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나온 것은 잘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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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책 ‘규칙도 두려움도 없이’ 낸 이여영 전 중앙일보 기자

▲ 이여영 전 중앙일보 기자
“〈중앙일보〉를 나오고 나서 내 인생이 실패했다는 생각에 몇 날 며칠을 화장실에서 펑펑 울었어요. 혼자 설 수 있을 것이라고 상상도 못했죠. 하지만 자존심 지키면서 사는 게 옳았다는 확신이 들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중앙일보〉를 나온 것은 잘한 일이었습니다.”

보수언론에서 라이프스타일과 트렌드 전문기자로 활약했던 젊고 패기 넘쳤던 기자. 지난해 봄 촛불 정국에서 ‘중앙일보가 기록하지 않는 것들에 대하여’라는 블로그의 글로 자사의 보도행태를 꼬집었던 그의 글은 단 세 시간 만에 30만 건의 조회 수와 1000여건의 댓글을 기록했다. ‘중앙일보 기자가 본 촛불 집회’라는 제목으로 인터넷 포털사이트 다음에 게재된 같은 글은 그 이상의 반향을 일으켰다. 결국 그는 회사에서 쫓겨났다.

그로부터 약 1년이 지난 2009년 가을, 이여영 전 중앙일보 기자가 〈규칙도 두려움도 없이〉(에디션더블유)를 펴냈다. 책에는 〈헤럴드미디어〉, 〈중앙일보〉 등 그가 3년간 경험했던 기자 생활에 대한 소회와 20대 후배 여성들에 대한 조언이 담겨 있다. 그가 책을 통해 하고자 한 이야기는 무엇일까.

“보수언론의 오너와 오너 일가, 소속 그룹에 대해 침묵하는 직장, 권력에 비참하리만치 취약한 언론사, 한 목소리를 내지 않는 구성원을 가차 없이 내치는 조직의 모습에서 ‘아, 떠나야 할 때가 오고 있구나’하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는 회사에서 인정받는 계약직 기자였다. 그가 주도적으로 기획했던 J-스타일은 패션·스타일·와인과 음식·직장 생활·돈 등 20~30대가 관심 있을 만한 이슈를 잘 다뤘고, 한 달도 되지 않아 지면은 성공적인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자사의 보도행태에 비판적인 그에게 〈중앙일보〉는 기자로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았다.

▲ 책 <규칙도, 두려움도 없이>(이여영, 에디션더블유, 2009)
그의 행보는 예정된 수순이었는지 모른다. 2007년 5월 말, 삼성그룹 신입사원이 쓴 사직서가 인터넷에서 화제를 뿌리던 무렵 그는 삼성을 포함해 대기업의 기업문화를 비꼬는 기사를 썼다. “이런 기사가 〈중앙일보〉에 실리는 것이 신기하다”는 반응이 올라올 무렵, 폭발적인 조회수를 기록했던 그 기사는 당일 야간 편집국장을 맡은 경제부장의 지시로 삭제됐다.

초여름의 기사 삭제 사건 이후, 디지털뉴스팀에서 근무하던 이 기자는 소속 언론사와 한 대기업의 관계에 대해 고민했고 결국 편집인의 강연 자리에서 ‘성역’을 건드리고 만다. “〈중앙일보〉가 삼성으로부터 자유로워지지 않으면, 영원한 이류 언론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편집인의 얼굴은 붉으락푸르락하게 변했고, 결국 그 자리에서 경고를 받았다. 서서히 조직의 눈 밖에 날 시점이었다.

이 기자는 “내 문제의식이 조금 과장되거나 왜곡된 것은 아닐까하는 자성도 번번이 했지만 미국의 〈뉴욕타임스〉가 객관적으로 자기 회사나 모든 기업, 관계 회사 등에 대해 다루는 것을 볼 때마다 내 확신은 분명해졌다”고 소신을 밝혔다. 그는 “성역에 관한 수호 의지에서 대한민국의 언론과 재벌을 따를 자들은 없다”고 단호하게 꼬집는다.

〈규칙도 두려움도 없이〉는 ‘20대 여자와 사회생활의 모든 것’이라는 부제에 걸맞게 20대 직장생활을 하는 여성들에 대한 조언을 담고 있다. 언뜻 실용서로 보이지만 그가 이야기하는 한국사회의 남성에게 던지는 외침은 결코 가볍지 않다. ‘남자 선배의 본드걸이 될 것인가’ ‘당신을 예쁜 후배라고 소개하는 상사’와 같은 이야기에서는 그가 직장 여성으로 겪어야 했던 수치심이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이여영 씨는 출판사의 권유에 따라 한국의 정치와 언론환경에 대한 이야기를 100페이지 가량 덜어냈다. 남은 글을 자신의 블로그(http://blog.daum.net/yiyoyong)에 연재할 계획이다. 앞으로의 계획도 블로그를 통한 1인 미디어로서 활동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중앙일보〉가 제 직함에서 지워지고 난 뒤 인터뷰 대상 섭외도 무척 힘들었습니다. 그동안 매체 파워를 등에 업고 얼마나 건방졌을지…. 하지만 프리랜서로 밖으로 나와 보니 더 큰 세계가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오히려 프리랜서 기자로서의 1년이 지난 3년의 기자생활보다 얻은 게 훨씬 많아요. 앞으로 기자라는 직업의 미래가 없다는 게 느껴질 정도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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