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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LA=이국배 통신원

우리나라에도 이미 널리 알려진 마이클 무어 감독의 다큐멘터리 ‘식코’(2007년)의 도입부는 손가락 두개가 절단된 어느 가난한 노동자의 이야기에서 시작된다. 의사는 봉합 수술비가 없다면, 두개의 손가락 중 어느 손가락을 선택할 것이냐고 노동자에게 묻는다.

이 다큐멘터리는 세계적으로도 최악의 상태에 있는 미국의 의료보험 실태를 고발하면서, 미 본토를 비롯해 미국령 전체에서 소위 ‘풀 커버러지’가 되는 국민 의료 보험 혜택은 테러범들을 수용하는 관타나모 수용소밖에 없다는 아이러니를 보여주면서 끝을 맺는다. 하지만 절단된 손가락 중 어떤 손가락을 재생시킬 것인가를 고민하게 만드는 그 의사의 질문은 지금 이 시간까지도 여전히 미국 국민 전체에게 숙제로 남아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지난 20일 건강보험 개혁을 위한 여론몰이 총력에 직접 나섰다. 대통령 스스로가 미국의 대표적인 방송사 5개 시사 프로그램에 겹치기 출연을 해가면서까지 자신의 입장을 국민들에게 호소할 수밖에 없을 만큼 다급한 상황이다. 이제는 더 이상 양보할 여지도 남아있지 않다. 백악관이 의료보험 개혁의 칼을 뽑았으나 후퇴를 거듭한 끝에 칼은 자꾸만 무디어질 수밖에 없었고, 상대 당은 백악관이 칼을 칼집에 도로 넣기로 했다고 공언하고 나서고 있다.

반대로 오바마 행정부를 지지했던 세력은 왜 그렇게 겁을 집어먹고 칼을 무디게 쓰고 있냐고 백악관을 질타한다. CBS의 <페이스 더 네이션>, NBS의 <언론과의 만남>, ABC의 <디스 위크>, CNN의 <스테이트 오브 더 유니온>, 국제 라틴계 방송 유니비전의 <알 푼토>와의 인터뷰에 동시에 출연할 수밖에 없었던 지난 주말은 오마바 대통령의 건강보험개혁 의지의 강력한 표명인 동시에 그의 다급함이 어디까지 와 있는가를 시사해 주는 반증으로 해석할 수 있다. 물론 이번 주부터 의회가 개원하면서 의료보험 개혁 관련 법안에 대한 본격적인 손질이 이루어진다는 시점상의 중요성도 있지만 말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출연한 방송들에서 “나는 의료보험 개혁이 애매한 세수 확대를 불러온다는 주장을 전적으로 거부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이야기가 나오게 된 배경은 바로 일주일 전인 지난 12일 미국의 보수주의 단체인 ‘티 파티어(Tea Partier)’, 그리고 ‘프리덤 웍스(Freedom Works)’ 관계자 등 2천여 명이 워싱턴에서 공공의료보험 도입은 “자유의 죽음”, “사생활 통제”, 그리고 “세금인상”일 뿐이라면서 (일부는 심지어 총기를 소지하고) 건강보험 개혁 반대 시위를 벌인데 기인한다.

국가적 차원의 전 국민 건강보험 시대를 열자는데 “자유니 사생활 통제니 무엇이 어떻게 연결되는 것이기에 이런 종류의 구호가 나오나”라고, 미국 국민이 아닌 사람들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있다. 미국 국민들 중에서 공화당적인 정서를 갖고 있는 일부 시민들은 의료 보험을 비롯해 국가적 차원에서 시행하는 모든 정책은 결국은 큰 정부를 지향한다는 전제를 인정하는 것이고, 나아가 큰 정부는 곧 세수의 확대를 의미하고, 결과적으로 그것이 개인이 결정하거나 노력해서 해결해야 할 사안(개인 의료보험을 지불할 능력이 없는 개인은 그 개인이 게을러서 그렇다는 전제를 사실상 인정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을 국가가 결정한다는 의미에서 ‘자유의 침해’라는 논리로까지 비약하는 경향이 있다.

문제는 정치적인 입장에 따라 이러한 논리적 비약이 공화당적인 정서를 갖는 일부 국민들에게는 어느 정도 설득력을 갖는다는 데에 있다. 미국인들은 유럽적 봉건제의 역사가 없었던 관계로, 정서상 계층적인 사고가 매우 취약한 문화적 성격을 갖고 있다.

즉 미국인 모두는 평등하며, 평등한 기회(equal opportunity)를 부여 받고 살아가고 있다는 착각(?) 내지 자부심을 갖는 문화가 건국 초기부터 뿌리 깊게 있어서 유럽이나 아시아권의 시민들이 볼 때는 분명히 계층적인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안들이 인종적인 문제나 이민자 집단내의 문제로 전환되어 표출되는 사회적 경향을 보인다. “내가 왜 피부색도 다른 저 보기 싫은 게으른 종업원 때문에 세금을 더 내야 하는가”라는 생각은 미국 사회에서 의외로 강력한 의문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의료 보험 개혁 시도 80년의 세월이 극복하지 못한 가장 큰 걸림돌이 여기에 있다.

국민의 15%, 즉 4천 5백만(만약 인구 센서스에 잡히지 않는 모든 사람을 포함한다면 이 보다 더 많은 수가 추산될 것임에 분명하다. 실제로 한인을 비롯한 이민자 사회의 경우에는 무보험자 비율이 이에 비교될 수 없이 높다)이 의료 무보험자이고, 가구당 1천 달러 이상을 지불해야 하는 민영 보험료 때문에 미국 기업의 국제 경쟁력이 크게 떨어지고 있다는 오바마의 주장은 앞에서의 질문을 극복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애초부터 오바마 행정부의 건강보험 개혁안은 정부가 운영하는 공공보험이 민간보험을 완전히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소위 퍼블릭 옵션(public option), 즉 공공보험을 일부만 도입해 민간보험과 경쟁하게 만든다는 구상이었다. 그나마도 이제는 포기를 시켰다는 이야기가 오바마 개혁 반대론자들로부터 들려오고 있다. 이미 여러 보도를 통해 알려진 것처럼 미국의 보험회사나 제약회사가 지난 2000년 이후 미국 상하원에 뿌린 로비 자금은 자그마치 약 3억 7천만 달러였다. 그 중 절반 가까이가 보건 관련 법안들을 처리하는 위원회에 집중됐었다.

건강 보험 개혁은 오바마 개혁 정책의 출발점이자 분수령이다. 그 개혁의 시동이 어느 정도의 성과를 보아야만 계속해서 이어질 금융권 개혁과 총기 규제법안 등 오마바 행정부의 산적한 국내 정책 개혁 드라이브가 탄력을 받게 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손가락 두 개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인지, 손가락 모두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인지 분명치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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