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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훈의 세상읽기]

▲ 우석훈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강사 (88만원 세대 저자)
요즘은 잘 얘기하지 않는 저자이지만, 칼 만하임이라는 지식사회학으로 한동안 유행을 타던 사람이 있었다. 그가 얘기했던 것 중에 아직도 기억에 남는 것은 이데올로기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 그런 상황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이데올로기는 사라졌다”는 것 역시 또 하나의 이데올로기라는 것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이데올로기적이며, 이런 메시지를 담고 있지 않은 학문 혹은 문화라는 것은 만하임이 말하는 것처럼 애당초 존재할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소녀시대의 노래들은 이데올로기로부터 자유로운가? 그렇지 않다. 그들 역시 끊임없이 시대의 대세를 만들어내고, 트렌드의 우상을 만들어내면서, 기획사의 신화를 재생산하는 중이다. 그들 스스로도 그 구조의 희생자가 된다는 작은 차이점을 제외한다면, 그들 역시 이데올로그들이라고 할 수 있다.

앞에 있던 두 개의 정부도 국민의 정부, 참여 정부 등 자신들의 독특한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명박 정부 역시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분명한 것은 이명박을 대통령의 자리에 올렸던, 그가 아무리 허물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게 문제될 것이 없다고 하던 국민들의 이데올로기는 경제였던 것이 사실이다. 만약 정말로 이명박 정부가 이런 자신들에게 부여되었던 대중적 이데올로기의 존재를 이해했다면, 정부의 이름을 지금처럼 투박하게 ‘이명박 정부’라고 붙이지 않고 ‘경제 정부’ 혹은 ‘국민경제 정부’ 같은 식으로 이름을 붙였을 것이다.

아마도 어떻게 이름을 붙이던지 간에, 그것이 이데올로기적으로 해석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고심 끝에 그냥 ‘이명박 정부’라는 싱거운 이름을 붙였을 것 같다. 분명 지금의 정부가 예전 정부와 같이, 하다못해 김영삼 시대와 같이 ‘문민의 정부’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 역시 정권 내부의 세상에 대한 인식을 보여주는 하나의 정보일 것이다.

자신들이 내걸었던 이데올로기는 공식적으로는 ‘이명박’인데, 이 이름이 주는 정부는 건설회사 CEO라는 이미지가 가장 크다. 그래서 대기업에 유리한 정책을 할 것이고, 건설회사에 유리한 구도를 만들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은 생각했다.

▲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10일 남대문시장을 방문해 비상경제대책회의를 열었다. 이날 이 대통령을 보기 위해 2000여명의 시민이 몰린 것은 현재의 민심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청와대
실제로 미국 방미 중에 쇠고기 협상을 간략하게 했는데, 많은 사람들이 이 속에서 읽은 코드는 한미 FTA라는 대기업을 위한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서 국민들의 보건은 사소한 것으로 치부될 가능성이 높다는 메시지였다. 그리고 대운하는 그 대기업 중에서도 ‘턴키 방식’으로 너무 많은 돈을 국가로부터 가지고 가게 될 대규모 토건사업에 대한 반대라는 상징을 가지고 있다. 그렇게 1년 반이 지나고 나서 이명박은 절반 이상의 국민에게 불도저와 밀실 그리고 물대포라는 상징으로 비추어지게 되었다.

이러한 이데올로기적 이미지는 고착화되는 경향이 있었고, 도저히 한나라당은 한국을 통치할 수 있는 집단이 아니라는 것과 함께 심지어 한국의 우파들은 토건을 통해서 자기들의 아파트값과 자신들이 지방에 보유하고 있는 땅값을 올리려는 것 외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는 무능한 집단처럼 이해되는 경지에 이르렀다. 이런 중에서도 명박식 ‘불도저 행정’이 가능했던 것은 그 반대편에 서 있는 민주당은 “제 밥그릇 지키기”라는 아주 협의의 이데올로기만을 가지고 있다고 비추어졌기 때문이 아닐까?

어쨌든 이런 시기를 정권 1기로 본다면, 2기로 넘어가고자 하는 이명박 정부의 최근 몸부림이 자못 눈물겨워 보이기는 한다. 녹색성장, 서민경제, 중도실용 등 형태로만 보자면 크게 비판하기 어려운 것들을 전부 전면으로 끌어왔고, 한국의 정치 지평상 중도좌파 정도로 볼 수 있는 정운찬까지 총리로 끌어들여 왔으니, 쓸 수 있는 카드는 거의 쓴 셈이다. 그리고 ‘4대강’은 이렇게 정권 2기를 출범하려는 이명박 정부에게 그야말로 역린인 셈이다.

‘이것만 건드리지 않는다면….’ 아마 정운찬 총리에게 그런 말을 하지 않았을까, 그렇게 상상해본다. 어쨌든 이명박 정부는 사실상 경제 정부이다. 정부가 출범할 때와 비교하면, 지금 입장은 많이 바뀐 셈이다. 이 변화에 대해서 무시하고,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고, 또 아무런 변화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그것 역시 이데올로기적이지 않을까? 크든 작든 변화는 있는데, 변하지 않는 것은 토건이라는 하부구조이고, 변하는 것은 정치라는 상부구조, 이 정도의 변화는 생겨날 것 같다. 이 변화를 읽어내지 않는다면, ‘반 이명박 전선’이라는 것은 매우 허무하게 끝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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