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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6일, 2008 베이징 올림픽 이후 자취를 감췄던 류시앙이 처음으로 공식석상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류시앙은 ‘중국이여 영원히, 영광의60년― 가장 영향력 있는 중국 스포츠인’에 선정되어 베이징을 방문했다. 무대에서 그는 ““어떤 어려움도 지나가게 되어있고, 앞으로도 가야 할 길은 많이 남아 있다. 나는 이 길을 차근히 그러나 분명히 걸어나갈 것이다”라고 소감을 발표했다.

지난 1년은 류시앙에서 있어 결코 쉬운 시간이 아니었다. 2008년 8월 18일 오전, 베이징 올림픽 남자 110 미터 허들 예선경기에서 금메달이 거의 확정되었던 중국 육상스타 류시앙이 경기에서 기권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중국인들은 놀라움, 울음, 분노, 동정, 아쉬움,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등의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부상으로 인한 기권에 대해 그 자리에서 류시앙을 욕한다는 것은 인지상정이 아닌 듯 분위기는 대체로 동정으로 기울어졌다.

▲ 중국 육상스타 류시앙. <사진제공=후동백과>

그러나 올림픽 이후 류시앙의 인기는 믿을 수 없는 속도로 하강했고, 지하철이나 버스 어느 곳에서나 쉽게 볼 수 있었던 광고 속 류시앙은 하나 둘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재계약을 한 기업들도 계약금을 비공개로 했고 언론은 이에 대해 계약금이 낮아진 것이 분명하다는 추축을 내 놓았다. 그러나 추락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갖가지 악소문들이 언론보도를 통해 터져 나왔다.

모 신문은 외국 기자 7명과 류시앙을 발굴해 낸 구바오강 감독과의 단독인터뷰를 대서특필했다. 외국 기자단이 10만 유로의 회유책을 써서 류시앙이 과거에 혹은 현재 흥분제를 사용 중이라는 구감독의 증언을 녹음했다고 보도했다. 이 사건은 일파만파로 이어졌고,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게 된 구감독이 기사가 조작된 것이라고 증언하고, 류시앙 부모님을 찾아가 사죄하는 기사가 실리면서 사건은 일단락 되었다.

그러나 결론이 어떻게 되었건, 이 사건으로 류시앙의 이미지는 크게 실추되었다. 뒤이어, 체중 15 kg 증량설, 국가 양대 회의에 불참했다는 기사 등등 그에 대한 비방은 끊일 날이 없었다. 언론보도와 함께 누리꾼들의 반응 역시 그의 추락을 가속화시켰다. 류시앙과 관련된 기사마다 그에 대한 악플이 줄을 이었다.

그의 빛나는 과거에 비교해 아찔한 추락이 아닐 수 없다. 110미터 허들 아시아 신기록 수립, 2006년 스위스 로잔 육상경기 세계기록수립, 중학교 역사교과서에 수록,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광고 수입 등. 그런데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이자 온 국민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스포츠 스타 류시앙은 어디로 갔는가? 그는 존재하지만 사람들에게 그는 이미 부재한 존재이다. 그를 이렇게 만든 것은 누구인가? 자기 자신인가? 국가대표 관리단인가? 누리꾼들인가? 아니면 언론인가?

▲ 북경=배은실 통신원/ 게오나투렌

이제 류시앙은 수술과 요양을 마치고 다시 중국국민의 곁으로 돌아왔다. 아마 그는 군중의 변덕과 관리자의 허술 그리고 대중으로부터의 신속한 잊혀짐에 대해 철저히 깨달았을 것이다. 아픈 만큼 성장한다는 옛말이 있다. 육체의 재기뿐 아니라 사회적 재기를 위해, 26세의 류시앙은 이제 조금은 이기적인 자신의 미래설계를 할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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