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필 평양 공연 7번 연기 끝에 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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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필 평양 공연 7번 연기 끝에 성사”
‘그해 여름, 그들은 왜 조용필을 불렀나’ 펴낸 오기현 SBS PD
  • 백혜영 기자
  • 승인 2009.10.13 14:2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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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여름 북한은 왜 남한 가수 조용필을 불렀을까? 1999년 최초로 민간인 이산가족 상봉을 이뤄낸 ‘조경철 박사의 52년만의 방북 귀향기’는 어떻게 제작됐을까?

1998년 처음 평양 땅을 밟은 이후 10여 년 동안 30여 차례에 걸쳐 북한에 다녀온 오기현 SBS PD. 그가 남북교류 현장에서 겪었던 생생한 체험기를 책으로 펴냈다. 오 PD가 펴낸 <그해 여름, 그들은 왜 조용필을 불렀나>에는 ‘있는 그대로’의 북한 모습이 담겨 있다. 책에는 방송 제작자로서 조마조마했던 순간들 그리고 돈이 오가는 사업장으로서의 남북교류 현실이 가감 없이 담겼다. 특히 당시 상황 설명은 물론 북한 실무자들과 나눈 구체적인 대화 내용까지 꼼꼼하게 정리돼 있다.

오 PD는 “남북관계의 특수성이 있는데다 현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등장할 수밖에 없어 책을 내기 전 상당히 망설였다”면서도 “새 정부 들어 남북관계가 주춤한데 10년 간 교류했던 것을 정리하는 차원에서 공개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향후 새로운 남북관계가 전개될 때 도움을 주고 싶다는 이유다.

▲ 오기현 SBS PD ⓒSBS

“처음부터 끝까지 다 어려웠다”고 말할 정도로 10여 년 동안 남북교류 사업에 뛰어들면서 오 PD는 숱한 어려움을 겪었다. 조용필의 평양 공연은 7번 연기 끝에 1년 1개월 만에 겨우 성사됐고, 6․15 남북정상회담 1주년을 기념해 2001년 평양에서 생방송 뉴스를 진행하자는 합의는 끝내 지켜지지 못했다. 취재기자, 중계차, 카메라, 세트 등 남한에서의 준비는 모두 끝냈지만 북한의 연락은 오지 않았다. 북한 실무자들과 쓴 합의문만 “전화번호부 한 권이다”. 물론 지켜지지 못한 것이 대부분이다.

“남북관계는 정치의 종속 변수이자 결국 치열한 생존 공간”이라는 것이 그가 체험을 통해 얻은 결론이다. 사실 시간과의 싸움을 해야 하는 방송 제작자들에게 북한과 함께 하는 작업은 결코 매력적이지 않다. 오 PD 역시 “북한 취재를 경험한 제작진 가운데 상당수가 ‘무관심주의자’ 혹은 ‘회의론자’가 된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남북관계는 우리 운명”이라며 “힘들더라도 결국 물방울이 바위를 뚫을 수 있다는 심정으로 끊임없이 교류를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방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준비했다 무산되거나 낭패를 보니 방송사에서 북한과 관련된 일을 하려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면서 “그러나 남북교류는 언론이 해야 할 책무다. 방송이 남북관계에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어 “북한 사업가들의 성격, 목적, 스타일을 예시해 놓은 <그해 여름…>이 대북 교류를 할 때 참고가 됐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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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미 2010-06-20 09:09:47
오히려 평론과보다 더
일과 현장 경험이기때문에 하나의심없이
다 공감가 약속이 안된다는것 이해도가고요
독제체제이기때 때문에 그리 활성화는 어렸다고봐야
조용필 공연를 보면서 대규모에 북한사람들 처음봐
한두사람 끈질긴힘이 공연를 만들었군요
어떨게보면 정치하는사람보다 그이상를
뛰어넘는 남북관계는 정치하는사람 못 만이
아니라는것을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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