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부산은 아시아 영화 중심으로 우뚝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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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부산은 아시아 영화 중심으로 우뚝 섰다”
[Piff 특집 인터뷰] 이상용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 부산=원성윤 기자
  • 승인 2009.10.12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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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열린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에서 <굿모닝 프레지던트> 출연진과 감독이 포토월에서 서서 인사하고 있다. ⓒPiff
한 때 영화진흥위원회 해체를 주장했던 (왼쪽)조문희 영진위위원장, 안성기 부산영화제 부집행위원장,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나란히 레드카펫에서 손을 흔들어 환호에 화답하고 있다. ⓒPiff
이상용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Piff
<카페 느와르>를 통해 평론가에서 영화감독으로 데뷔한 정성일 감독이 11일 부산 해운대 파빌리온 관객라운지에서 관객과의 대화 '아주담담'을 진행하고 있다. ⓒPiff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의 가장 큰 수확은 독립영화 〈워낭소리〉, 〈똥파리〉등이 부산을 통해 처음 소개되며 이름을 알렸다는 것이다. 14회를 맞이한 부산국제영화제가 발견한 올해의 한국영화는 무엇일까. 올해 영화제에서 한국 영화를 담당하고 있는 이상용 프로그래머와 함께 지난 11일 부산 해운대 파빌리온 2층 게스트 라운지에서 한국 영화의 경향에 대해 찬찬히 훑어봤다. 그는 1회부터 부산영화제와 함께 14년의 세월을 보낸 산증인이다.

▲ 이상용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Piff

- 올해 영화제 동선은 중앙동과 해운대에서 센텀시티 쪽으로 많이 옮겨왔다. 새로 개관한 신세계백화점 CGV 10개관과 롯데시네마 11관까지 상영관 절반가량이 센텀에 모여 있다.

“이제 중심을 센텀시티로 옮기려고 한다. 아시안 필름마켓이나 게스트라운지를 해운대에 두고, 프레스센터 등은 센텀으로 옮겨왔다. 올해에는 메가박스(해운대)에서 국내영화를 주로 상영했고, 센텀 롯데에서는 월드시네마, CGV에서는 아시아 영화를 주로 상영했다. 영화제를 찾는 대부분의 관객들이 월드영화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센텀시티 쪽 상영관을 많이 찾는다.”

- 센텀시티에 전용관 두레라움 건설이 완공되면 흐름은 센텀으로 완전히 옮겨갈 것 같다. 칸 영화제식의 르뮈에르 극장이 건설되는 것인가.

“그렇다. 전용관 건설이 영화제의 꿈이 아니겠는가. 센텀시티에 세워질 두레라움은 현재 2012년 완공 예정을 목표로 하고 있다. 상영관의 무게중심이 센텀시티로 옮겨지게 되면 현재 야외상영작도 없어질 것이다. 센텀에서 3000석 규모로 개막식을 거행하게 될 것이다. 주요 작품들은 두레라움 극장에서 상영되고 감독주간, 비평가 주간으로 섹션을 세분화시켜 칸처럼 극장의 특성을 살리게 될 것이다.”

- 올해 한국작품의 선정 기준은 어땠나.

“좋은 것을 먼저 보고, 어떤 그림으로 보일 수 있을까를 생각했다. 작년에는 여성영화 감독들이 주요한 흐름이었다. 올해는 2번째 장편영화를 내놓은 감독들이 많아 ‘넘버2’라고 명명하고 아주담담(야외 관객과의 대화) 행사를 마련했다. 두 번째 작품을 내놓는데까지 꼭 7년이 걸린 〈파주〉의 박찬옥 감독과 〈해적, 디스코왕 되다〉로 데뷔해 〈꼭 껴안고 눈물 핑〉이라는 두 번째 영화로 찾아온 김동원 감독 등 2번째 영화를 만들기 위해 무엇을 했는가를 이야기 했다. 대부분 직업으로서 감독의 고민들이었다. 자본에 대해 책임을 져야되는데 회수하지 못한 것에 대한 괴로움 같은 것이었다. 3번째 영화를 만들 때는 회수해야겠다고 말했다(웃음).”

▲ 지난 8일 열린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에서 <굿모닝 프레지던트> 출연진과 감독이 포토월에서 서서 인사하고 있다. ⓒPiff

- 지난해 카자흐스탄영화 〈스탈린의 선물〉이 개막작이었던 것에 비해 올해는 한국 코미디 영화인 〈굿모닝 프레지던트〉를 선정했다.

“최근 몇 년간 한국영화 산업 위기론이 나오고 있었다. 때문에 부산영화제가 힘을 줘야한다는 이야기가 내부적으로 거론돼 왔다. 때마침 1000만 관객의 〈해운대〉 같은 영화가 나오면서 한국영화산업의 힘을 보여줬고, 〈굿모닝 프레지던트〉는 이런 맥락에 더해 장진 감독 개인을 조명하는 측면도 있었다. 〈간첩 리철진〉, 〈킬러들의 수다〉, 〈박수칠 때 떠나라〉, 〈웰컴 투 동막골〉, 〈강철중 공공의 적 1-1〉 등에서 각본·연출·제작에 참여한 장진 감독이 많은 재능을 가지고 있음에도 해외에는 덜 알려져 있다. 개막작을 통해서 장진 개인도 성장하고, 그 능력을 더 보여줬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 박찬옥 감독의 〈파주〉가 단연 화제다. 파주라는 공간적 특이성, 언니를 살해했다고 믿지만 사랑하게 되는 형부와 처제의 기묘한 동거, 파주를 떠나지 못하고 철거민과 끝까지 연대하는 운동권 세대의 죄의식 등 영화의 시사점이 여러 측면에서 겹친다.

“전작 〈질투는 나의 힘〉이 수컷 성장기였다면 〈파주〉는 이보다 한 발짝 더 나아갔다. 인간의 성장과정에서 생긴 질투와 욕망이 재개발이 이뤄지는 파주라는 공간에서 펼쳐진다. 영화를 전체적으로 지배하는 것은 죄의식이다. 이는 영화 초반 운동권 선배와 관계를 가지는 동안 갓난아기가 화상을 입게 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주인공이 야학을 하고, 철거민 대책위를 하는 등 민중을 떠나지 못하는 것은 운동권 세대의 부채의식이기도 하다. 인간의 욕망과 죄의식을 성찰하는, 오랜만에 만나는 깊이 있는 반가운 한국 영화다.”

- 개인과 사회를 다루는 영화 흐름 또한 올해 영화의 중요한 흐름으로 보인다.

“노근리 사건을 다룬 〈작은 연못〉 등을 보면서 한국영화가 건강하다고 느끼는 것은 개인적인 낭만성에 함몰하지 않고, 개인이 어떤 사회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지를 중요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파주〉, 〈특별시 사람들〉처럼 (경기도 파주, 서울특별시) 장소를 호명하면서 한국인이 동시대를 어떻게 살아가는지 감독 나름의 해법과 모습을 보여준다.”

- 이런 경향 때문일까. 이번 영화제에서 ‘좌파’ 공세에 적잖이 시달렸는데.

“요즘 어느 분야든 다 그렇지 않나(웃음). 부산영화제도 실제로 감사를 받기는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잘 정리가 돼서 넘어갔다. 실제로 영화제 자체로 들어온 작품에 대한 압력은 없었다. 다만 그들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안타깝다. 큰 그림을 봐줬으면 좋겠다.”

▲ 영화진흥위원회 해체를 주장했던 (왼쪽)조문희 영진위위원장 오른쪽으로 안성기 부산영화제 부집행위원장,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나란히 레드카펫에서 손을 흔들어 환호에 화답하고 있다. ⓒPiff

- 배우 조쉬 하트넷·이병헌·키무라 다쿠야와 트란 안 홍 감독이 함께 한 〈나는 비와함께 간다〉, 배두나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함께한 〈공기인형〉, 정우성·고원원(중국배우)과 허진호 감독의 〈호우시절〉 등 해외 공동작업도 늘어나는 추세다.

“그런 영화는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다. 최근 일본에서는 한국배우들에 대한 관심이 늘어난다. (배)두나 씨 같은 경우는 일본에 많이 알려졌고, 봉준호 감독도 일본 프로덕션과 네트워킹을 가지고 있다. 이제는 영화를 반드시 한국에서만 만들어야 한다는 법칙 같은 것은 없다. 영화제 기간 동안 프로듀서들이 와서 세일즈가 이뤄지고, 프로젝트에 대한 협의도 하면서 합작형태로 갈 것인지 여러 마케팅 형식을 고민하게 된다. 부산영화제와 함께 갈 수 있는 방식을 고민한다.”

- 관객과의 대화(GV섹션)에서 감독과 관객들이 서로 주고받는 피드백 역시 해가 갈수록 한층 수준이 높아지고 있다는 느낌이다.

“바로 그 부분이 많은 감독들로 하여금 부산영화제를 좋아하게 만드는 것이다. 자기영화를 이렇게 읽어주는 사람들을 만난다는 것이 영화를 보람되게 만든 즐거움 중에 하나일 것이다. 만든 사람도 즐겁고, 영화제도 그런 담론과 대화가 풍성한 것이 좋다. 지금 옆에서 진행하고 있는(손가락으로 파빌리온 옆에 있는 관객 라운지를 가리키며) 아주담담은 단순한 관객과의 대화(GV)의 야외 버전이 아니라 하나의 주제를 통해 한국영화 뿐만 아니라 아시아 영화 화두를 던지고자 한다. 그것이 시장의 기능을 촉발시키고, 영화에 대한 깊이 있는 대화로 문화를 성숙시키는 것이다.”

- 그래서인지 영화평론가 정성일 씨가 〈카페 느와르〉라는 장편영화를 통해 감독으로 데뷔한 것도 관객들에게 흥미롭게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

“영화비평이 사라지는 시대에서 정성일의 감독 데뷔는 어떻게 보면 이례적인 현상일 수 있다. 비평가가 비평이 아닌 영화를 보여주는 방식이 한국에서 새롭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감독조합에서는 이 영화를 가지고 세미나를 하자는 우스갯소리도 나왔다(웃음). 영화의 다른 측면이 열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누벨바그 시절 이야기를 하지만(1960년대 장 뤽 고다르가 영화평론가로 시작해 프랑스 영화의 새로운 흐름인 누벨바그를 만들어 냈다) 지금은 그런 시대는 아닌 것 같다. 다만 정성일 감독의 영화적 완성도를 받아들이는 부분은 다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 <카페 느와르>를 통해 평론가에서 영화감독으로 데뷔한 정성일 감독이 11일 부산 해운대 파빌리온 관객라운지에서 관객과의 대화 '아주담담'을 진행하고 있다. ⓒPiff

- 올해 다큐멘터리 영화 흐름 역시 굵직한 이슈를 다룬 작품이 많다.

“미군 기지 확장 반대 이야기를 다룬 〈대추리에 살다〉나 세 명 여성의 귀농을 다룬 〈땅의 여자〉처럼 농촌을 다룬 영화들이 있는데 상대적으로 주목을 못 받고 있다. 홈에버 점거농성을 다룬 〈외박〉이나 송두율 교수를 다룬 〈경계도시2〉 등은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든다. 다큐는 현실의 거울인데 독립영화를 포함해서 한국에서 가장 탄탄한 게 다큐영역이라고 본다. 다큐영화제도 꽤 많은 국가 중에 하나다. 〈워낭소리〉에 대한 관심이 이례적인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송환〉, 〈우리학교〉 같은 독립영화 최고의 흥행작들은 다큐가 한국사회에서 건드려주는 부분이 있으면 최소 10만 정도의 관객동원은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 〈워낭소리〉의 300만 관객 동원은 어떻게 평가하나.

“와이드 앵글은 홍효숙 프로그래머 담당이었다. 그 때 영화가 처음 왔을 때 옆에서 보면서 형식적으로 아주 새롭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놓치고 망각하고 있는 지점을 건드려주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300만이 넘을 줄은 생각도 못했다. 이충렬 감독과 고영재 PD도 자신의 수익을 독립영화에 지원하고, 부산영화제에도 펀드를 내놓았다. 이런 영화가 성공하는 게 단순히 개인자본 환원이 아니라 공적인 것으로 나오게 된다는 점에서 유익한 일이다.”

- ‘에로스’를 주제로 한 옴니버스 영화 〈오감도〉 가운데 엄정화와 김효진 이야기가 〈끝과 시작〉이라는 장편으로 넓어진 것 역시 흥미로운 부분이다.

“작은 규모의 영화를 만들 때 감독들이 찍다보면 단편이 아니라 장편 감이라고 직감한다. 협의 하에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루트가 다양해지는 것이다. 이런 영화 활용방식이 이번에 부산에서 선보였던 〈청두, 사랑해〉 한 버전이 〈호우시절〉이라는 장편으로 확장한 사례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 올해 한국영화회고전은 〈화분〉, 〈바보들의 행진〉 등을 만든 故 하길종 감독을 택했다. 독재문화의 은유를 표현했고, ‘쉬르’(초현실주의)의 한국적 창시자로 평가했는데.

“올해 30주기를 맞이한 게 컸다. 1970년대 한국영화 포문을 연 감독으로 하길종을 선택했다. 감독이자 비평가이자 시인이자 지식인이었다. 1965년에 UCLA에서 만든 졸업작으로 선보인 전설적인 작품 〈병사의 제전〉은 프린트를 찾지 못하다가 가편집본을 찾았는데, 완전 편집본이 아니라 사운드 싱크를 완벽하게 맞출 수가 없었다.

사운드 복원은 하지 못했고, 16mm 필름이 열화돼서 35mm 필름으로 복원했다. 한 감독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확성 기능을 해주는 게 영화제의 목적일 것이다. 부산국제영화제 기간에 발간되는 ‘하길종 전집’에는 그동안 절판됐던 하길종의 다양한 에세이와 비평 뿐만 아니라 초기에 발간한 시집인 〈태를 위한 과거분사〉와 김지하 시인과 함께 써내려간 시나리오 〈태인전쟁〉 등을 만날 수 있다.”

- 하길종에 특별히 주목해야 되는 이유는.

“신화로서 주목할 필요는 없다. 다만 1970년대 감독이 어떻게 했는지, 검열에 어떻게 대처했는지. 그런 정신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날의 한국영화가 있을 수밖에 없다. 옛날 영화를 경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지나간 것이 현재를 있게 한 거울이라는 점에서 상징적인 인물로 볼 수 있다.”

- 부산영화제가 여타 국제영화제와 많이 비교되는데.

“1차적으로는 밖에서 칸이나 베니스 비교하면서 ‘너네도 경쟁영화를 하라’고 조언하지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칸은 경쟁작 선정을 위해 힘을 키워왔다. 부산이 경쟁작을 한다고 해서 신작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비경쟁이라는 특성이 다양한 영화를 끌어당기기가 더 좋다. 발굴과 비경쟁이라는 포맷으로 신인과 함께 성장한다. 쉽게 말해 경쟁영화제의 부정적 효과가 더 크다.”

- 결국 부산영화제 나아갈 방향은 비경쟁부분이라는 뜻인가.

“한국에 있는 영화제이지만, 한국영화 감독들이 아시아와 유럽으로 나아가는 게 중요하다. 아시아에서 성장하는 나라들인 필리핀 독립영화를 끌어안는 것도 그런 맥락이다. 함께 하면서 성장한 모습이 무엇이 될 지는 10년쯤 뒤에 판가름 날 것이다. 너무 조급할 필요는 없다. 단순히 경쟁영화제가 이득이 되지 않을 것이다. 네트워크를 쌓아가는 게 중요하다. 이제 해외 페스티벌 관계자들은 부산에 오면 한국과 아시아의 주요영화를 볼 수 있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내실을 기하는 것이 중요하다. 때문에 영화제에 대해 화려하다는 것보다 차분하다는 평가를 듣는 게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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