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기획] KBS와 BBC, NHK는 다르다(2-끝)

여권이 방송구조 개편을 시도하면서 영국과 일본의 공영방송 BBC와 NHK를 모델로 KBS 위상을 재정립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그러나 언론계 안팎에선 NHK와 BBC의 성격은 완전히 다르며 “여권이 제대로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비판한다. <PD저널>은 여권이 현재 KBS와 BBC·NHK의 공영방송으로서의 위상 차이를 결정짓는 요인으로 꼽고 있는 ‘재원’과 보도프로그램 등을 대하는 ‘태도’를 두 차례에 걸쳐 짚어본다. <편집자>

BBC 재원의 대부분인 수신료도 NHK와 마찬가지로 의회의 승인을 거쳐 최종 책정되지만, NHK와 달리 의회가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진 않는다. NHK의 수신료는 사내 최종 의사결정기관인 경영위원회가 의결해 총무대신에게 제출되면 그의 수리를 거쳐 내각을 경유, 의회에 제출돼 최종 승인되는 구조다.

반면 BBC의 수신료 책정은 문화미디어스포츠부와 재무성, BBC의 3자 협상을 통해 결정된다. 특징은 수신료 책정에 정부가 주도적 역할을 한다는 점으로 의회의 개입에 의한 직접적인 영향력은 사실상 없다. 운용 감독 역시 BBC 경영위원회와 문화부 장관이 맡는다.(정보통신부 2007, 수신료 현실화와 관련된 방송환경 및 이해관계자 등의 분석 132쪽)

물론 BBC에 대한 의회의 압력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실례로 지난 2002년 미국의 조지 부시 대통령과 영국의 토니 블레어 총리가 이라크 전쟁 준비에 한창일 때, BBC의 대표적인 탐사프로그램인 <BBC 파노라마>는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는 사람들 7명의 목소리만을 담은 50분 분량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제작했으며, 2003년 이라크 전쟁 발발 이후 블레어 정부를 비판하는 보도로 집권당의 분노를 샀다.

▲ 서울 여의도 KBS 본관 ⓒKBS
이후 블레어 정부는 그렉 다이크 당시 BBC 사장을 쫓아내는데 성공했고 이후 BBC는 정부의 예산 삭감과 민영화 위협 등에 시달렸다. 그러나 영국의 시민들은 85%에 달하는 지지율로 BBC의 손을 들어줬고, 이후 블레어는 권좌에서 물러났다.

이처럼 의회의 직·간접적인 압력 행사의 가능성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BBC가 NHK와는 달리 민감한 정치 현안 등을 다룰 수 있는 배경은 정치적 중립과 공정성을 보장하는 장치가 마련돼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BBC는 국왕의 칙허장(Royal Charter)을 통해 정치적 중립을 보장받고 있으며, 편집 가이드라인에서 다양성과 공정성의 가치를 추구하기 위한 표준을 꼼꼼히 마련해두고 있다. 단순한 기계적 중립을 떠나 정치 쟁점을 정확하고 공평히 다뤄야 한다는 것이다.

이봉수 세명대 교수(언론학)는 지난 2007년 7월 <프레시안>에 기고한 <KBS는 왜 BBC가 못 되나>에서 지난 2003년 런던대 골드스미스 칼리지 심포지엄에 참여한 당시 그렉 다이크 BBC 사장이 “집권당은 언제든 그들의 노선을 지지하도록 압력을 넣었지만, 이를 거부해 온 게 BBC의 역사”라는 점을 강조했다고 밝혔다. 또 다이크 사장 자신은 영국의 이라크 참전을 지지했지만 BBC 가이드라인에 따라 공정보도를 이끌어낼 수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그렇다면 NHK에는 민감한 정치 현안에 대한 의견 다양성 등을 보장할 장치가 없는 걸까. 일본 방송법 제3조의 2 제1항은 ‘의견이 대립하고 있는 문제에 있어서는 가능한 다각도로의 논점을 명확히 할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른바 ‘정치적 공평’ 기준이다. 이는 NHK뿐 아니라 민방에도 적용되는 규정이다. 그러나 일반적 훈시(訓示) 규정처럼 간주되는 이 조항에 의해 NHK 관계자들은 국회 청문회장에 서거나 ‘엄중 주의’ 등의 행정처분을 받기도 한다.

한영학 일본 훗카이가쿠엔(北海學園)대 법학부 전임강사는 지난 2005년 월간 <신문과 방송>에 기고한 글에서 “의원내각제 하에서 정부가 직접 방송에 대한 감독, 규제를 담당하고 프로그램의 정치적 공평성 여부를 판단하기 때문에 2001년 위안부 문제를 다룬 NHK 프로그램과 같이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에 대해선 ‘정치적 공평’ 기준을 명목으로 집권당의 개입이 용이하다”며 NHK가 정치적 입김에 약한 이유로 ‘정치적 공평’ 기준에 따른 정부의 직접 내용규제와 의회의 예산 승인 절차 등을 꼽았다.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은 여당의 언론법 날치기 처리 직후 진행한 기자간담회에서 공영방송 KBS가 지향해야 할 모델로 BBC와 NHK를 꼽으면서 “KBS를 틀면 색깔 없는 정보와 뉴스를 접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바람 안에 BBC와 같은 콘텐츠 생산능력과 자율성을 바탕으로 한 비판적 기능은 포함돼 있는 것일까. “정권 감시역할의 PD저널리즘을 위축시키는 시사·다큐프로그램을 잇달아 폐지하고 있는 KBS가 최시중 위원장의 말처럼 무색(無色) KBS 만들기에 궁합을 맞추고 있는 게 아닌지 의문”이라는 전병헌 민주당 의원의 지적이 겹쳐지는 대목이다.

저작권자 © PD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