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강국이 되어 강해진 것은 누구인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현진의 언니가 간다]

2PM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한다. 텔레비전을 보지 않기 때문에 웬만한 세상 돌아가는 사정을 전혀 모르는데다 인터넷도 예전에 비해 별로 사용하지 않다 보니 자잘한 세상 소식엔 매우 둔감한데, 그런 둔한 귀에도 들려올 정도였으니 2PM이라는 댄스그룹의 멤버가 미국으로 쫓겨 돌아간 일은 어지간한 사건이었던 것도 같다.

2PM이라는 그룹이 “짐승돌”로 불릴 정도로 멋지고 누나 팬들의 가슴을 떨리게 하는 근사한 젊은 남자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은 알겠는데, 사건의 전말은 그 중에서도 인기도 많고 멋진 리더가 몇 년 전에 미니홈피 비슷한 자신의 인터넷 공간에 글을 쓴 게 문제가 된 거였다. 내용은 다 알겠지만 사람들의 분노를 일으킨 것은 “네가 지금 한국에 와서 한국 사람들 상대로 돈을 벌고 있으면서 어디 한국을 욕하고 난리야”는 식의 이유였던 것 같다. 게다가 그는 미국 국적을 가졌기 때문에 군대를 가지 않고…. 자, 여기에서 이미 모든 이야기는 끝났다고 봐야 한다.

그가 회생할 길은 물론 있다. 즉시 미국 국적을 버리고 한국 국적을 취득한 후 군입대를 마치고 복귀하면 누구도 손댈 수 없는 금의환향을 할 수 있다. “사랑하는 팬들과 국민 여러분께 죄송하다, 진심으로 사죄 드린다” 뭐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박박 깎은 머리를 앞으로 하고 90도로 허리를 꺾은 후 “충! 성!” 을 외치며 입대하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 누구도 그에게 손을 댈 수 없을 것이다. 여기는 그런 곳이니까. 군 입대 기간이 많이 아깝긴 하지만, 손익으로 따졌을 때 더 오래 어필할 수 있는 건 아마 이쪽을 택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 2009년 9월 9일 <스포츠조선> 1면 <사과→탈퇴→미국행 재범 '극약처방'>
제대하면서 “대한민국 병장 누구누구누구! 전역을 명 받았습니다! 이에 신고합니다!”하고 우렁차게 외친 후, 군 입대 기간을 통해 나라 사랑하는 마음, 호국 및 안보에 대한 진심과 충성, 그 동안 진심으로 남자가 되고 어른이 되어 이전의 나와는 완전히 달라졌다, 과거의 철없는 행동을 다시 한 번 되씹어 보고 직접 총을 들고 나라를 지키면서 나라를 이렇게 사랑하게 되었다고 간증하면 절대로 누구도 그에게 손을 댈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산전수전 다 겪은 예비역 아이돌이 될 수 있겠지만,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것일까.

잘못된 애국주의가 문제나 인터넷 문화의 문제나 파시즘이나 이런 건 다 모르겠다. 그냥 청년실업이 정말 문제긴 문제다. 우리는 왜 이렇게 할 일이 없는 것일까. 우리는 시간이 너무 많은 게 아닐까. 인터넷 강국이 되어 결국 강해진 건 SK브로드밴드나 LG파워콤 뿐인 게 아닐까. 어떤 애가 몇 년 전에 쓴 글까지 뒤져서 찾아내는 걸 보니 신기하긴 한데, 정작 우리는 강해졌는가.

▲ 김현진/ 에세이스트
인터넷 강국은 누구에게 강국인가. 이 분노의 에너지는 가야 할 곳에 가지 않고 왜 이런 곳에 쓰이고 있는가. 우리에게는 애송이 시절에 철딱서니 없는 소리 했었구나 앞으로 잘해 자식, 하고 웃어넘길 수 있는 여유가 없다, 88만원 세대의 강력한 굶주림과 분노의 에너지는 그런 것을 차마 허용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해서 진짜로 화를 내야 할 대상에게 닿지도 못한다. 재범은 인터넷을 할 수 있는 우리가 손쉽게 달려들어 끌어내릴 수 있는 존재 중 최고치에 있는 존재였던 것이다. 우리가 끌어내릴 수 있는 건 고작 그 정도다.

사실 정말로 끌어내리고 싶은, 끌어내려야 하는 존재는 너무 위에 있어서 손이 닿지 않기 때문에 손이 닿는 녀석 하나 보니까 죽어라 조지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이긴 것은 누구인가. 사실, 다들 정말로 화를 내고 싶은 건 그 일이 아니다. 이왕 끌어내리려면, 왜 더 위를 보지 않는가. 재범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가지면서 못된 소리하고 미안한 줄도 모르는 인간이 잔뜩 있는데. 옛날에 거슬리는 소리 같은 건 미니홈피 말고도 온갖 데 다 한 그런 사람들이.

저작권자 © PD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