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건비 절감 말도 안되는 건 KBS도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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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홍미라 전국언론노조 KBS계약직지부장

100일 넘게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촉구하고 있는 전국언론노조 KBS계약직지부 홍미라 지부장을 만났다. 임시 노조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는 KBS 신관 로비 흡연실에서 만난 홍 지부장은 “비정규직 문제가 지난 7월에만 반짝 주목받고 조용히 묻히는 경향이 있지만, KBS는 공영방송사라는 특성이 있어 조금 나은 편”이라며 “이병순 사장과 KBS 경영진이 상식적으로 생각해줬음 좋겠다”고 말했다.

- 최근 KBS계약직지부가 창립 100일 맞았다. 현재 노조 활동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아침 출근시간과 점심시간을 이용해 매일 피켓시위를 한다. 하지만 지난 11일 이사회가 열린 수원연수센터 앞에서 피케팅을 한 이후에는 사측이 좀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 같다. 경영개혁단 주재로 연봉계약직이 소속된 부서의 팀장급 이상을 소집해 대책회의를 했고, 회의에서 비정규직의 단체행동을 차단하라는 지침이 내려진 것으로 알고 있다. 실제 지난 18일 아침 선전전 때는 안전관리팀 직원들이 본관 계단에서 피켓시위를 하는 조합원들을 끌어냈다. 이날 조합 임시사무실도 일시적으로 폐쇄됐지만 KBS 정규직 노조의 항의로 다시 개방되기도 했다.”

▲ 홍미라 전국언론노조 KBS계약직지부 지부장 ⓒPD저널

- 사측이 비정규직 노조의 투쟁을 껄끄럽게 여기고 있는 것 같다.

“아직 근무하고 있는 조합원들은 단체 활동을 자제하라는 압박을 받는다. 울산방송국의 한 조합원은 서울에서 열리는 집회에 참석하려고 휴가를 냈다가 감봉을 당하기도 했다. 이후에도 휴가를 반려하는 일이 종종 생긴다고 들었다. 특히 지난 8~9월 사이 자회사 이관이 가까울 때는 아침, 점심 피케팅 참여에 대해서도 경위서 제출을 요구했고, 인격적으로 모욕적인 말을 하는 관리자도 있었다.”

- 지난 2일부터 사측과 단체협약 체결을 위한 교섭을 진행 중인데.

“형식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사측은 공영방송이라는 이미지 때문에 형식적으로 교섭에 임하는 것이지,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 계약직지부 조합원 중에는 해고자가 많은데, 이분들이 조합원이다 아니다를 놓고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이미 회사의 속마음은 드러났다고 본다. 내년 6월이면 연봉계약직의 계약해지가 모두 끝난다. 그 때까지 시간을 끌면서 계약기간이 만료됐기 때문에 모두 해고했다는 명분을 만들려는 것 아니겠나.”

- KBS계약직지부가 밝힌 바에 따르면 9월말 현재 해고자는 201명이다. 현재 활동하는 조합원 숫자는 얼마나 되나.  

“회사로부터 직접 자료를 넘겨받은 것도 아니고 자체적으로 통계를 냈기 때문에 실제숫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우리가 파악한 바로는 9월까지 201명이 해고됐다. 자회사 전환이나 업무이관에 동의한 분들도 ‘KBS로부터는’ 해고됐기 때문에 이에 포함된다. 매일 진행되는 피케팅 등 주도적인 활동을 벌이는 조합원은 집행부 포함 20여명이다. 아직 근무 중인 조합원들까지 최대한 결합하면 50여명이 넘고, 지역국에도 30여명의 조합원이 있다.”

- KBS는 계약이 해지돼도 소속만 바뀔 뿐 같은 업무를 할 수 있다고 연봉계약직을 설득해왔다. 굳이 자회사 전적을 거부하고 투쟁하는 이유는 뭔가.  

“소속이 바뀌는 게 가장 큰 이유다. 우리는 그동안 KBS였기 때문에 박봉을 견디며 일해 왔고, 공영방송이기 때문에 언젠가 비정규직 문제도 해결될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있었다. KBS가 이렇게 앞장서 비정규직을 당장 내칠 줄은 몰랐다. 거기에 대한 배신감도 있다. 또 해고된 분들은 한때 파견직으로 일해 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어떤 취급을 받는지 잘 안다. 정규직과 똑같은 처우를 바라는 것이 아니지만 연봉계약직일 때로 회사에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내는 것이 어려웠다. 도급업체 소속으로 일한다면 아예 아무 말도 할 수 없을 것이다.

▲ KBS가 지난 18일부터 전국언론노조 KBS계약직지부의 아침 선전전을 통제하고 나서면서 매일 아침 본관 앞에서는 크고 작은 실랑이가 벌어진다. ⓒKBS계약직지부

- 자회사 전적이나 업무이관에 동의한 연봉계약직의 처우는 회사가 밝힌 대로 이전과 같거나 나아졌나.

“지난 1일 설립된 KBS 미디어텍으로 소속이 변경된 연봉계약직은 아직 계약서도 보지 못했다. 전적에 동의해서 자회사로 옮긴 직원들 중에서도 사직하는 분들이 꽤 있다. 회사가 제시했던 것보다 조건이 더 열악하기 때문이다. 수당 등 고용조건이 전보다 나빠졌다는 사례가 속속 확인되고 있다. 하지만 전적에 동의해 소속을 옮긴 분들의 처우에 대해서는 노조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없어 안타깝다.”

- 이병순 사장은 얼마전 국회에서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면 KBS는 또 다른 방만 경영의 고착화를 벗어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어불성설이다. 이 사장과 사측은 연봉계약직 대책이 인건비 절감효과가 있다고 하지만 비정규직 420명의 평균 연봉은 정규직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2000만원 수준이다. 그중에 고액 연봉자 일부를 제외하면 월급 100만원을 갓 넘긴 사람들이 상당수다. 이 정도로 인건비 절감효과를 본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경영개혁단도 솔직하게 말한다. ‘경영효율화에 얼마나 도움이 되느냐’고 물으면 ‘실제로 도움 안 되지만 (자회사나 도급업체 등) 외부용역비로 들어가면 인건비로 책정되지 않아 방만 경영을 회피할 수 있다’고 말이다.”

- 게다가 KBS는 지난 7월 비정규직법 적용을 앞두고 공공기관 중에서도 앞장서 연봉계약직을 해고했는데.

“이병순 사장이 전임 사장의 ‘방만 경영’과 차별화되는 모습을 보이기 위해 그런 것이라고 본다. 흑자전표를 내기 위해 무리하게 추진한 부분이 있다. 정부가 지난 7월 1일 비정규직법 시행을 앞두고 ‘100만 해고설’을 유포했지만 실제 민간 기업들은 미리 대책을 세워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와 무기계약직 전환을 시행한 반면, 공공기관에서는 해고사태가 잇따라 발생했다. KBS도 정부의 발표에 맞춰 비정규직을 해고한 것이라고 본다.”

- KBS계약직지부가 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시급한 것은 계약만료일이 다가오는 연봉계약직 사원들의 해고를 중단하라는 것이다. 9~10월에 계약해지자가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해고자들의 원직 복직, 대량해고 철회, 비정규직 문제 해결 등을 촉구하고 있다.

▲ 홍미라 전국언론노조 KBS계약직지부 지부장(가운데). ⓒKBS계약직지부

- 개인적으로는 지난 12일 지부장에 선출됐다. 결심이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지난 1999년부터 시청자상담실에서 상담업무를 했다. 10년 동안 계약을 반복갱신하며 근무해왔는데 지난 6월 갑자기 외부업체로 이관된다고 해 이를 거부하고 7월 1일 해고되면서 (KBS계약직지부의 전신인) 기간제사원협회 활동을 시작했다. 지부장을 맡게 된 것은 상당히 부담스럽다. 이제 시작하는 조직이다 보니 더 그렇다. 아직 가족들을 설득하지 못한 상황이라 힘들긴 하지만 조합원들 가운데는 나보다 열악한 환경에 처해 있는 분들이 더 많다. 그런 분들보다는 편한 상황이니, 이 사람들보다 좀 더 일하고 좀 더 앞서 있는 것 뿐이다.

- 조합원 다수가 사실상 ‘실직 상태’인데 생활은 어떻게 꾸려가나.

“조금씩 차이가 있겠지만 실업급여로 생활하고 있다. 실업급여 지급 기간이 끝난 조합원들은 개인적으로 아르바이트나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특히 결혼하고 아이까지 있는 조합원들은 훨씬 더 절박하다. 집에서 가장 역할을 하는 분들은 당장 돈을 벌어야하니 미안하다며 동참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 곧 추석이다. 해고된 조합원들에게는 명절이 더욱 힘겨울 것 같은데.

“가족에게 해고 사실을 알리지 않은 조합원들이 꽤 있다. 추석 때 이 얘기를 어떻게 꺼내야할지 고민하고 있다. 또 부모님을 뵈러 고향에 가는 비용을 걱정하는 분들도 있고, 선물을 드려야하는데 여건이 안 되니 고민하는 분들도 많다.”

- 앞으로의 계획은.

“회사의 방침이 그런 것이지 KBS 정규직 사원들이 비정규직 해고에 동의하고 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이미 1000여명이 ‘고통 분담’에 동의한다는 서명을 했는데, 앞으로도 그 분들의 지지를 이끌어내는 게 숙제다. 또 내년 6월이면 연봉계약직 사원들의 계약이 모두 끝나기 전에 되도록 올해 안에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해야한다고 본다. 오는 10~11월 사장 연임정국에서 총력 투쟁을 벌일 계획이다. 잘 될 거라고 믿는다.”

- KBS에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병순 사장과 KBS 경영진이 상식적으로 생각해줬음 좋겠다. 성숙한 사회에서는 약자들을 어떻게 대하는지 어르신들이니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어른의 상식으로 역할과 의무를 생각해보길 바란다. 정치적인 부분이나 흑자전환 등을 떠나 사람이 다치지 않게 생각해줬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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