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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이명박 대통령의 언론관을 비판한다

지난 7일 이명박 대통령이 이례적으로 KBS 새 이사들을 청와대로 불러 직접 임명장을 수여했다. 대통령이 법적 권한에 따라 직접 공영방송 이사들에게 임명장을 주는 것이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그 이유라고 밝힌 공영방송에 대한 인식수준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는 이날 공영방송이 “우리 사회의 윤리적, 도덕적 변화를 이끄는 데 앞장서 달라”고 주문하면서 “우리 방송은 아직도 정쟁 등 정치문제에 지나치게 몰두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 나라의 대통령으로서 공영방송의 역할에 대한 주문치고는 빈약하기 그지없는 데다, 현재의 언론문제를 바라보는 방식에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다. 아전인수도 이런 정도라면 지나치다.

대통령의 말대로라면 우리 사회가 지금 겪고 있는 문제의 핵심은 윤리적 도덕적 문제이며, 그럼에도 방송은 별 문제없는 정쟁 등 정치문제에 지나치게 몰두하고 있다는 것이다. 과연 지금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문제들이 윤리적 도덕적 문제인가? 이 말을 뒤집으면 우리 국민들이 윤리적 도덕적으로 문제가 많다는 것인데, 어불성설이다.

허술하게 서둘러 합의한 쇠고기 협상을 문제 있다며 지적하는 촛불시민들을 범법자로 몰고, 온 국민이 반대하는 대운하사업을 밀어붙이다가 슬며시 4대강 개발로 이름만 바꿔치기 했는가 하면, 무리한 재개발사업에 반대하는 서민들을 용산에서 참혹하게 진압하고, 국민의 대다수가 반대하는 미디어 관련법을 국회에서 날치기처리한 정권이 어떻게 윤리와 도덕을 논할 수 있는가.   

더욱이 그는 “정부가 방송을 장악하려 한다는 일부의 주장이 있지만 그것은 결코 사실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감사원과 검찰까지 동원해 공영방송 사장을 ‘배임’으로 무고하고, 법적으로 명시되어 있지도 않은 ‘임면권’을 자의적으로 휘둘러 공영방송의 사장을 생매장한 대통령으로서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그의 충실한 하수인인 방송통신위원장은 공영방송을 색깔 없는 방송으로 만들겠다는 말을 공공연히 하고 있고, 일방적으로 들어앉힌 방문진 이사들은 엄기영 MBC사장의 책임을 물어 퇴진을 시키겠다고 협박하고 있는 것이 현재진행형의 방송가 현실이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그는 “우리 방송은 아직도 정쟁 등 정치문제에 지나치게 몰두하고” 있으며, 앞으로는 “우리사회의 윤리적, 도덕적 변화를 이끄는 데 앞장서 달라”고 역설하고 있다. 이쯤 되면, 정녕 윤리적 도덕적 변화가 필요한 사람은 과연 누구인가? 대통령의 방송에 대한 인식이 이정도 수준이라면 우리 방송의 미래는 어둡다. 적어도 윤리와 도덕을 주문하기엔 이명박 정권이 보여준 지난 1년간의 폭압적인 언론정책은 너무나 어처구니없다.

이명박 대통령이 '정상적 이성'을 가졌다면 공영방송에 대한 조언이나 당부에 앞서 자신이 저지른 1년의 언론 정책이 어떤 불신과 분노를 일으켰는지 성찰이 필요하다. 정권의 성찰과 변화가 전제되지 않는 수사적 발언은 시대의 상식과 원칙을 무시하는 것 뿐 아니라, 묵묵히 방송현장에서 땀 흘리고 있는 이들의 분노와 조롱을 더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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