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면교사를 모르는 한국의 공포 드라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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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따져보기] 조민준 〈한겨레〉 ‘ESC’팀 객원기자

1998년, 〈여고괴담〉의 도착과 함께 공포영화는 충무로의 블루칩이 되었다. 굳이 스타 캐스팅으로 높은 제작비를 들일 필요도 없는데다, 서사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가끔씩 관객들을 놀래켜 주는 충격요법만 확실하다면 어느 정도의 흥행도 보장된 까닭이다. 그리하여 이후 10년간, 공포영화는 매해 여름마다 꾸준히 관객들을 찾았다. 하지만 그 숱한 영화들 중에서 완성도를 인정받은 작품을 꼽는 데는 다섯 손가락만으로도 충분하다.

10년간 계속된 공포영화의 부진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대체로 한국의 공포영화 감독들은 ‘공포’와 ‘짜증’이라는 감정을 혼동하는 경향이 있다. 둘째, 시나리오가 부실하다. 결정적인 순간에 놀래키기 위해서라도, 서사는 관객의 몰입을 충분히 유도해야 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대개 설정과 배경은 현실의 것으로 받아들이기 힘들고, 인물들은 하나같이 문어체 대사를 구사한다. 세 번째, 안이한 연출이다. 귀신이 등장하는 영화들을 보자. 90년대 말 공포영화 팬들에게 새로운 충격을 안긴 일본영화 〈링〉의 스타일에서 벗어난 작품을 찾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 MBC 드라마 <혼>

이렇게 세월이 흘러도 극복되지 못하는 한계 속에서도 한국의 공포영화들은 꾸준히 만들어지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새로운 소재에 목마른 한국 텔레비전 드라마들도 공포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려는 듯하다. KBS 2TV는 이미 2년 연속으로 〈전설의 고향〉을 부활시켰고 MBC 역시 올해 1994년 〈M〉이후 15년 만에 〈혼〉이라는 공포 드라마를 수목 미니시리즈로 편성해 방영했다. 하지만 결과는 썩 좋지 못하다. 단지 10%대로 진입하지 못한 시청률의 문제가 아니다. 앞서 언급한 한국 공포영화들의 패착들을, 의욕적으로 발을 뗀 한국 공포 드라마들 또한 고스란히 답습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올해 방영된 〈전설의 고향〉과 〈혼〉의 가장 큰 문제는 대본에 있다. 둘의 공통점은 야심이 너무 컸다는 점. 〈전설의 고향〉은 특히 올해 방영된 에피소드들에서 그간의 단선적인 이야기에서 벗어나 여러 플롯들을 배치해 다양한 재미를 선사하려 했던 듯하다. 하지만 ‘계집종’이나 ‘조용한 마을’과 같은 단편들은 지나치게 복잡한 구조 탓에 극 자체가 마침내 길을 잃고 말았다. 〈혼〉 또한 마찬가지. 사회 시스템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내내 견지하고 있었던 대본의 의도는 훌륭했으나 경찰 수사 장면의 묘사라든지 정작 장르물이 지켜야 할 디테일에 충실하지 못했던 점은 결국 이야기를 비현실에 가깝게 몰고 갔고 마침내 시청자들이 납득하기 힘든 결말로 끝을 맺기에 이르렀다.

연출에서도 의외성을 발견하기 힘들다. 〈전설의 고향〉 ‘금서’ 에피소드에서 시청자들이 만나는 것은 〈주온〉과 〈링〉에서 본 듯한 귀신이다. 명백히 서양 뱀파이어 전설에 더 가까워 보이는 ‘혈귀’ 에피소드도 어떻게 연출하느냐에 따라 무척 흥미로운 결과를 낳을 수 있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단편은 서구의 흡혈귀 영화에 중국 강시 영화의 스타일이 기묘하게 결합된, 코미디 같은 작품으로 남고 말았다.
10년째의 흉작 속에서도 올해 평단의 호평을 받은 한국 공포영화가 있다.

▲ 조민준 〈한겨레〉 ‘ESC’팀 객원기자

바로 〈불신지옥〉이다. 이 영화가 거둔 성과는 서민들이 사는 낡은 아파트의 디테일을 철저히 살린 연출과 치밀하게 구축된 서사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남의 일이 아닌 것 같은 일상에서 의외성이 돌출될 때, 사람들은 공포를 느낀다. 판타지적인 설정, 판타지의 공간과 인물들, 현실과 동떨어진 대사체와 어디서 본 것만 같은 귀신으로 이제 누구를 놀래킬 수 있단 말인가. 10년이면 영상으로 공포를 다루는 관습도 변할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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