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오입’보다 더한”…“투표 방해해 놓고”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언론법 헌법재판소 공개변론서 여야 치열한 공방

“헌법과 국회법을 뒤져 봐도 표결 불성립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관례란 이름으로 허용하다 보면 ‘일사부재의’ 원칙 자체가 완전히 망가질 수밖에 없다. 원칙을 망가트리는 것을 어떻게 관례로 인정할 수 있는가.” (민주당 측 대리인 박재승 변호사)

“이윤성 국회부의장이 (방송법 1차 투표 당시) 표결 종료를 선언한 것은 맞지만 누가 봐도 착오였다. 야당이 정상적 의사진행을 방해, 극도의 소란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원인 제공자들이 결과를 문제 삼는 게 타당할 수 있나.” (국회의장 측 대리인 강훈 변호사)


여당이 지난 7월 22일 국회 본회의에서 날치기 처리한 언론관계법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권한쟁의 심판이 10일 오전 10시부터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렸다. 이날 여야 당사자들의 대리인들은 논란의 핵심인 재투표, 대리투표, 사전투표 등의 사안에 대해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재투표 논란, “사사오입보다 더한…” v.s “야당 방해 때문에 착오”

여당이 날치기 처리한 언론관계법 개정의 법적 효력과 관련해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부분은 ‘재투표’다. 당시 사회를 맡았던 이윤성 국회 부의장이 방송법 1차 표결을 마치고 투표 종료를 선언한 뒤 정족수 부족을 이유로 법안이 부결된 것인지, 당초부터 표결이 불성립한 것인지를 놓고 여야는 물론 법률 전문가들의 의견조차 엇갈리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이와 관련해 청구인인 민주당의 대리인 박재승 변호사(법무법인 봄)는 “방송법 1차 투표의 부결 사실을 확인했음에도 (이 부의장이) 헌법과 국회법 모두에서 찾아볼 수 없는 ‘표결불성립’이란 말로 재투표 카드를 꺼냈다”며 “(법안 날치기 처리라는) 특정 목적을 갖고 있지 않은 이상 의장의 직무를 수행하는 분이 이렇게 할 순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표결불성립’ 선언을 “기발한 아이디어”라고 꼬집은 박 변호사는 “과반 이상 국회의원 출석, 출석 의원 과반 이상의 찬성으로 법안은 의결되는 것이고, 두 요건 중 하나라도 충족하지 못하면 부결되는 것”이라며 현행법이 표결불성립이란 제도 자체를 상정하고 있지 않음을 강조했다.

방송법은 부결된 상황이었던 만큼 재투표에 나선 것은 국회법 제92조에 규정된 ‘일사부재의’ 원칙을 위반한 것이라는 지적인 것이다. 박 변호사는 “표결불성립을 이유로 재투표를 꺼낸 것은 사사오입보다 더한 것”이라고 탄식했다.

김종규 변호사(법무법인 이수)도 “국회의 자율권이라는 것은 법치주의 원칙의 한계에서만 인정되는 것”이라며 “입법형성 역시 절차의 정당성이 확보돼야 하는 만큼, 피청구인들의 가결선포행위는 실질적 심사권한 박탈하는 일이었을 뿐 아니라 헌법상 적법절차원칙에도 반하는 것으로 무효”라고 주장했다.

박 변호사는 본격 변론에 앞서 “언론관계법은 국민 대부분이 반대해 온 것으로 이를 직권상정해 밀어붙인 것은 국민 주권주의에 반한 것”이라면서 “(의석이) 다수라 하여 모든 사안에 대해 다 다수가 되는 것이 아니다. 의사합치나 양해 등의 과정이 없이 하면 소수의 횡포가 되는 것”이라고 여당의 언론관계법 날치기 처리 자체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을 전하기도 했다.

피청구인인 김형오 국회의장과 이윤성 부의장의 대리인인 강훈 변호사(법무법인 바른)는 “피청구인(이 부의장)이 (방송법 1차 투표 당시) 표결 종료를 선언한 것은 맞지만 이는 누가 봐도 착오였다”면서 “극도의 소란 속 (야당에 의해) 정상적 의사진행 방해가 일어났기 때문”이라고 맞받았다.

이어 “신청인들은 ‘일사부재의’를 주장하고 있지만, 만약 야당이 주장하는 법안을 국회의장이 상정, 표결을 하다 투표 도중 종료를 선언한 후 ‘일사부재의’를 이유로 이번 회기에선 재투표를 못한다고 할 때 납득할 수 있겠냐”고 반박, 재투표 역시 의장의 권한임을 강조했다.

“양쪽 모두 대리투표 인정…법 개정 효력 없다” v.s “대리투표 없었다…야당, 정황만 들이대”

대리투표 논란과 관련해서도 양측은 각을 세웠다. 현재 신문법과 방송법은 각각 15표와 5표가 대리투표로 확인될 경우 의결정족수에 미달되는 상황으로, 대리투표와 관련한 헌재의 판단이 법 개정 효력의 인정 여부의 주요 잣대가 될 수밖에 없다.

현재 여야 모두는 대리투표의 위법성에 대해선 크게 이견이 없다. 그러나 대리투표가 한 표라도 확인되면 표결 결과 전체를 무효로 봐야할지 여부에 대해선 논의가 좀 더 필요한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박재승 변호사는 여야 모두 대리투표의 정황을 인정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양측 모두 대리투표를 사실로 인정하면서 어느 한 쪽의 잘잘못을 따지는 게 아닌, 불가침·불가양의 권한인 투표권이 임의대로 행사된 것 자체가 문제인 만큼 표결 결과 전체를 무효로 봐야 한다는 주장인 듯 보인다.

그는 “표결 당시 상황을 보면 여야 의원들이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투표할 처지가 안 됐음을 확인할 수 있다. 청구인 측이나 피청구인 측 얘기 모두를 들어봐도 그 점에 대해선 다툼이 없다. 대리투표가 있었음을 인정하는 걸 포함하는 말들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게 바로 대한민국 국회의 상황”이라면서 “국회가 이래선 안 된다. 이는 그들에게 세비를 주는 국민들을 모욕한 것”이라고 탄식했다.

그러나 피청구인 보조참가인 측 대리인인 김연호 변호사는 “대리투표 주장은 인정되지 않는 사실을 전제로 한 것”이라면서 “청구인들이 제출한 영상자료를 자세히 보면 청구인들이 주장하는 신분이 아닌 사람들이 많고, 맞다 하더라도 그들이 찬반 의사 표시를 하는지 여부를 확인할 수 없다. 청구인들은 정황에 대한 추측만 할 뿐, 입증을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피청구인 측 대리인인 김치중 변호사는 “상당수 의원들이 대리투표를 한 사실이 없다고 말하고 있고, 헌재에서 국회의사당 내 사건을 입증할 때 가장 우선시하는 의사록에도 이는 잘 나타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청구인들은) 방송사 촬영 자료 등을 근거로 대리투표 여부를 따지는데, 이는 헌법에 보장된 국회의 자율권을 침해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또 “청구인인 야당 의원들이 한나라당 의원들의 자리를 임의로 차지, 투표를 하지 못하게 하거나 찬성투표를 취소하는 식으로 방해한 사실이 일부 발견돼 고소도 된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편, 헌법재판소는 오는 22일 오후 2시 청구인과 피청구인 등이 제출한 법안 처리 당시의 상황 등이 담긴 영상자료 등을 검증하는 시간을 가진 뒤, 29일 오전 10시 다시 한 번 공개변론을 열기로 했다. 이에 따라 언론관계법 관련 헌법재판소의 최종 판단은 법의 효력이 발생하는 11월 1일 이전이자 10·28 재보선 직후인 내달 29일게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저작권자 © PD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