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자 도덕성’ 강조하던 뉴스 다 어디 갔나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보도비평] 인사청문회 ‘단순 전달’ 그친 KBS·MBC·SBS

각종 의혹이 제기됐고 일부는 해명을, 일부는 위법사실을 시인했지만 그 뿐이었다. 방송뉴스가 일주일가량 진행된 고위공직자들의 인사청문회를 보도하는 태도는 딱 거기까지였다.

‘인사청문회 정국’에서 방송뉴스의 보도행태가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쟁점 부각은커녕 인사청문회를 단순 전달하는 데 그쳤다는 지적이다. 참여정부 시절, 인사청문회에서 ‘도덕성’이 주요쟁점으로 부각되던 것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당시 방송 3사는 앞 다퉈 위장전입 사실 등을 집중 보도했고, 공직자에게 엄격한 잣대를 적용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지금의 방송뉴스에서 그러한 문제제기를 찾아보기는 어렵다. “도덕성보다 능력 검증이 우선”이라는 한나라당과 조중동의 ‘뻔뻔함’에는 못 미치지만, 방송뉴스를 보면 ‘위법사실을 사과하면 그만’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 9월 20일 KBS <뉴스9>
KBS가 청문회 기간 동안 메인뉴스인 <뉴스9>에서 내보낸 관련 리포트는 하루 1~2건. 그마저도 의혹 추궁과 후보자의 사과를 나란히 전달한 기사가 전부다. (14일 ‘대법관 후보자 부동산 투기 추궁…“법 위반 인정”’, 17일 ‘법무부 장관 후보자 ‘위장 전입‘ 사과’ 등)

심지어 여성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가 열린 지난 18일, KBS는 청문회에서 제기된 의혹의 일부만 보도하는 모습도 보였다. 백희영 여성부 장관 후보는 아들의 병역기피 의혹과 다운계약서 작성 의혹, 부동산 투기의혹이 논란이 됐지만 이날 <뉴스9>는 부동산 투기의혹만 지적하며 백 후보자의 해명을 전했다.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MBC <뉴스데스크>나 SBS <8뉴스>도 ‘단순 중계식’ 보도라는 점에서 KBS와 차별성을 보이지 않았다. MBC는 14일 ‘위장전입 ‘이중 잣대’ 논란’ 리포트에서 “이전 정권에서는 여당이었던 민주당은 관대했고, 한나라당은 엄격했다”며 여야의 이중 잣대를 꼬집었지만, 위장전입이 공직자 임명에 전혀 걸림돌이 되지 않는 현 정부의 안일한 도덕관에는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정운찬 국무총리 후보자의 인사청문회는 ‘세종시 논란’이 쟁점으로 부각되면서 탈세, 병역기피, 거액 후원금 등 ‘도덕성’ 검증은 상대적으로 뒤로 밀렸다. 방송 3사는 청문회 전날인 20일부터 메인뉴스에서 세종시가 청문회의 쟁점이 될 것이라고 운을 띄웠다. (KBS <뉴스9>, ‘내일 정운찬 총리 인사청문회…‘세종시’ 쟁점’ 등)

과거와 달리 방송뉴스가 고위공직자 검증에 적극적이지 않다는 것도 문제로 꼽힌다. 공직자의 의혹에 대해 직접 취재하는 내용이 전무하고, 정치권의 문제제기에만 의존한다는 지적이다. KBS 탐사보도팀이 유일하게 정운찬 총리 후보자의 논문 이중게재 사실을 밝혀냈지만, 각각 24번째, 15번째 리포트로 나가 주요 시간대에는 보도되지 못했다.

▲ 9월 17일 SBS <8뉴스>

최근 방송뉴스의 공직자 검증이 부실한 이유에 대해 김정대 미디어행동 사무처장은 “미디어환경의 정책 변화가 많은 상황에서 방송사도 정권의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해 스스로 비판적 보도를 자제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면서 “언론의 독립성보다 산업적 측면을 강조하는 이명박 정부의 시각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혜란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소장은 “<PD수첩> 사건과 같이 정치권력이 특정 보도에 대해 보복하는 방식이 없어지지 않는 이상 근본적인 개선은 어려울 것”이라며 “결국 이러한 후유증 때문에 언론 스스로 비판적 날을 세우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내부에서 자발적으로 ‘조정자’ 역할을 하는 움직임도 보인다”고 지적했다.

정연우 세명대 교수는 “KBS 보도가 전체 방송보도의 흐름을 주도하는 경향이 있다”며 “경영진 교체 후 KBS의 보도 행태가 (정권 비판에 무딘 쪽으로) 바뀌면서 이러한 변화가 다른 방송사의 보도행태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성원 KBS노조 공정방송실장은 “과거에 비해 언론사가 개인정보를 입수하는데 한계가 있고, 의원들이 공개한 자료를 분석해 보도하는 것도 시간적인 제약이 있다”면서 “비판·감시 기능을 높이기 위해서는 일상적인 탐사보도 시스템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 실장은 “고위공직자의 위법 사실을 고발하는 보도가 많았던 정연주 사장 시절의 탐사보도팀 수준으로 인원을 늘려야 할 것”이라며 “공영방송이 제 역할을 하려면 탐사보도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지난 18일 논평을 통해 “공직자의 높은 도덕성이 시대정신이라고 말하고, 사퇴하더라도 범법은 끝까지 추궁해야 한다는 기자들은 지금 어디에 있냐”며 “권력 앞에 고개 숙인 지상파 방송사들의 초라한 모습이 참으로 비겁해 보인다”고 꼬집었다.

민언련은 또 “인사검증을 제대로 하지 않은 청와대를 비판하고, 시민단체의 비판을 전하며, 현장에서 위장전입 의혹을 파헤치던 기자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느냐”며 “지금이라도 자격 없는 공직자와 그들을 밀어주는 이명박 정권을 제대로 비판하라”고 촉구했다.

저작권자 © PD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