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자촌 다룬 이 영화, 꼭 개봉해야 하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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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ff 특집 인터뷰] 영화 ‘특별시 사람들’ 박철웅 감독

서울에 이보다 더 극적인 곳이 있을까. 한국 건설자본의 집약체로 상징되는 서울 강남구 도곡동 타워팰리스와 마치 극적 대비효과를 주듯 무허가 판자촌인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은 서로를 응시한다. ‘넘을 수 없는 곳’의 선을 그어주듯 두 마을 사이를 갈라놓는 양재천은 도도하게 흘러간다.

박철웅 목원대 영화영상학부 교수의 장편 데뷔작 <특별시 사람들>은 철거대상이 된 판자촌에서 살아가는 한 가족이 마주하는 ‘가난’을 신파적으로 소비하지 않는다. “가난은 지독하다”는 세상의 고정관념에 일갈하듯 그들이 마주하는 현실의 무거운 공기를 보여주지만 높지도 낮지도 않은 시선을 유지한다. 과잉되지 않고 살아있는 현실적 캐릭터는 관객들로 하여금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사람들’에 동의하게 만든다.

영화는 돈을 벌겠다며 집을 나갔던 맏아들 일남(조한선)이 재개발 바람을 타고 마을로 돌아오면서 시작된다. 아버지(김갑수)는 그런 아들을 마뜩찮아 한다. 성실한 모범생인 이남(서민우)은 타워팰리스에 사는 학교 친구 은영(차예련)에게 마음이 끌리고, 막내 삼남(강산)은 노래에 소질이 있지만 선뜻 나서지 못한다. 청각장애인인 둘째 초롱(유민)은 말없이 어머니처럼 가족을 감싸 안는다. 하지만 판자촌은 재개발 소문이 나돌면서 분란과 갈등으로 흔들리기 시작한다.

<특별시 사람들>은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 파노라마 부문에 초청돼 부산에서 첫 상영을 마쳤다. 총28억원의 제작비를 들이며 지난 2007년에 제작을 마친 이 영화는 3년째 배급 문제로 개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해 MBC <황금어장> ‘라디오스타’에 나온 조한선이 “정말 열심히 찍었는데 개봉을 못하고 있다”는 바로 그 작품이다. 강남구 개포동의 구룡마을을 배경으로 어느 가족의 여름 한 철을 그리고 있는 <특별시 사람들>의 박철웅 감독과 지난 11일 부산 해운대 메가박스에서 인터뷰를 가졌다.

▲ 영화 <특별시 사람들> 박철웅 감독 ⓒ씨네라인

- 최근 영화에서 철거민 이야기가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것 같다. <파주>가 철거민 이야기를 죄의식의 코드로 풀어냈다면, <특별시 사람들>은 철거민에 대해 신파적인 이야기를 배제한 채 가족의 의미를 짚어냈다.

“소재를 다루는데 있어 편견이 가장 무서운 적이라고 생각한다. 구룡마을에 들어가서 3개월 정도 같이 지내면서 그들도 똑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느꼈다. 과도한 동정 역시 배격해야 할 대상이라는 것이다. 같은 눈높이에서 봐야 한다. 상업영화의 코드에서 관객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부분을 과도한 음악 삽입과 전체적으로 빠른 편집들을 통해 풀어내려 했다.”

-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을 영화의 배경으로 선택한 이유는.

“구룡마을은 철거촌 뒤로 타워팰리스가 뒤쪽으로 보이는 한 프레임 안에서 극적인 대비를 이룰 수 있는 곳이다. 마치 컴퓨터그래픽으로 만들어 낸 것만 같았다. 처음에 이곳을 마주하고 ‘서울에 어떻게 이런 곳이 있을 수 있나’라고 생각했다. 강한 대사 보다는 이런 미장센을 통해 의미를 읽을 수 있게 했다.”

- 소설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의 오마주도 보인다. 책의 챕터 중에 하나인 “잘못은 신에게도 있다”는 부분이 대사에도 등장하는데.

“맞다. 너무 좋아하는 책이다. <난쏘공>의 작가인 조세희 선생님이 용산참사 때 얘기했듯이 아직도 우리 사회의 <난쏘공>은 현재진행형이다. 계속되고 있는 이야기라는 점을 보여주고 싶었다. <난쏘공> 외에도 인도의 거장 샤트야지트 레이 감독의 <파더 판차이>(Pather Panchali, 대지의 노래) 시리즈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인도 벵갈의 한 가난한 마을에 사는 소년이 늙은 노모와 누이의 죽음을 겪으면서 정신적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이 영화에서도 이런 점을 보여주려 했다.”

▲ 영화 <특별시 사람들> ⓒ씨네라인

- 영화 속에서 물은 중요한 매개체로 작용한다. 구룡마을과 타워팰리스를 이어주는 개울로 작용하기도 하고, 갈등을 해소시키는 비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남이가 거주증 딱지를 팔기 위해 도망친 상철이를 칼로 찌르고 갈 때 내리는 비는 그동안 심화된 갈등을 해소한다. 뜨겁고 찐득한 것을 풀어준다. 영화 내러티브 흐름에 맞춰서 했다. 또한 물은 아니러니 하게도 타워팰리스와 구룡마을 사이 양재천을 가로지르는데 이는 건널 수 없는 것을 말한다. 결국 이남이가 자살을 시도하는 공간으로 작용한다.”

- 구룡마을 섭외과정에서 어려움이 많았을 것으로 보인다.

“사실 이연호 PD가 아니었으면 촬영 섭외부터 불가능 했을지도 모른다. 저도 먼저 들어가 함께 생활하면서 신뢰를 쌓았다. 촬영 3개월 동안 1만 명의 주민들을 깨우면서 진행하다 보니 반발도 있어 중간에 2번 정도 중단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나중에는 주민들이 아침밥을 차려 줄 정도로 사이가 돈독해졌다.”

- 영화가 가난을 동정의 소재로 사용하지 않았다.

“그러려고 노력했다. 우리 영화의 핵심이다. 구룡마을에는 정말 끔찍하게 가난한 사연들이 많다. 삼남이네 가족은 중간정도였다고 볼 수 있다. 상업영화에서는 다양한 관객들을 대상으로 만족을 줘야 하기 때문에 영화의 메시지와 흥미의 밸런스가 중요했다.”

- 철거민을 다룬 다른 영화나 다큐 보다는 철거 용역과의 싸움이 덜 나오는 것도 그런 이유인가.

“최소한의 리얼리티만 가고 싶었다. 철거용역들이 들어와서 자치회 사무실을 부수는 정도로만 했다. 만약 이야기가 더 나가게 되면 가족에 대한 것보다는 정치적 이슈로 넘어갔을 것이다.”

- 철없는 첫째, 공부 잘하는 둘째, 노래 소질이 있는 셋째 등 우리 시대 전형적인 가족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잘 아는 형 모습 그대로다. 우리가 잘 아는 둘째와 막내가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캐릭터를 가져갔다. 피해가지 말고 그대로를 보여주는 게 관객들에게 쉽게 다가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 조한선을 주인공으로 캐스팅했는데.

“당시 <열혈남아> 끝내고 가장 거친 에너지가 충만했을 때였다. 저는 한선 씨가 가지고 있는, 잘생겼지만 빈틈이 있어 보이는 모습에서 영화에 적합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또한 알려졌듯이 한선 씨 성장과정이 불우한 것까지, 한선씨라면 이런 캐릭터를 이해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영화 <특별시 사람들>. 구룡마을 너머로 타워팰리스가 보인다. ⓒ씨네라인

- 보편적인 영화의 화법으로는 첫째가 싸움을 잘해야 한다. 그러나 이남(조한선)이는 영화 속에서 건달이면서도 주먹조차 휘두르지 않는데.

“이 영화가 영웅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고, 현실적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싸움을 잘해 이긴다고 하면 몇몇 관객은 속 시원하다고 할지 모르지만 이후에 공허함은 어떻게 하나. 현실은 다르다.”

- 영화에서 아버지(김갑수)는 이런 캐릭터를 응축적으로 드러내준다.

“역경이 닥쳤을 때 삶에 대해서 포기하지 않고, 더 악착같이 살아간다는 점을 보여주고 싶었다. 산업화·근대화 세대를 겪은 우리 아버지의 모습이다. 기성세대에는 누리는 것은 없고, 책임만 남았다. 영화에서도 아버지는 가족들을 거칠게 대하지만 가족에 대한 사랑을 가지고 있다. 제가 본 아버지 모습은 그랬지 않았나 싶다. 이제는 정당한 점수를 드려야 하는 것 아닌가. 이 영화는 이 땅의 아버지에게 보내는 연애편지와도 같다.”

- 살인미수를 한 이남이가 모자를 푹 눌러쓴 채 기차를 타고 떠난다.

“약화된 표현이다. 원 시나리오에서는 암시적으로 자살하는 것으로 끝났다. 제작과 투자의 프레스에 의해서 약화됐다.”

- 노래 잘하는 삼남이는 수상이 유력해 보이는 콩쿨대회에 참가하지 않고, 교회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삼남이 가족의 상황이 극복되지 않지만, 노래로 위로하고 싶었다. 시나리오 부분에서는 삼남이 비중이 컸는데 편집하는 단계에서 ‘ 아이들의 시선을 빌어 포장해 거짓말 하고 있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스토리 라인에서 많은 것을 축소시켰다.”

- 2007년에 제작됐는데 올해 부산영화제에서 겨우 월드 프리미어(세계 최초상영)로 일반관객들에게 선을 보였다.

“GV(관객과의 대화)에서도 개봉이 늦어지는 것에 대한 질문이 많았다. 배급하는 쪽에서 상업성이 없다고 사실상 사망선고를 받은 상태라 힘을 받을 곳이 없다. 우리 영화에는 아무도 주목하고 있지 않다. 너무나 안타깝다. 프로듀서와 둘이 뛰어 다니고 있다. 영화는 동시대인의 자산이다. 들어가는 비용도 많지만, 구룡마을 주민 만 명이 넘는 사람을 깨워가면서 만든 작품이다. 내부 뿐만 아니라 관객들의 기대와 관심도 있다. 그것들을 무시하고 관객들이 좋아하지 않을 거라고 미리 예단해서 상업적인 논리로서 판단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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