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상대로 명예훼손ㆍ저작권 주장하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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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상대로 명예훼손ㆍ저작권 주장하는 나라
[시론] 하승수 제주대 법학부 교수
  • 하승수 제주대 법학부 교수
  • 승인 2009.09.23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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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정부 들어서 국가정보원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지난번에 교수들의 시국선언이 이어질 때에 국가정보원 직원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는 교수들이 있었다. 국가정보원이 교수들의 시국선언 동향을 파악하는 게 본연의 임무는 아닐 텐데, 이상한 일이었다.

그런데 들리는 이야기들은 더욱 흉흉했다. 결국 박원순 변호사의 입을 통해 사찰 의혹이 제기되었다. 그런 의혹이 제기되었으면 국가는 그런 의혹에 대해 철저하게 조사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런데 국가는 국가정보원의 말만 믿고 박원순 변호사에 대해 명예훼손을 이유로 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만약 박원순 변호사의 말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에 국가는 정당한 문제제기를 한 국민에 대해 소송을 들이대며 협박한 꼴이 된다. 그렇게 되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명예는 어떻게 될 것인가?

게다가 국가가 국민에게 명예훼손을 주장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법리적으로도 무리하다는 비판이 많다. 만약에 법리적 이유 때문에 대한민국이 소송에서 패소한다면, 무리한 소송을 제기한 대한민국은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 경향신문 9월18일자 3면.
어처구니없는 일은 또 있다. 국가가 정보를 공개하면서 국민을 상대로 ‘저작권법 위반’ 운운하며 정보의 확산을 막으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1998년 정보공개법이 시행된 이후에 처음 겪는 황당한 일이다. 공무원이 국민의 세금으로 일을 하면서 작성하고 관리하고 있는 기록들은 공공의 것이고, 궁극적으로는 주권자인 국민의 것이다. 그런데 그런 기록들을 공개하면서 국민을 상대로 저작권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일은 지난 7월에 일어났다. 시민단체인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가 국가기록원에 대해 기록목록을 청구했더니, 국가기록원이 정보를 공개하면서 “제공되는 기록물은 저작권법에 의해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라며 허락을 받지 않고 기록을 배포하면 저작권법위반으로 처벌될 수 있다는 주장을 한 것이다. 그리고 엑셀파일 형태로 되어 있는 기록물을 공개 받으려면 540만원의 수수료를 내라는 내용도 통지서에 들어 있었다.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이후, 다른 정부부처가 정보를 공개하면서도 저작권 주장을 한 적이 있었다. 이런 이야기들이 반복되는 것을 보면 일회적인 일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의도는 분명하다. 보다 많은 시민들이 정부가 하는 일에 대해 아는 것을 막으려는 것이다. 최근에는 전자파일 형태로 정부기록들이 생산되면서 국민들이 이런 정보를 공유하기가 아주 쉬워졌다. 예전에는 인터넷에 정보를 올리려면 문서를 스캔으로 떠서 올려야 했지만, 지금은 전자파일 형태로 정보를 공개받기 때문에 공개 받은 정보를 인터넷에 쉽게 올릴 수 있다. 그러면 정보공개청구를 해서 정보를 받은 시민 뿐만 아니라 다른 시민들도 정보를 쉽게 접할 수 있다. 특히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같은 단체는 공개 받은 정보를 블로그에 올려 시민들과 공유하고 있다. 국가가 저작권법을 주장하는 것은 이런 것을 막겠다는 것이다. 정보가 확산되지 못하게 차단하려는 것이다.

그렇지만 정부가 생산한 기록들이 저작권법의 대상이 되는 창작물인 지도 의문이지만, 이런 식의 발상을 했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놀라운 일이다. 주위에서 저작권법을 잘 아는 변호사들에게 상의를 했더니, 저작권법 해석 문제를 떠나서 국가가 국민을 상대로 저작권을 주장하겠다는 발상이 너무나 황당하다고 입을 모은다.

▲ 하승수 제주대 법학부 교수

무엇이 두려운지 모르겠다. 국민들이 아는 것이 그렇게 두려운가? 그래 소송도 좋고 고소해도 좋다. 국가가 국민 위에 군림하려고 작정한 것이라면, 그리고 이 정부의 고위 공직자들이 공복(公僕)으로서의 최소한의 양식도 상실한 것이라면 소송을 당하고 고소를 당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점 하나만은 분명하게 하자. 진정으로 국가의 명예를 훼손하는 사람은 당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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