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하기엔 80~90년대가 좋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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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하기엔 80~90년대가 좋았지…”
[인터뷰]17일 폐지되는 MBC 라디오 〈격동50년〉 오성수 PD
  • 김고은 기자
  • 승인 2009.10.13 16: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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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둥뚱뚜둥 뚜둥뚱뚜둥.

매일 오전 11시 40분, 익숙한 시그널 음악과 함께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성우의 굵직한 목소리를 더 이상 들을 수 없게 됐다. MBC 라디오(95.9㎒) 다큐멘터리 〈격동50년〉(극본 이석영, 연출 오성수)이 오는 17일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1988년 봄 〈격동30년〉이란 타이틀로 첫 전파를 탄 지 21년여 만이다. 이에 따라 50여년 역사의 MBC 라디오 드라마도 작별을 고하게 됐다.

녹음은 이미 지난 7일 끝이 났다. “마지막 녹음은 다소 침체되고 우울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고 오성수 PD는 전했다. 오 PD는 90년대 중반 한 차례를 포함, 무려 7년 2개월 동안 〈격동50년〉과 함께 했다. 〈격동50년〉을 거쳐 간 6명의 PD 중에서도 최장수 기록이다. 지난 9일 마지막 방송 편집에 한창이던 그는 “영원한 프로그램은 없다”고 말은 했지만, 헛헛한 마음은 감추지 못하는 듯 했다. 그는 “지금 휴대폰 벨소리가 〈격동50년〉 시그널 음악인데, 이제 벨소리도 바꿔야겠다”고 쓸쓸한 얼굴로 말했다.

▲ 오성수 '격동50년' PD ⓒMBC
21년이 넘는 장수 프로그램이지만, 폐지 결정은 의외로 신속하게 이뤄졌다. 폐지 통보를 받은 건 3~4개월 전. 공식적인 폐지 사유는 다큐멘터리 드라마로서의 역사적 소명을 다했고 라디오 드라마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줄어들었으며, 경영상의 문제라는 것이었다. 세 번째 이유가 역시 컸다. 2시간짜리 시사 및 음악프로그램이 주를 이루는 라디오에서, 경영 상황도 좋지 않은데 20분짜리 프로그램이 제작비는 많이 들고, 광고는 적게 붙으면서 청취율까지 그리 높지 않으니 경영진 입장에서 곱게 보일 리 없었다.

하지만 이 같은 설명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폐지 결정의 ‘내막’을 의심했다. 보수정권과 보수성향의 대주주 방문진의 출범에 따른 ‘외압’ 의혹도 제기됐다. “마지막 녹음 날, 오히려 기자들이 분개했다. 내막이 뭐냐며 밝혀주겠다고 하더라.” 제작진도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오 PD는 “달도 차면 지지 않느냐”며 “그러려니 한다”고 말했다.

돌아보면, 〈격동50년〉이 가장 ‘잘 나가던’ 시절은 6공화국이 막을 내릴 즈음이었다. 당시 출간된 ‘격동30년’이란 제목의 책이 공전의 히트를 쳤을 정도다. 오 PD는 “그때 사람들이 정치에 굶주려 있었다”고 회상했다. 당시 가장 많이 다룬 게 5공화국이었다. 오 PD 말대로라면 “많이 ‘쪼기’도 했지만” 항의 한 번 없었다. 그런데 지난 8~9년 동안 세상이 변했다.

“요즘 법 자체가 프라이버시를 지켜주는 편이다. 방송에 나온 당사자가 명예훼손으로 소송을 걸면 대부분 진다. 법보다 앞서 나갈 수가 없다. 그래서 인터넷 다시 듣기도 안 하는 거다. ‘쪼기’엔 80~90년대가 더 좋았다. 그 때는 잘못하면 ‘깨갱’했다. 지금은 ‘다른 놈도 많은데 왜 우리만 쪼냐’며 따진다. 기록문화가 철저하지 못해 생기는 문제다.”

반면 자신이 등장한 방송분의 테이프를 복사해 달라는 요청도 적지 않다. “얼마 전에 참여정부 초기부터 탄핵까지 다뤘는데, 봉하마을의 권양숙 여사 비서관한테서 복사해 달라고 전화가 왔다. 그러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연락이 끊겼다.”

노 전 대통령 서거와 관련해 떠오르는 또 하나의 기억. “원래 녹음은 수요일인데, 그때 무슨 이유에서인지 토요일에 녹음을 했다. 녹음 중에 서거 소식을 듣고 원고를 급하게 수정했다.” 그리고 세 달도 채 지나지 않아 ‘대한민국 전직 대통령’이 방송되던 지난 8월 김대중 전 대통령마저 서거했다. 역사의 굴곡을 함께 하며 〈격동50〉년이 기록한 단면이다.

〈격동50년〉은 1960년대 이승만 정권과 4·19혁명부터 2009년 오늘의 대한민국까지 말 그대로 ‘50년 역사’를 다뤘다. 오 PD는 “시작은 창대했으나 미약하게 끝난 것도 있다”고 했지만, 〈격동50년〉이 다룬 주제들은 그 자체로 대한민국의 현대사 교과서와도 같다. 삼청교육대나 삼성 문제, ‘3김 시대’처럼 미처 다루지 못해 아쉬운 주제를 덮어두고, 제70회 ‘민주화 연대기’로 17일 〈격동50년〉은 끝이 난다. 익숙한 시그널 음악도, 역사의 현장을 생생히 증언해주는 성우들의 목소리도 더 이상 들을 수 없지만, 제작진의 말대로 〈격동50년〉은 “기억 속에 남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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