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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윤성도 KBS PD

상전벽해(桑田碧海)라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을 것 같다. 최근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이 고공행진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지난해 촛불시위 당시 10%대까지 내려갔던 지지율이 요즘 각종 조사에서 50% 내외를 오르내리고 있으니 정부여당으로서는 이제야 뭘 좀 해볼 수 있다는 자신감에 신바람이 날 만도 하다.

이 현상의 원인이 무엇인지, 언제까지 이어질 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청와대가 야심작으로 내놓은 ‘친서민 중도 실용 노선’의 약발이 먹혔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아직도 상당수는 그 진정성을 선뜻 믿지 않는 분위기지만 서민을 위하고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중도 실용 노선을 걷겠다는데 이를 틀렸다고 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사실 이명박 대통령이 대선에 출마할 때부터 실용주의를 내세워 압도적 승리를 한 것을 보면 참 간단한 길을 멀리도 돌아왔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쪼록 이제부터라도 정부가 친서민 중도 실용의 진수를 보여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이렇게 중도 실용이 우리 사회의 화두로 떠올랐지만 여의도 방송가에는 아직 그 바람이 불지 않는 것 같다. 지난해 KBS 정연주 사장의 해임부터 시작된 풍파의 잔상이 사라질 기미를 안보이고 있으니 말이다.

▲ <생방송 시사360> ⓒKBS
KBS에서는 이번에 <시사 360> 폐지를 포함한 가을 개편안이 발표됐다. <미디어포커스>와 함께 <시사투나잇>이 그 이름을 바꾼지 1년 만에 <시사360>은 영원히 사라질 상황에 놓여 있다. 어느 정도 예견된 결과이기는 하지만 한쪽에선 어용으로, 한쪽에선 ‘좌빨’이라는 욕을 얻어먹어가며 그나마 이거라도 지켜보자고 아등바등했던 프로그램이 또다시 사형선고를 받게 되는 것을 지켜보는 PD들은 분노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때마침 MBC 방문진 이사 한명이 <PD수첩>과 <뉴스 후>, <시사매거진 2580>을 통폐합하라는 과감한 주장을 들고 나온 상황이라 <시사360>의 폐지가 앞으로 무엇으로 이어질지 심히 우려가 되지 않을 수 없다.

지난해 눈물바다 속에 <시사투나잇>을 떠나 보낸 후 <시사 360>은 참으로 신산한 삶을 살아 왔다. 처음 시작을 할 때 어느 누구도 축복 속에 태어나지 못한 이 프로그램을 맡고 싶어 하지 않아 데스크의 제안을 받은 PD들은 휴대폰을 꺼놓고 이리 저리 도망을 다녔고 우여곡절 끝에 팀이 꾸려진 후에는 밖에 나가 취재원들의 싸늘한 시선을 받아야만 했다. 안에서는 안에서 대로 현안을 좀 더 적극적으로 다루지 않느냐는 동료들의 비판에 때로는 마음이 상해야 했고 매일 아침마다 책상위에 올려지는 사내 심의평은 대체로 우호적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시사 360> PD들이 포기하지 않고 프로그램을 이끌어 왔던 것은 이 프로그램이 주류 신문이나 9시 메인 뉴스에서 다루는 것과는 좀 더 다른 시선을 가질 수 있고, 또 그래야 한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었다. 누군가는 좀 불편할 수 있겠지만 KBS라는 공영방송이, 우리 사회가 그 정도는 용인할 수 있는 여유는 가지고 있으리라는 판단도 있었을 것이다. 물론 지금 그 기대는 착각으로 판명이 나는 것 같다.

▲ 윤성도 KBS PD
이런 움직임을 중도나 실용으로 분류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중도란 무엇인가. 분산된 힘을 최대한 모을 수 있는 최적의 구심점을 찾는 것 아닌가. 방송 프로그램 하나를 폐지하는 것은 쉬울지 몰라도 그것을 만드는 사람들의 마음까지 없앨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사람들을 자꾸만 극단으로 몰아넣고 중도니 중립을 추구하라고 하면 그 말을 누가 곱게 듣겠는가. 여의도의 방송장이들에게 아직도 중도 실용이란 단어는 낯설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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