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크래프트를 통해 본 미디어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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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크래프트를 통해 본 미디어산업
[경계에서] 지원준 독립PD
  • 지원준 독립PD
  • 승인 2009.09.21 16: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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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크래프트라고 하면 OB들은 엄청나게 큰 밴을, YB들은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을 떠 올릴 것이다.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진 모르겠으나, 나는 자칭 YB이므로 오늘의 이야기는 밴이 아니라 게임에 관한 것이다.

스타크래프트(이후 스타)에는 프로토스라는 종족이 있고, 이 프로토스의 최강 유닛이 바로 캐리어(carrier-말 그대로 항공모함의 날아다니는 버전이라고 이해하시면 된다.)인데, 이 캐리어는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바로 ‘알’(정식 명칭은 interceptor)을 채워야 공격력을 갖춘다는 점이다. 그 스스로는 전혀 공격력이 없지만, ‘알(여기서의 알은 卵이 아니라 알맹이의 뜻이다.)’을 가득 채우고 나면 그야말로 하늘의 제왕이 된다.

가격도 비싸서, 대당 미네랄 350에 가스 250(스타를 모르시는 분은 엄청나게 비싸다라고 이해하시면 된다.)에 이른다. 다행히 알값은 아주 싸서 미네랄 25만 있으면 한 대를 뽑을 수 있다. 캐리어 한 대당 최대 8대의 알을 채울 수 있으니, 만약 캐리어를 10대 정도 뽑을 수 있다면, 인터셉터가 하늘을 뒤덮는 장관을 볼 수 있다. 하지만, 매뉴얼 읽어가며 게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 가슴 아픈 해프닝이 생긴다.

100연패의 쓴 맛을 본 뒤 정말 오랜만에 승기를 잡고, 드디어 첫 승을 올릴 수 있다는 감격에 휩싸인 채, 떨리는 손으로 뽑은 캐리어. 상대의 마지막 옥쇄 공격을 맞아 입가에 희미한 미소까지 띄우며 보무도 당당히 캐리어를 출격시켰는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캐리어가 공격을 안 하고 둥둥 떠다니기만 하는 것 아닌가? 중계 방송에서는 최강의 무기였는데, 왜 공격을 안 하지? 당황하는 사이, 전세는 순식간에 뒤집어 지고, 첫 승의 기회는 허무하게 날아가 버렸다. 게다가 상대는 노동 유닛으로 ‘바보’라는 글자 모양을 만들어 놓고 시야를 공유해 주는 센스까지 발휘한다. 이쯤 되면 정말 울고 싶어진다. 이것이 바로 ‘눈물이 앞을 가린다’의 인터넷 용어인 ‘안구에 습기 찬다’의 약자 ‘안습’의 상황이다. 일이 이렇게 된 이유는 간단하다. ‘알’을 채우지 않아서!

그런데 정말로 어처구니 없는 일은, 내가 스타 초보시절에 범했던 실수를 방송을 주관하는 기관에서 똑같이 되풀이 하고 있다는 점이다. ‘알’을 한영사전에서 찾아보면 첫번째가 content다. 우리가 제작하는 contents는 결국 ‘알’의 추상화된 개념일 뿐이다. 최근 몇 년동안 한국에서는 여러 대의 캐리어가 DMB, IPTV라는 이름으로 개발돼 나왔다. 그리고 앞으로 몇 년 안에 모든 방송의 디지털화라는 또 다른 캐리어가 나올 것이다. 신기한 점은 어느 누구도 그 캐리어에 알을 채울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캐리어 뽑는데 어마어마한 돈을 투자해 놓고는 싼 값에 양산이 가능한 알을 위해서는 아무도 투자하지 않는다. 도대체 내가 왜 interactive contents네 T-commers네 디지털 전송 방식이네 하는 것들에 대해서 공부를 했는지 후회가 될 지경이다. 더욱 신기한 것은 가입자 수가 늘지 않는다고 투덜대면서 어느 누구도 그 원인을 파악하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옛날 LP판이 튀듯이 지상파 재전송 이야기만 하고 있다. 거기에 더해서 이제는 유럽에 한국의 DMB 기술을 팔겠단다.

▲ 지원준 독립PD
이상하다. 원래 DMB는 미국 방식의 단점인 이동 수신 장애를 보완하기 위해서 개발된 것 아니었나? 이동수신에 아무런 장애가 없는 유럽방식을 쓰고 있는 나라에서 DMB기술을 뭐하러 사나? 아무리 한국인이 망각의 달인이라지만, 자기네들이 결정한 일을 자기네들이 잊어버리면 어쩌자는 것인가? 설사 ‘영업사원의 투혼’을 발휘해 판매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유럽의 방송인들이 디지털 콘텐츠를 개발하고 제작하는 시기만 앞당겨 줄 뿐이니, 디지털 콘텐츠에 대한 대비가 전혀 없는 우리에겐 그 역시 재앙일 뿐이다.

스타 최고의 안습이라는 ‘알 없는 캐리어’가 한국 방송의 미래라고 생각하니, 그저 암담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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