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포스터는 <반지의 제왕> <킹콩>을 만든 피터 잭슨의 명성에 기댔다. 피터 잭슨은 이름 자체가 ‘불편’인 스플래터의 달인이다. 살점 흩뿌리기와 장기 훼손에 인육 먹기가 주특기다. 피터 잭슨이 1987년 <고무인간의 최후>를 내놨을 때 SF의 고정관념을 깨기에 충분했다. 저예산 독립영화만 만들던 그가 두 번의 블록버스터 성공 끝에 이번엔 <디스트릭트9>을 연출했다.
기획사는 피터 잭슨에 주목했지만 정작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은 따로 있다. 나이 서른의 애송이 감독 닐 블롬캠프는 광고나 단편 다큐멘터리를 만들던 사람이다.
영화는 27년 전인 1982년 우주선을 타고 남아공 요하네스버그 상공에 나타난 외계인들에 대한 의사와 기자, 교수 등 전문가 인터뷰로 시작한다. 아프리카 최대 도시 요하네스버그에서 가장 더러운 소배토 외곽의 치아벨도에 있던 판자촌을 세트로 되살렸다. 블롬캠프 자신이 이 도시에서 태어나 18살 까지 살았기에 현실감은 충분하다. 주인공 비커스 역할의 배우 샬토 코플리도 요하네스버그 출신이다. 그 역시 단편 영화 감독 출신이다.
요하네스버그는 전세계에서 흑백차별이 가장 심했고 지금도 불법 체류자 차별이 가장 심한 도시다. 블롬캠프의 페이크(사기)는 수준급이다. 감독은 요하네스버그 시민들에게 불법 체류자들에 대한 생각을 물은 뒤 실제 영화에선 질문을 바꿔 외계인에 대한 질문에 답하는 것으로 비틀었다.
피터 잭슨에게서 300억 원을 줄 테니 네 맘대로 만들어 보라고 주문받은 블롬캠프는 2005년에 요하네스버그 빈민촌을 배경으로 자신이 만든 저예산 단편 페이크 다큐 <얼라이브 인 요하네스버그>에 ‘외계인’을 집어넣었다. 그러나 <디스트릭트9>에는 뉴욕을 침공해온 외계인에 맞서 싸우는 미국 대통령은 없다. 여기 외계인은 한심하기 이를 데 없다. 외모는 에일리언이나 트랜스포머에서 선보인 권위를 지녔지만, 참치 캔을 게걸스레 먹는 외계인에게선 지능이 있는지 조차 의심스럽다. 이 영화의 외계인은 인간에게 두들겨 맞고 집단감금 당한 채 장장 27년을 보낸다. 요하네스버그에 실재하는 9구역에 수용된 40만 명의 외계인은 그 안으로 들어오는 인간을 뜯어 먹는다. 대신 철조망 밖으로 나가면 인간에게 살해된다. 외계인의 출현으로 9구역 주변은 무법천지가 된다. 외계인은 불법 체류자보다 못한 대우를 받는다.
감독은 관객에게 외계인이 아니라 탐욕스런 인간들 사이의 경계, 숨어있지만 분명한 경계를 보여준다. 애송이 감독은 SF영화를 기대한 관객을 조롱한다. 요하네스버그 상공에 떠 있는 거대한 비행체는 석 달 동안 꼼짝도 하지 않는다. 스타워즈처럼 작은 비행선이 마구 쏟아져 나와 지구에 레이저 포를 쏘지도 않는다. 급기야 다국적 지구보호연합(MNU)의 유격대원이 무장한 채 들어가지만 비행체 안에선 영양실조에 걸려 쓰러진 수십 만 명의 외계인을 발견한다. MNU는 ‘인도적’인 차원에서 이들을 구출해 9구역에 가둔다.
20년이 지나 슬럼화 돼 가는 9구역을 보고 MNU는 40만 명으로 늘어난 외계인 모두를 200Km 떨어진 사막으로 강제 이주시키기 위해 ‘이주동의서’를 받으려고 다시 유격대원을 침투시킨다. 백인에 의해 수백 년 동안 자행된 흑인 노예 강제이주를 연상케 한다. 외계인이 이주동의서를 손으로 긁어버리며 저항하자 유격대장은 “괜찮다. 손으로 했으니 사인 한 것”이라고 말해 중간중간 블랙코미디도 보인다. 그러나 MNU 투입의 진짜 이유는 9구역 안에서 외계인들이 20년 동안 개발한 무기 때문이다. 전세계 제 2위의 군수산업체였던 MNU로서는 포기하기 힘든 유혹이었다.
외계인만 ‘찌질이’가 아니다. 주인공 비커스와 토착무장세력 등 인간들도 모두 찌질이다. 모두가 찌질이라는 걸 깨닫는 순간 영화는 장르를 뛰어넘어 이미 SF가 아니다. 반(半)외계인으로 유전자 변이된 비커스가 쓰레기를 정성스레 매만져 아내에게 줄 가짜 꽃을 만드는 마지막 장면에서 허상과 현실은 뒤섞여 버린다.
감독은 정상과 비정상이 뒤섞인 세상을 조롱한다. 논문표절에 위장전입, 부동산 투기가 고관대작의 기본요건이 된 세상에서 기업 회장에게 앉은 자리에서 용돈 천만 원을 받는 총리를 섬겨야 하는 우리 꼴도 분명히 정상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