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무도회’에서 춤추는 ‘삐에로’의 운명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재기획(3)] 여성 대중음악 뮤지션을 말한다

<여성 대중음악뮤지션을 말한다> 연재기획 순서

1. 여성가수의 음악을 둘러싼 편견들
2. 섹시 댄싱퀸의 존재론 (1): 김추자에서 손담비까지
3. 섹시 댄싱퀸의 존재론 (2): 김추자에서 손담비까지
4. 중성 혹은 남성형 캐릭터들: 피터팬과 톰보이 사이에서
5. 주술자, 사제, 여신, 그리고 뮤즈
6. 다양한 유형을 한 자리에: 여성 그룹 (1)
7. 새로운 세대, 새로운 여성 그룹 (2)
8. 전기기타를 든 여자들
9. 여성 싱어송라이터의 계보학
10. 홍대 앞 여성 뮤지션
11. 아직도 못다 한 이야기들

당연한 말이지만 무대 앞에 선 여성 댄스 뮤지션의 배후에도 많은 것들이 있(었)다. 우선, 남성 협업자들을 떠올릴 수 있다. 김추자의 경우는 당시 ‘히트곡 제조기’로 주가를 높여가던(현재는 한국 록의 대부로 추앙받는) ‘신중현 사운드’의 화신이었다. 김완선에게는 (‘캠퍼스 그룹 사운드’로 한 시절을 풍미한 산울림의) 김창훈, (1970년대 청년문화·포크 록의 아이콘) 이장희 등이 참여했다. 엄정화라면 한때 전성기를 함께 누렸던 주영훈과의 ‘콤비’를, 손담비라면 최근 인기를 얻고 있는 용감한형제를 거론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여성 가수 대(對) 남성 프로듀서/작곡가’라는 구도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역사적으로 일반적인 현상이었다. 물론! 여기서 성역할의 대립에 대한 소모적인 논쟁은 불필요하다. 이를 둘러싼 여러 논란들은 이전에도 잠시 언급한 바 있으므로 생략하기로 하자. 대신, 날이 갈수록 공고해지는 ‘시스템’과의 관계, 그러니까 기획사 시스템 또는 연예산업에 의해 과거보다 훨씬 철저하게 기획, 관리되고 있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 Anymotion
그런데 대개의 섹시 콘셉트의 여성 댄스 뮤지션들은 항상 ‘가창력 부재’라는 논란을 일으켜왔다. 화려한 비주얼이 강조되기 시작한 1980년대 후반 이후가 되면 이러한 의심은 특히 고조된다. 이런 논란에 시비를 가리는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다. 왜 그럴까. 화려한 퍼포먼스와 역동적인 춤을 올리는 무대에서 노래를 직접 하는가/안 하는가, 그래서 잘 부를 수 있는가/없는가의 문제도 작용을 하겠지만(전에 살펴본 것처럼, 스튜디오 같은 고정적인 환경과 기술적 도움 없이도, 안정적인 음정, 확실한 고음처리 등을 구현해내는 전형적인 가창력을 말할 것이다), 여기에는 그 이상의 문제가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가창력의 문제란 사운드의 활용이나 테크놀로지 이용의 문제와 맞물리면서 다른 차원의 문제로 이동하게 된 것이다. 게다가 스튜디오에서조차 ‘쌩’ 톤에 가까운 목소리를 들려줄 수밖에 없던 때와, 다양한 효과나 조작을 통해 다양한 목소리를 표출하는 지금은 사뭇 다를 것이다.

새로운 목소리, 새로운 음악을 향하여

무엇보다도 섹시하고 관능적인 여성 댄스 뮤지션과 시각적 요소는 분리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이들의 음악은, 화려한 스펙터클을 즉각적으로 체험하게 해주는 영상을 통해 비로소 완성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1980년대 컬러TV의 확대 보급, 특히 뮤직비디오라는 매체가 탄생하지 않았다면, 이들의 시대는 열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전에 언급한 대로, 당시 ‘한국의 마돈나’라는 별칭으로 소개된 ‘1980년대의 댄싱퀸’ 김완선도 이러한 뮤직비디오 시대의 산물이었다. 김완선을 포함한 댄스 키드들은 그때까지도 확연하던 성인 취향의 ‘뽕끼’를 지우고 청소년 취향의 빠르고 강렬한 비트로 대체했으며, 이전의 단순 율동 차원을 넘어선 본격적인 댄스 시대를 개막해낸다. 이때부터 가수들의 매뉴얼에는 화려하고 관능적인 춤이 필수항목으로 자리 잡게 되고, 이른바 ‘백댄싱’ 팀들은 1990년대 댄스음악의 주요 등용문으로 등극한다. 이는 시청각의 화학작용으로 새로운 표현력을 탑재한 ‘영상 시대’ 혹은 ‘보는 음악의 시대’가 열렸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아날로그적인 차원에 지나지 않았다.

이제 디지털, 모바일, 인터넷 등의 매체와 뮤지션들은 상호적인 마케팅 수단으로 서로를 이용한다. 청각보다 시각적 효과가 주효하다(그 둘이 상호작용한다)는 점에서는 과거와 동일하지만, 보다 다매체적이고 판매촉진적인 측면이 보다 증폭되었다. 이들의 음악 및 영상이 담긴 뮤직비디오는 자기자신을 위한 홍보물이자, 모바일 폰과 같은 상품 판매를 위한 CF로 동시에(그리고 노골적으로) 기능하는 것이다.

▲ 빅뱅과 2NE1이 결합한 <롤리 팝>
가령, 당시 잠시 주춤하던 이효리를 다시 한 번 상승가도로 끌어올린 계기는 2005년 힙합 댄스곡 〈Anymotion〉이었다. 어쩌면 이 곡 자체보다는, 업계에서 '브랜디드 엔터테인먼트 마케팅'이라 불리는, 뮤직비디오와 휴대폰 TV광고의 상생 전략에 힘입은 바가 클 것이다. 이 노래의 뮤직비디오와 광고물은 이효리, 노래, 그리고 휴대전화기라는 ‘상품’들에 대한 마케팅을 상호적으로 수행한다(사족이지만, 〈Anymotion〉 영상물은, 1980년대 댄스 아이콘 〈플래시댄스〉 영화에 진원지를 두고, 김완선의 〈나홀로 뜰 앞에 서서〉 뮤직비디오로 복제되었던 버전을 다시 업그레이드한 결과물일 것이다). 올해에 발표된 빅뱅과 2NE1의 〈Lollipop〉, 손담비와 애프터스쿨의 〈아몰레드〉의 경우도 마찬가지 맥락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댄스음악, 나아가 대중음악은 기술 또는 소비자본주의의 발달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어왔다. 하지만 새로운 테크놀로지가 음악에 혹은 그 주변에 유입될 때 항상 모두에게 환영받은 것은 아니었다. 반인간적이고 디스토피아적인 산물로 암암리에 인식되면서 최초에는 진입 장벽이 형성되기도 했으므로. 예를 들어, 아날로그는 따뜻하고 자연스럽다는 인식에 반해 디지털이란 차갑고 인공적이란 인식이 있다. 김완선의 1집 〈오늘밤〉(1986)과 2집 〈나 홀로 뜰 앞에서〉(1987) 등에서는 촌스러우나마 뉴웨이브 댄스음악에서 느낄 수 있는 인공적인 신시사이저 사운드가 담겨있다. 김완선의 보컬은 일반적인 의미의 가창력과는 거리가 있지만, 정확한 음정에서 미묘하게 이탈된 목소리는 어디에도 고착되지 않고 부상(浮上)하는 느낌을 주며 차갑고 기계적인 사운드와 부합되는 것 같다.

최근이라면, 우리는 지금 하나의 트렌드이자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오토튠’을 통해, 기계, 기술의 발전이 인간의 목소리를 어떻게 바꾸고 확장시키는지 목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손담비는 ‘과거’와 ‘미래’를 오간다. 공공연하게 걸어놓은 ‘Back to 80’s'라는 음반제목처럼, 디스코 음악, 뿅뿅거리는 전자음 같은 복고의 테마 위에, 힙합 리듬, 오토튠에 의해 변조된 차갑고 인위적인 목소리로, ‘복고적인 퓨처리즘’의 이미지들을 패치워크하고 있는 것이다.

그 여자가 사는 법

어떤 면에서, 내가 두 회에 걸쳐 이야기했던, 관능적 섹슈얼리티를 전유했던 몇몇 사례들은 여자 가수가 어떻게 살아남았는지에 대한 한 단면을 보여준다. 이들은 대중이 무엇을 원하는지, 최신 유행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이를 정확히 재현해냈던 건 아닐까. 실제로 수많은 이들이 이런 모형으로 데뷔하고, 그 중 몇몇은 대중적 스타로 성공하여 한 시절을 풍미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섹시 콘셉트로 ‘뜬’ 후, 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차후 행로는 불행히도 그렇게 많지 않아 보인다.

▲ 엄정화
그런 점에서 엄정화나 백지영 같은 인물은 (아직까지는) 모범적인 생존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사실 엄정화는 하나의 클리셰인지도 모른다. 연기자와 가수를 오가는 스위치히터로, 음악이 발표될 때마다 강박적이고 작위적이리만큼 외양을 꾸미고 패션과 음악 트렌드로 치장해오지 않았던가. 적당한(?) 선에서 무마되는 외모에 대한 루머들마저도 이젠 엄정화라는 존재의 일부가 되었다. ‘핫’한 소년 아이돌이나, 최신 음악 트렌드들과 접속하는 등 시류에 전략적으로 편승할 줄 아는 안목도 지녔다.

최근작으로 치면 테디, 페리 등의 작곡이나 프로듀싱, 빅뱅 멤버의 피처링 등 YG패밀리가 총출동한 〈D.I.S.C.O〉(2008)처럼. 덧붙이자면, 남성 아이돌과 섹시 여성가수의 콜라보레이션의 사례로, 2008년 음악케이블방송사의 한 페스티벌을 위해 기획된 이효리와 탑의 키스 퍼포먼스나, 최근 〈내 귀에 캔디〉의 백지영과 ‘짐승돌’ 택연의 ‘끈적한’ 협연까지 떠올릴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백지영은 이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자의적이든 아니든, 유혹적인 팜므 파탈와 ‘부러진 날개를 가진 천사’ 이미지처럼 상투적이지만 각인적인 역할들을 맡으며 장수하고 있는 중이다.

▲ 최지선 대중음악평론가
그렇지만 이런 성공 사례들은 그리 흔하지 않다. 최근의 많은 가수들이 연기자로 겸직 또는 이직을 하지만, 애초부터 두 분야를 넘나든 엄정화를 제외하면 성공적인 커리어를 이어가기는 쉽지 않은 것 같다. 이효리처럼 ‘예능’ 이미지로 발판을 삼거나, 폭발하기 쉬운 뇌관과도 같은 사건사고 스캔들 속으로 사라지거나. 다시 말해 이들은 ‘단명’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장수’하지는 않는다. (김완선의 노래 제목을 인용하자면) ‘가장무도회’에서 춤을 추는 ‘삐에로’의 운명인지도 모른다. 이것이 바로 섹시형 여성 가수들(나아가 엔터테인먼트산업)의 현주소이다.

저작권자 © PD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