 없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지난 정권에서 임명된 방송가, 혹은 공영 언론사 사장으로는 의외로 천수(?)를 다하게 됐지요.

EBS 노조도 임명 당시에는 교육부 낙하산이니 부적격자니 논문 자기표절이니 하며 반대하다가 정권이 바뀌자 외압에 의해 물러나면 절대 안된다고 만류했지요. 역시 사람의 일이란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모양입니다.

항간에는 한나라당 전 국회의원과 방통위 간부 등 KBS 출신 3명이 경합을 벌이고 있고 교육부 출신과 EBS 출신 간부 등도 거명되고 있다네요. EBS에서는 방통위가 EBS의 독립성을 지킬 의지와 능력이 없는 인물을 사장으로 내려 보내면서 EBS를 교육ㆍ입시 전문방송으로 축소시키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도 하고 있더군요.

최시중 방통위원장은 8월 27일 기자간담회에서 "EBS는 우리나라 교육문제를 전담하는 방송사로 공교육의 정상화 문제와 사교육 과다 문제를 해결하고 국민의 평생교육 문제를 해결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지금까지는 어떤 역할을 했는지 내놓을 수 있는 게 없어 아쉬운 게 사실이다. 정치적 고려나 개인의 과거 전력, 행적을 떠나 교육에 대한 애정과 열정을 가지고 EBS를 사교육비 절감과 국민의 평생교육을 책임지는 채널로 만들 수 있는 사람이 선임돼야 한다"고 천명하는 동시에 "KBS 1,2TV와 EBS를 'KBS 그룹'으로 묶어 공영방송으로 자리잡도록 하겠다"는 방안도 밝혔거든요.

YTN 노조원 업무방해 혐의 판결의 함의

방송사 사장 가운데 사장 거취나 후임 사장 문제로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는 또 한 곳이 YTN입니다. YTN의 구본홍 사장은 이미 사퇴했고 배석규 전무가 사장직무를 대행하고 있지만 후임 사장에 관한 논의는 전혀 진전되지 않고 있지요.

▲ 노종면 전국언론노조 YTN 지부장과 현덕수 전 지부장, 조승호 기자, 임장혁 기자 등 4명이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들어서고 있다. ⓒ전국언론노조 YTN 지부
이를 두고 세간에서는 배 전무가 사장의 직무를 대행하는 기간이 임무수행 여부에 따라 사장으로 승진할 수 있는지 여부를 테스트하는 기간일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물론 테스트의 잣대는 노사문제나 보도 논조의 정상화일 테고 그것을 판단하는 것은 여권 핵심부의 몫이겠지요.

실제로 그는 후임 사장이 선임될 때까지 임시로 직무를 대행하는 인물답지 않게 과감한 인사를 단행하는가 하면 조합원에 대한 전보발령과 인사위원회 회부 등의 조치를 내렸지요. 잔여 임기를 두 달여 남겨놓고 부사장과 본부장의 사표를 받는 이병순 KBS 사장을 연상시키기도 합니다.

YTN 노사는 인사문제와 보도국장 불신임투표 등을 놓고 대립을 거듭하고 있지요. 노조는 파업이라는 강경수단을 자제하고 있고 사측에서도 추가 해고의 칼을 뽑지 않고 있어 극한대결은 벌어지지 않고 있지만, 그렇다고 당분간 대화와 타협의 돌파구가 열릴 기미도 보이지 않습니다.

결국 해고무효소송 판결까지 가봐야 한다는 것인데, 그 결과를 가늠할 만한 판결이 9월 1일 내려졌습니다. 서울지방법원은 낙하산 반대투쟁을 벌이다가 업무방해 혐의로 기소된 조합원들에 대해 벌금형을 내렸지요. 노종면 노조위원장에게는 1천만 원, 현덕수 전 위원장 등 집행부원 3명에게는 500만~700만 원이 선고됐습니다.

재판부는 "출근 저지 과정에서 회사의 시설관리권을 침해한 행위 등은 위법이고 정당하지 못하며 공동 폭행 역시 모두 유죄로 인정된다"면서도 방송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행위였음을 감안해 검찰이 구형한 징역 2년에서 대폭 형량을 낮췄지요. 아마도 노사합의에 따라 사측이 고소를 취하한 것도 참작됐을 텐데 검찰은 사측의 고소 취하와 관계없이 독자적 판단에 따라 기소했습니다.

이를 두고 YTN 노조는 "아쉽기는 하지만 공정방송을 추구하는 가치를 인정한 것"이라고 평가했지요. 사규에는 금고 이상의 실형을 받으면 해고할 수 있다고 돼 있는데 벌금형으로 낮춰져 회사가 해고의 정당성을 주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차단했다는 설명도 덧붙였습니다.

반대로 사측에서는 법원이 검찰의 기소내용을 모두 유죄로 인정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노조의 반성을 촉구했습니다. 또 회사가 고소를 취하하지 않았다면 실형이 내려졌을 것이라는 점도 시사했지요.

해고무효소송을 담당하는 재판부가 업무방해혐의를 판결한 재판부와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다면 아마도 징계 사유는 인정하되 6명 전원에 대한 해고는 지나치다는 결론을 내리지 않을까 짐작됩니다. 만일 이러한 결과가 나오면 노사는 비슷한 논리로 또 공방을 펼치겠지요.

YTN 경영진도 6명의 해고자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노사 갈등의 불씨는 꺼지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할 겁니다. 그러나 오랜 기간에 걸쳐 불법행위가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누구 하나 책임을 지지 않는 것은 문제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또 전원 복직 등의 파격적인 화합책을 쓴다면 노조가 승리감에 도취돼 기고만장할 것이기 때문에 조직의 기강을 바로잡기가 더 힘들 것이라고 우려하더군요.

그러나 YTN 주변에서는 정작 경영진이 걱정하는 것은 여권의 시선일 것이라는 말도 하고 있습니다. 경영진이 노조의 힘에 떼밀려 굴복한 것으로 비쳐진다면 배 전무의 사장 승진 가능성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것이지요.

※ 이 기사는 한국언론재단에서 제공했습니다. [이희용 기자  블로그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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